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칼럼] 누가 죄인인가
성매매 원색적 비난 여전…사회적 책임·대안 논의를
김인선 부산대 교수·여성연구소
영화 ‘성스러운 거미’(2023)는 이란 최대의 종교도시 마슈하드에서 1년 사이 16명의 희생자를 낸 연쇄살인 사건을 다룬다. 2000년 8월부터 2001년 7월까지 범인은 여성을 스카프로 목 졸라 살해한 후 시체를 차도르에 칭칭 감아 길거리나 운하에 버렸다. 언론은 이 사건을 ‘거미살인’이라 불렀다. 연쇄살인범의 표적이 된 희생자는 모두 밤거리의 여성이었다. 범인으로 체포된 사이드 하네이(39)는 놀랍게도 세 자녀를 둔 중산층 가장이었다. 낮에는 건축 계약자로 일하고 가족들이 저녁 기도를 하러 외출할 때를 기다렸다가 희생된 여성을 집으로 데려와 성폭행 후 살인을 저질렀다.
‘순교자의 땅’이란 뜻을 가진 마슈하드는 매년 2000만 순례자가 찾는 시아파 최대 성지다. 동시에 인접한 아프가니스탄에서 막대한 양의 마약이 유럽으로 운반되는 길목이기도 하다. 성지 순례를 온 수많은 이방인을 상대로 사원 주변에 가난한 여성들이 몰려든다. 성매매와 마약 유통 또한 신성을 파는 마슈하드 산업의 일부이기 때문에 공권력은 이를 방관한다. ‘거미살인’은 이란 사회의 비가시화된 문제를 공론화했다. 감독은 ‘연쇄살인범을 만들어 낸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힘주어 말하며 성스러운 도시 마슈하드의 민낯을 들춘다.
경찰에 체포된 하네이는 자백 후 기자들에게 미소 지으며 ‘신의 뜻’에 따라 도시의 부패와 도덕적 타락에 맞서 싸웠다고 말했다. 그는 종교를 동원해 자신의 살인을 정당화한다. 교수형 집행 직전 인터뷰 영상 속에서도 “전혀 회개할 일이 없다. 체포되지 않았더라면 150명을 죽였을 것”이라며 “매춘여성을 죽이는 것은 바퀴벌레를 밟는 것과 같다”고 호기롭게 말한다. 감독 알리 아바시는 “영상 속 사이드는 자신이 저지른 범죄를 말할 때 행복해 보였고, 평화로워 보였다. 그는 정말 믿고 있었다. 일종의 정직함이 느껴졌다”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그의 신념이 영화를 찍게 된 계기라고 밝힌다. 실제로 연쇄살인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사형이 언도되자 보수 신문 ‘이슬람 저널’은 ‘누구를 심판해야 하나?’라는 기사에서 “질병을 근절하려는 자인가, 아니면 타락의 원흉인가?”라고 되물었다.
‘사이드 하네이 사건’은 단지 이슬람 근본주의 집단이 낳은 일탈일 뿐일까. 유사한 상황이 이미 1888년 영국에서 발생한 바 있다. 150년 전 세계 문명의 심장부인 런던의 중심부에서 총 8명의 성판매여성이 희생된 희대의 연쇄살인이 그것이다. 끝내 범인의 실체를 밝히지 못한 이 미제 사건은 일명 ‘잭 더 리퍼’ 살인으로 불린다. 주목할 대목은 당시에도 연쇄살인이 정의로운 행위로 칭송되었고 희생자들은 부도덕한 행위에 대한 응분의 대가를 치른 자들로 이해되었다는 점이다. 이런 인식은 150년 전 인식만은 아니다. ‘잭 더 리퍼’는 오늘날 세계적인 스타 살인마가 되어 갖가지 콘텐츠로 소비되고 있다. 정작 필요한 희생자에 대한 애도, 희생자를 만든 사회에 대한 고찰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우리의 현실은 어떠할까. 작년 5월 분윳값을 벌기 위해 성매매에 나섰다가 생후 8개월 된 영아를 홀로 방치해 숨지게 한 여성이 체포되었다. 임신 과정에서 낙태를 권한 가족들과 심각한 갈등을 빚은 여성은 2021년 10월 아들을 출산한 뒤 줄곧 홀로 돌봐왔다. 기초생계급여와 한부모 아동양육비로 매달 약 137만 원을 국가로부터 지원받았지만 월세 27만 원, 기저귀, 분윳값을 포함한 양육비와 생활비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건강보험료는 물론 공과금까지 납부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자 이 여성은 성매매에 뛰어들었다. 홀로 어린아이를 돌봐야 하는 처지에서 단시간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선택한 것이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범행에 이르게 된 경위와 중한 결과의 발생에는 사회적 취약계층을 적절하게 보호하지 못한 우리 사회의 책임도 있다”며 “피고인이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나름 최선을 다해 애정을 가지고 피해자를 보호·양육해 왔다”며 이례적으로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재판부 판결은 성판매여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변화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 많은 직업 두고 왜 밤에 나가는 직업을 선택했느냐”, “성매매가 최선이었나. 이해할 수 없네”와 같은 댓글들은 여성을 극단으로 내몬 사회의 책임을 묻기보다 개인에게 비난의 화살을 꽂고 있다. 8개월 아이를 부양하려고 성매매에 나선 엄마는 공장에 취직하고 옷가게 등에서도 일했지만 늘 얼마 지나지 않아 쫓겨났다고 한다. 장애인으로 등록돼 있진 않았지만 지능이 떨어져 업무처리 능력이 부족한 때문이었다. 아이는 1.87kg의 미숙아로 태어났지만 이후 또래 영아들과 동일한 발육도를 보일 정도로 최선을 다해 아들을 보호하고 양육했다. 2023년은 성매매처벌법이 제정된 지 20년째 되는 해다. 극단에 내몰린 이들의 선택에 대해 비난보다 대안을 논의해야 할 때다. 누가 이 여성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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