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 아이 ‘앉아있기’ 가르쳐 일반학교 입학… 벌써 5학년 됐네요”

고양=박성민 기자 2023. 4. 13.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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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 아들 학교 적응기 펴낸 김윤정 씨
인사, 가방 정리, 교과서 펼치기 등 교실 비슷한 곳 만들어 철저히 준비
특정 과목에선 분리학급 활용하고, 친구에게 아이 상태 정확히 알려야
“비슷한 학부모 돕고 싶어 책 출간… 시간 조금 더 걸릴 뿐 분명히 성장”
지난달 30일 경기 고양시 아람초 상담교실에서 만난 김윤정 교사는 “장애 자녀를 일반 학교에서 통합교육 시키기 위해서는 착석과 모방 훈련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고양=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시간이 조금 더 걸릴 뿐 이 아이들도 분명 성장하고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초등학교 5학년 쌍둥이 남매를 키우는 김윤정 씨(43)는 2년 차 상담교사다. 그는 5년 전 15년간 몸담았던 유치원 교사직을 그만두고, 대학원에서 상담심리 공부를 시작했다. 쌍둥이 오빠인 김도훈 군(11)을 위해 내린 결정이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도훈 군이 학교에 다니는 과정을 같은 눈높이에서 바라보며 돌보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최근 도훈 군의 학교 적응기를 담은 ‘자폐여도 괜찮아, 우린 초등학교 입학한다(사진)’를 펴낸 김 교사를 지난달 30일 경기 고양시의 아람초에서 만났다.

● 착석과 모방만 잘해도 ‘절반의 성공’

도훈 군은 생후 36개월에 자폐 스펙트럼 장애 판정을 받았다. 자녀가 특수교육 대상인 경우 부모들은 취학 시기에 고민이 가장 크다. 특수학교와 일반학교, 일반학교 중에서도 비장애 학생과 한 교실에서 공부하는 통합학급과 장애 학생끼리 편성되는 분리학급은 아이가 마주하는 환경이 크게 다르다. 김 교사는 “아이가 혼자 식판에 담은 밥을 먹을 수 있는지, 옷과 신발을 스스로 신고 벗을 수 있는지 등을 꼼꼼히 살펴 학교를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달 초 서울 은평구 은평구민회관에서 김 교사와 남편(왼쪽), 아들 도훈 군(아래)이 줄넘기 대회 메달을 받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김윤정 씨 제공
김 교사 부부는 일찌감치 도훈 군을 비장애 학생들과 함께 교육시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수업과 집단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줄넘기의 손목 돌리는 자세부터 하나씩 가르쳤다. 입학 직전에는 교실과 유사한 공간을 만들어 인사와 책가방 정리, 교과서 펼치기 등 진짜 학교생활을 연습했다.

통합교육을 희망하는 부모들에게 김 교사가 가장 강조하는 것이 ‘착석과 모방’이다. 수업 시간에 돌아다니지 않고, 다른 친구들이 하는 활동을 흉내 낼 수만 있으면 학교 적응이 그만큼 수월해진다는 의미다. 그는 “통합수업을 위해선 다른 학생들의 배려와 이해도 중요하지만, 수업을 방해하지 않도록 내 아이를 준비시키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통합교육 과정에선 부모와 학교의 소통이 중요하다. 아이가 통합학급을 버거워하지는 않는지 잘 관찰할 필요가 있다. 김 교사는 “일주일에 몇 시간 또는 특정 과목은 잠시 분리학급에서 수업을 듣는 등 아이의 컨디션에 맞춰 유연하게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아이 상태 정확히 공유해야”

학교라는 공간은 특수교육 대상 학생들에겐 호락호락하지 않다. 김 교사가 책을 쓰겠다는 결심을 한 건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 부모들이 시행착오를 줄이기 바라는 마음에서다.

도훈 군을 1학년 방과 후 돌봄교실에 보낼 당시 돌봄전담사는 아이를 맡는 것을 거부했다. 돌발 행동으로 다른 아이들에게 해를 끼치거나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책임이 돌아올까 부담을 느껴서였다. 김 교사는 도훈 군이 착석 훈련이 돼 있고, 이상 행동이 없다며 돌봄전담사를 설득했다. 첫 주는 하루에 30분, 괜찮으면 시간을 늘리기로 합의하면서 도훈 군도 돌봄교실을 다닐 수 있게 됐다.

이렇듯 학교 입학 후에는 아이의 특성을 교사와 학급 친구들에게 정확하게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김 교사는 3월 초 도훈 군을 친구들에게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도훈이가 좋아하는 게임과 잘하는 것 등을 알려주며 친구들과 벽을 허무는 과정이었다.

팬데믹 기간은 장애가 있는 자녀를 키우는 가정엔 큰 고비였다. 비대면 수업으로 전환되면서 아이들은 또래와 교류할 기회를 잃어버렸다. 김 교사도 다시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심정으로 도훈 군을 학교에 보내고 있다. 올해 목표는 쉬는 시간에 잘 노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김 교사는 “처음에는 쉬는 시간에 엘리베이터를 관찰하거나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는데, 최근에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에 조금씩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며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넓어지고 있다는 걸 느낀다”고 말했다.

● 비장애 자녀에게도 관심을

장애 가정의 부모들이 갖는 공통적인 고민은 비장애 자녀 교육 문제다. 어려서부터 장애 자녀에게 관심을 쏟게 되다 보니 비장애 자녀들은 부모의 관심에서 후순위로 밀린다. 김 교사도 늘 신경 쓰는 부분이다. 김 교사는 “딸이 ‘나도 소중한 존재’라고 느낄 수 있도록 항상 노력한다”며 “한 달에 한 번은 딸과 단둘이 시간을 보내거나 둘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장애 아동은 나이가 들수록 더 큰 산을 넘어야 한다. 또래들과 학력 격차는 벌어지고, 관계 맺기도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김 교사의 바람은 도훈 군이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자립하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남들보다 더 많은 노력과 시간, 비용을 들여도 아이가 변하는 게 잘 보이지 않죠. 그래서 더 힘들어요. ‘시간이 멈춘 것 같다’는 생각도 많이 했어요. 하지만 부모가 조금만 기다려주면 분명 희망이 보일 거라고 동료 부모들에게 말해주고 싶어요.”

고양=박성민 기자 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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