[기자의 시각] 도 넘은 체육계 ‘제식구 감싸기’
지난 2월 23일 춘계대학축구연맹전 통영기 4강전. 연세대와 경기대가 맞붙었다. 연세대가 선제 골을 넣은 전반 7분 이후 이상한 광경이 펼쳐졌다. 이기고 있던 연세대 선수들이 자기 진영에서 공을 돌리자 경기대 선수들이 멀뚱멀뚱 지켜봤다. 공을 뺏을 생각이 없었다. 상대방이 아무 동작을 취하지 않자 연세대 선수들은 서로 공을 돌리면서 마치 경기 전 워밍업하듯 시간을 흘려보냈다. 제자리에서 공을 발로 띄우는 리프팅까지 했다. 20분여 이 기괴한 장면이 이어지자 보다 못한 경기감독관이 주의를 준 뒤에야 갑자기 선수들이 열심히 뛰기 시작했다. 결과는 연세대 2대1 승. 당시 경기 영상이 공개되자 안팎에서 비난이 쏟아졌다.
여론이 심상치 않자 한국대학축구연맹은 지난달 두 팀을 징계위원회에 올렸다. 결과는 1개 대회 출전 정지. 1년 정지도 아니고 1개 대회다. 왜 그랬는지 설명도 없었다. “고의적으로 그런 건 아니고 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는 양 팀 해명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일정이 빡빡해 양 팀이 경기 중 선수들에게 휴식 시간을 주기 위해 담합했다는 지적이 나왔으나 더 이상 조사하지 않았다. 상위 기관인 대한축구협회까지 재심을 요구했지만 지난 10일 대학연맹은 재심을 통해 1개 대회 징계란 원심을 확정했다.
이런 황당한 조치는 처음이 아니다. 앞서 지난달 28일 축구협회는 프로축구 승부 조작범 48명을 포함한 축구인 100명을 사면한다고 발표했다가 심각한 후폭풍에 시달렸다. 아무런 외부 의견 절차 수렴도 없이 기습 사면을 시도했다가 여론의 화살을 맞은 뒤 사면 조치를 취소한 것은 물론, 그 과정에 관여한 부회장단과 이사진이 전원 자진 사퇴하는 후유증을 겪었다. 당시 협회 공정위원회 이사들도 함께 물러나야 했다. 그 여파가 가시기도 전에 이번엔 대학축구연맹이 비슷한 행태를 반복한 셈이다.
체육계의 ‘제 식구 감싸기’ ‘우리가 남이가’ 태도는 종목을 불문하고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지난해 3월 키움 히어로즈는 KBO(한국야구위원회)에 음주 운전 전과 3범 강정호 복귀를 추진하다 반발에 부딪혀 포기한 일이 있다. 그 전엔 KBL(한국농구연맹) 10개 구단 감독들이 승부 조작으로 영구 제명 당했던 강동희에 대해 재심 탄원서를 연맹에 제출했다가 여론이 좋지 않자 접기도 했다. 선수촌에서 술 마시고 난리를 피운 태권도 선수, 승부 담합으로 징계를 받은 쇼트트랙 선수도 시간이 흐른 뒤 슬며시 국가대표로 돌아온 사례도 있었다.
한국 체육계는 유년기부터 오직 한 종목만 파내려 가다 보니 모두가 한 가족이다. ‘좁은 바닥’에서는 모두가 지인이고 형이자 동생이다. 그러다 보니 사회적으로 용납하기 어려운 일탈을 저질러도 온정주의 잣대로 유야무야하려는 시도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공정과 상식, 정의라는 시대정신에 역행하는 처사다. 그대로 두고 보기엔 자정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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