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기술로 쓰는 소설
나는 습작 기간이 짧지 않은 편에 속한다. 마침표를 찍은 글 중 네 번째 글의 17번째 수정본으로 등단했다. 초고를 쓴 건 6년 전이지만, 매해 한두 번씩 이 글의 파일을 열었다. 그리고 문장만 손보는 수준을 넘어, 아예 첫 장부터 다시 쓰기를 반복했다.
최종 발표된 원고에서는 초고와 비슷한 구석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6년의 세월 동안 글을 보는 시야가 조금 넓어졌고, 그 시야가 글에 반영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초고 합평을 받을 당시에는 알아들을 수 없는 조언이 대부분이었다. 받아들일 수 없는 조언도 있었다. 그럴 때는 일단 최선을 다해 고쳐본 뒤, 납득되지 않거나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묵혀 두었다. 신기하게도 시간이 흐르면, 수정 방향이 떠오를 때가 많다.
첫 합평 수업에서 들은 말이 가끔 기억난다. 매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어도 실력은 갱지 한 장만큼도 늘지 않는다는 말. 소설 쓰기는 기술이 필요하고, 그 기술은 쉽게 얻을 수 없다는 말. 그때는 그 말이 품은 잔인함을 몰랐다. 나의 경우, 습작 기간 내내 실력이 향상된다는 느낌은 별로 들지 않았다. 오히려 항상 비슷한 수준의 글을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좌절감만 늘어갔다.
그러나 차곡하게 쌓인 갱지의 부피를 체감할 수 있는 순간이 있다. 바로 과거에 쓴 원고를 들춰볼 때다. 그저 받아 적기 급급했던 조언들이 단숨에 이해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이 이야기를 다시 써보고 싶다는 욕심도 생긴다. 대부분의 경우, 이전보다 조금 더 나은 글이 된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금은 쓸 수 없어도, 언젠간 꼭 쓰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에 품고 있다. 혹은 썼지만 실패한 채 파일 더미에 묻혀 있는 이야기도 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른 뒤, 잊지 않고 이야기를 불러내는 건 작가의 애착이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제대로 구현시킬 수 있는 건 기술이다. 그리고 나는 소설 쓰기가 아닌, 대부분의 일이 그러하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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