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삶]서로에게 기울어 듣다

성현아 문학평론가 2023. 4. 13.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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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 틈으로 봤어, 죽은 사람을 끌고 가는 걸. 너무 무서웠지.” 혼자 샤워하기를 꺼렸던 어린 손녀에게 할머니께서 해주셨던 말이다. 화장실 창문이 무섭다고, 어린 내가 호소했을 때, 할머니께서는 어차피 집 안에 있는 화장실인데 무서울 게 뭐가 있냐고, 어른의 시선에서 다그치지 않으셨다. 그저 “우리 현아 입장에서는 무섭겠다, 뭐가 튀어나올까 싶어서. 그렇지?” 하고 나의 공포에 기꺼이 함께해주셨다. 그러면서 딱 한 번, 당신이 유년 시절에 겪은 일을 얘기해주셨다. 나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아 “누가요? 왜 죽었어요?” 하는 질문을 쏟았고, 할머니는 “막 죽였지, 그때는”이라는 아리송한 답을 남기고 입을 꾹 닫으셨다. 어린애에게 괜한 말을 했다며 잊어버리라고 당부하시던 할머니는 고통 속에 잠긴 사람 같았다.

성현아 문학평론가

아이러니하게도, 나에게 공감해주려다 터져 나온 할머니의 기억으로 인해 나는 무서워하는 게 하나 더 생겨버렸다. 할머니처럼 무엇이든 척척 해내는 강인한 사람조차 떨게 했던 그 광경이 도대체 무엇이었을지 혼자 떠올려보다 얻은 공포다. 그 후로 할머니 댁 대문 앞에 설 때면, 대문 틈으로 보이는 잿빛 길 위로 피범벅이 된 누군가가 질질 끌려가는 참혹한 장면을 상상하게 됐다. 할머니의 고향이 제주이며, 할머니께서 목격하신 것이 제주 4·3 사건이리라는 사실은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에야 알게 되었다. 이제는 무엇도 다시 확인할 수 없게 됐지만, 할머니의 기억을 듣고, 그녀의 감정에 압도되었던 경험만큼은 생생하게 남았다. 그래서일까. 제주 4·3을 공부하거나 이를 다룬 문학 작품을 읽을 때면, 나는 쉬이 그때로 돌아가 공포에 압도된 채로 마음을 앓는다. 감히 말해보자면, 나는 제주 4·3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 된 것 같다. 어김없이 돌아온 4월, 할머니와 내가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서로에게 얽혀들었던 방식에 관해 생각한다.

박솔뫼의 소설 <투 오브 어스>(‘창작과비평’ 2023년 봄호)에는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어주는 인물 ‘알렉스’가 나온다. ‘애리’가 앵무새를 봤다고 이야기한다면, 알렉스는 그것이 진짜 앵무새였는지 확인하려 들지 않는다. 뜬금없이 기찻길에서 앵무새를 보게 된 애리가 불안정한 상태인 것은 아닌지 함부로 추측하지도 않는다. 그저 침착하게 듣고, “애리가 말하는 앵무새에 연루”(161쪽)된다. 그러고는 그 앵무새를 온전히 이해하게 될 때까지, 애리가 앵무새를 본 곳에 가 서 있는다. 그것이 알렉스의 듣기 방식임을 깨달은 애리는 앵무새에 관해 더욱 자세히 설명하는 연습을 하게 된다. 이는 애리를 통해, 잘 듣는 사람인 알렉스의 존재를 알게 된 ‘강주’가 무언가를 털어놓는 상황을 상상해보는 장면과 겹친다. 타인의 말을 경청하는 한 사람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소설 속 인물들은 미래에 닥칠 불행을 극복하도록 도와줄 치유를 미리 끌어와 경험할 수 있게 된다.

경청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누군가는 위안을 얻고, 자신이 겪고 느낀 것을 편히 고백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세월호에서 돌아오지 못한 304명을 기억하기 위해 매달, 작가들과 시민들이 모여 여는 ‘304낭독회’를 떠올리게 한다. 낭독회에 찾아온 이들은, 설사 낭독자라 할지라도 다른 이들의 낭독을 가만히 들어야 한다. 추모하는 목소리의 미세한 떨림을 느끼며, 피해자의 아픔을 제 마음에 들이고, 울분과 의지, 슬픔과 용기에 엮여 들며 서로에게로 기울어간다. 어쩌면 이곳은 기억한다고 끊임없이 발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의 기억과 애도의 말을 듣고자 하는 이들이 여기에 있다고 알려주려 꾸려진 공간일지도 모르겠다. 경청이 ‘기울여 듣다’(傾聽)라는 의미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서로에게 기운 채로, 말하기 어려운 일들을 말할 수 있게 될 때까지 기다려주고, 더 많이 말하도록 독려하는 귀가 되어주는 자세, 아픔이 많았던 4월에 품어볼 자세가 아니겠는가.

성현아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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