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를] 저기 흙 묻은 사람들이 가네

기자 2023. 4. 13.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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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앞에 쌀자루가 배달되었다. 장인어른이 보낸 것이었다. 1938년생인 장인어른은 팔순을 넘겼지만, 손에서 농사를 놓지 않는다. 자급자족의 소농(小農)으로 평생 살아온 장인어른의 농사가 예년과 좀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 ‘혼자서’ 농사를 짓는다는 점이다. 지난해 봄, 장모님께서 인근 도시의 요양병원에 입원하면서부터 장인어른의 농사는 외로운 노동이 되었다.

고영직 문학평론가

농촌·농업·농민 등 이른바 3농(農)의 가치가 무너지고 있다. 3농의 토대가 붕괴된 것이야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이제는 대놓고 농촌·농업·농민을 멸시한다. 미분양 아파트를 매입하는 정책은 당연시하지만, 과잉 생산된 쌀을 수매하는 것은 70대 농민을 위해 ‘헛돈’ 쓰는 일이라고 비난한다. 농민들에 대한 예의는 없다. 시대가 변했는데도 ‘계속 쌀농사를 고집하는 미련한 농민들’이라고 낙인찍는다. 많이 배운 엘리트 관료·정치인들을 비롯해 지식인들의 인식이 대체로 그러하다.

하지만 농촌·농업·농민에 빚지지 않는 삶이란 가능한가. 그런 삶은 지속 불가능하다. 문제는 3농의 가치가 중요하다는 사실만으로는 비이성적이고 변덕스러운 사람들을 행동으로 절대 유도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가 필요하다. 오래전 어느 책에서 도법 스님이 청소년들에게 했다는 이야기가 문득 떠오른다. “여러분, 세계 최고 부자가 누굽니까?” “빌 게이츠요.” “그럼, 빌 게이츠가 열흘 굶었다고 칩시다. 배고프다고 자기가 만든 컴퓨터를 뜯어 먹습니까?” “아니요, 밥을 먹습니다.” “그러면 밥은 누가 만듭니까.” “농부요!” “그럼, 농사짓는 일과 컴퓨터 만드는 일 가운데 어느 일이 생명을 살리는 중요한 일입니까?”

위 이야기는 단순하지만 중요한 진실을 내장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부가가치’를 창출한다는 이유로 컴퓨터 만들고, 반도체 만드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내면화하는가 하면, 아이들을 그렇게 가르친다. 우리가 누리는 근대문명의 토대란 이러한 왜곡된 인식의 지반 위에서 작동하는지 모르겠다. 코로나 3년을 겪으며 ‘밥’을 만드는 일을 더 중시하는 문명의 변침(變針)을 기대했지만, 집·땅·차·돈에 몰빵하려는 문화는 바뀌지 않았다. ‘에코’보다 ‘이코노믹’을 더 추앙하려는 시스템이 막강하다는 사실을 확인한 셈이랄까.

늦지 않았다. 농촌·농업·농사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가 계속되어야 한다. 경기도 화성에서 농사지으며 ‘텃논의 유업’을 잇는 시인 이덕규의 <오직 사람 아닌 것>은 대지(大地)의 언어를 사유하려는 21세기판 농민시집이다. 표제시 ‘가을걷이 끝나자마자 서둘러 빈손으로 떠난 오직 사람 아닌 것들의 목록’은 대를 이어 농부로 ‘살아가는’ 지극한 마음을 잘 표현한 작품이다. 햇빛 바람 물 풀 거미 개구리 우렁이 미꾸라지 거머리 맹꽁이…. 사람 아닌 ‘울력꾼’들의 목록은 한없이 길다. 이 목록은 결코 죽음의 목록이 아니다. “저기 흙 묻은 사람들이 가네”(‘흙 묻은 맨발들의 저문 노래’)라는 표현에서 어찌할 수 없이 장인어른의 모습을 떠올린다. 3농의 가치를 귀하게 여기고, 고향을 생각하는 인구가 더 많아지는 사회가 좋은 사회일 것이다. 우리는 지금, 눈을 질끈 감고 문명의 자살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다.

고영직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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