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시대의 ‘돼지 저금통’ 단기 적금 뜬다
여행자금 등 목적 가입 많아
올해 직장 생활을 시작한 사회 초년생 박모(29)씨는 최근 인터넷 전문 은행인 케이뱅크에 만기 한 달짜리 적금을 들었다. 매일 1만원씩 30일간 30만원을 모아 5월 황금연휴 때 국내 여행비로 쓸 계획이다. 한 달짜리 적금이라 세금을 뗀 후 이자가 700원 정도밖에 안 되지만, 어릴 적 돼지 저금통에 저축하는 기분으로 돈을 모으고 있다.
박씨는 “하루 1만원을 적금 넣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자잘한 소비를 줄이게 된다”며 “돼지 저금통은 아예 이자가 없지만 단기 적금은 푼돈이라도 이자를 주는 게 장점”이라고 했다. 지난 3일 출시된 이 한 달짜리 적금 가입자 중 60%가 박씨 같은 2030세대다.
◇저금통 ‘쨍그랑’ 대신 스마트폰 터치
이달부터 6개월 미만의 짧은 기간으로도 가입할 수 있는 단기 적금이 출시되면서 박씨처럼 단기 적금으로 저축 습관을 들이는 2030들이 많아지고 있다. 원래 적금은 만기가 최소 6개월 이상이어야 했지만, 한국은행이 올해 4월부터 규제를 풀면서 은행들이 앞다퉈 만기 1개월부터 가입할 수 있는 상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단기 적금은 하루나 일주일 단위로도 계좌에 돈을 넣을 수 있다. 좋아하는 아이돌 생일을 만기일로 지정해놓고 모은 돈으로 아이돌 굿즈를 사려는 가입자, 납입 주기를 일주일로 설정해 놓고 ‘불금(불타는 금요일)에 쓸 유흥비를 적금 계좌에 넣겠다’는 목표를 세운 가입자도 있다. 주로 모바일로 가입하는 데다 돼지 저금통처럼 소액을 모으기 때문에 ‘모바일 돼지 저금통’으로 불리기도 한다.
하나은행이 지난 7일 만기를 줄여 출시한 ‘하나 타이밍 적금’은 스마트폰 화면의 빨간색 ‘타이밍 버튼’을 누를 때마다 10~5000원(월 최대 15만원)씩 본인이 미리 설정해 둔 금액이 적금 계좌에 적립된다.
한 30대 여성은 이 적금에 ‘커피 값을 아끼자’라고 이름 붙였다. 커피 한 잔의 유혹을 참을 때마다 ‘타이밍 버튼’을 눌러 커피 값인 3800원씩 저금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어렸을 때 500원 동전을 돼지 저금통에 넣던 추억이 떠오른다”고 했다. 하나은행 주요 적금 신규 가입이 하루 평균 1000여 좌인데, 1~6개월 만기인 타이밍 적금 출시 첫날 4500좌가 신규 가입했다.
KB국민은행은 최고 연 6% 금리를 주는 ‘KB 특별한 적금’을 12일 출시했다. 이 은행 하루 평균 전체 적금 가입 건수는 7000좌 수준인데, 예약 때 3일 만에 5만3000명이 몰렸다. 가입 시 설정한 목표 금액을 다 채우면 1%포인트 우대금리를 준다.
기업은행도 지난 3일 기존 ‘IBK 디데이 적금’ 최소 가입 기간을 1개월로 줄였다. 단기 적금 출시 3일 만에 총 가입 계좌 중 만기가 6개월 미만인 계좌 비율이 20%를 넘겼다. 단기 적금 가입자 절반 가까이가 2030이다.
◇한 달 만기 후 이자 1000원대… ”소액 저축용”
단기 적금에 가입하는 젊은 세대에게 이자는 큰 고려 요소가 못 된다. 대부분 소액 저축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실물 저금통과 비교하면 잔돈 수준이라도 이자를 주는 게 어디냐”고 반문한다.
월 불입 한도를 채워 한 달 만기로 적금을 들었을 때 손에 쥐는 이자는 많아야 세후 1000원대다. 또 대부분 단기 적금이 젊은 신규 고객을 끌어오려는 행사 상품 성격이 강해 ‘친구 추천’ ‘첫 거래 고객’ ‘자동이체 3회’ 같은 조건을 채워야 최고 금리가 적용된다.
젊은 세대 선호도가 높은 점을 감안해 은행들은 라방(라이브방송)으로 단기 적금 판매 채널을 넓히고 있다. 소비자와 채팅으로 실시간 소통하며 온라인으로 물건을 파는 방식이다. 지난 11일 하나은행이 라방을 한 단기 적금은 이날 1만2000좌가 팔렸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돈을 장기간 묶어두는 성향이 약한 젊은 세대의 자산 관리 특성에 맞춰 단기 적금을 내놓고 있다”며 “이자로 재미보기보단 저축하는 습관을 기르려는 수요가 많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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