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빙로봇·AI예약… K스타트업이 日시장 뚫었다
12일 오후 도쿄 시부야에 있는 한 브런치 카페. 입장하자마자 허리 높이 서빙 로봇이 다가왔다. 로봇 머리 위에는 메뉴판이 놓여 있었고, 좌석까지 안내했다. 휴대폰으로 원격 주문을 하자, 약 3분 뒤 서빙 로봇이 주문한 커피와 케이크를 자리로 가져다줬다. 카페 내에는 10여 대의 서빙 로봇이 분주하게 움직였고, 손님과 관광객들은 연신 사진을 찍었다. 20개가 넘는 테이블이 있는 대형 카페에 손님이 북적였지만, 서빙 직원은 3명뿐이었다.
이 로봇은 한국 스타트업 베어로보틱스가 일본 소프트뱅크 계열사인 소프트뱅크 로보틱스와 손잡고 일본 시장에 출시한 서빙 로봇 ‘서비’다. 베어로보틱스는 2019년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앞에서 로봇을 선보였고 일본 로봇 시장을 함께 개척하기로 했다. 로봇 개발과 제조는 베어로보틱스가, 일본 내 유통과 서비스는 소프트뱅크가 맡는 식이다. 베어로보틱스 창업자 하정우 대표는 “2021년 판매를 시작했는데, 인력난과 고령화를 겪는 일본 시장에서 문의가 급증하고 있다”며 “일본 내 서빙·배달 로봇 점유율 1위”라고 말했다.
◇로봇, 인공지능 “한국 스타트업 기술이라면 오케이”
로봇·인공지능(AI)과 같은 신기술을 무기로 일본 시장을 뚫는 한국 스타트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올거나이즈·메가존·캐플릭스·애자일소다·메타스케일과 같이 AI 챗봇이나 AI 예약 시스템, 클라우드 운영 기술, 무인 렌터카 관리 기술처럼 일본에 없거나 현지 업체보다 앞선 기술을 내놓은 스타트업들이 빠르게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국내에서 큰 성공을 거둔 배달의민족이나 쿠팡이 일본 시장에서 실패하고 철수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글로벌브레인이나 소프트뱅크, Z벤처스 등 일본 유명 벤처투자자들도 한국 스타트업 투자에 적극적이다. 미국 사모펀드 제논파트너스 아시아총괄 임상욱 파트너는 “과거 한국 스타트업은 일본 진출 5~10년쯤 버텨야 성과를 냈지만, 최근엔 한국 스타트업의 기술력만 검증되면 협력 의사를 밝히는 일본 기업들이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무인 렌터카 시스템 업체 캐플릭스는 작년 11월 오키나와현에서 제휴 렌터카 20대로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현재는 2000대로 급증했다. 캐플릭스는 중소 렌터카 업체가 차량을 등록하면 고객과 연결해주는 플랫폼이다. 급증한 배경에는 인건비를 줄여주는 무인 렌터카 시스템이 있다. 일본 중소 렌터카 업체들은 차량 1대를 인도할 때 계약서 작성에만 30분 이상이 걸린다. 캐플릭스가 개발한 무인 시스템은 고객이 직접 운전면허증 등을 스캔하는 방식이어서 3분이면 가능하다. 일손이 부족한 오키나와 렌터카 업계에 소문이 나면서 캐플릭스와 제휴하는 곳이 늘어난 것이다. 이 회사의 윤형준 대표는 “오는 5월에는 후쿠오카와 홋카이도에도 진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기업용 AI 설루션을 만드는 스타트업 올거나이즈는 현재 매출의 절반이 일본에서 나온다. SMBC(은행), 이온그룹(유통), 노무라증권, 니토리(가구) 등 일본의 각 산업 1위 대기업들이 올거나이즈 제품을 쓴다. 올거나이즈의 AI 챗봇은 해당 기업에 꼭 필요한 기능만을 맞춤형으로 제공한다. 일본 대기업들은 법무팀이 과거 소송 자료를 찾거나 인사팀이 인사 규정을 찾기 위해 서류를 뒤져야 했는데, 이 챗봇에 ‘급여 관련 규정 찾아줘’라고 하면 즉시 해당 문구를 제시해준다.
◇일본 기업과 합작사, 파트너십도 증가
한국 스타트업의 기술력을 확인한 일본 기업이 현지 영업·판매를 맡는 사례도 늘고 있다. 클라우드 운영·관리 스타트업인 메가존은 작년 일본에서만 25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일본 현지 고객사만 200곳이 넘는다. 메가존은 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구글 등 여러 클라우드를 쓰는 기업 고객에게 클라우드 간 부딪힘 없이 자연스럽게 연결해주는 설루션을 제공한다. 메가존의 일본 사업은 이토추 상사 계열사인 CTC와 합작법인인 메가존재팬이 맡고 있다. 메가존과 같은 클라우드 스타트업 베스핀글로벌도 2년 전 현지 업체인 서버워크스와 함께 합작법인 지젠을 설립했다. AI를 활용해 공장을 제어하거나 보험 자동 심사를 하는 애자일소다는 일본의 컨설팅기업 TDI와 합작회사를 작년 11월 설립했다. 노무라종합연구소 출신인 TDI 창업자가 일본 기업 영업을 맡고 애자일소다는 제품을 개발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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