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선거제 개편, 지방소멸 반드시 고려해야
얼마전 만난 수도권 국회의원은 내년 총선에서 자신의 지역구가 있는 지자체의 의석이 또 늘어날 것 같다는 얘기를 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의 올해 2월 자료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인구 상한을 넘은 지역이 18곳인데 그중 12곳이 수도권이기 때문이다.
수도권 인구가 전체의 절반을 이미 넘어선 상황에서는 다음 총선에서 수도권 의석 비중이 역대 최초로 과반에 달할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수도권 의석이 늘어나면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비수도권의 의석 수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16대 국회의 수도권 의석은 서울(45석), 경기(41석), 인천(11석) 등 모두 97석이었는데, 21대 국회의 수도권 의석은 121석(서울 49·경기 59·인천 13)으로 늘었다. 16대 국회는 국가균형발전에 강한 의지를 보였던 노무현 정부 당시였다. 노무현 정부 이후 국가균형발전 정책이 지속적으로 쇠퇴한 결과 수도권 인구 및 국회의원이 꾸준히 늘면서 수도권 의석 수가 121석이나 된 것이다.
부산만 해도 18석을 사수해야 한다는 위기감이 크다. 이는 현행 소선거구 제도를 제 22대 총선에 그대로 적용할 경우의 문제다. 단순히 인구 중심으로 선거구를 획정하게 되면 점점 수도권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국회의원들의 수는 늘어나고 지방소멸 우려까지 나오는 비수도권을 대표할 의원 수는 줄어드는 기형적인 구도가 형성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수도권 주민들이야 자신들에게 이익을 안겨줄 지역구 의원이 더 늘어나는 게 당장은 좋겠지만, 그로 인해 지방소멸이 가속화돼 급기야는 지방이 텅 비어버리는 암울한 미래를 맞이할 수도 있다.
수도권 의원의 목소리가 큰 더불어민주당의 경우를 보자. 국가균형발전 DNA를 자부하고 있으면서도 민주당은 산업은행 부산 이전을 강경하게 반대하고 있다. 산은 본점 소재지인 서울 영등포을 출신 김민석 정책위의장이 당 지도부에 입성한 이후 산은 부산 이전을 반대하는 당 차원의 공식 입장을 발표하더니, 이후 반대 기자회견을 잇따라 개최하며 산은 이전 반대 움직임을 노골화하고 있다. 이처럼 수도권 출신 국회의원들은 간혹 국회 ‘균형발전특위’같은 곳에 들어가 균형발전을 부르짖다가도 자신의 지역 문제와 결부된 사안에 있어서는 지역구의 입장을 대변할 수밖에 없다.
수도권 국회의원 수가 늘어나고 있는 현 상황에서는 근본적인 원인인 수도권 인구 집중 문제를 해결해야만 비수도권 유권자들이 정치와 정책에서 소외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수도권 인구 집중 문제를 단기간에 해결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선거제 개편을 논의하면서 인구 수에 따라 선거구를 정하는 산술적인 논리를 도입해서는 안된다.
지난 10일부터 국회 전원위원회가 시작돼 13일까지 나흘 간 선거제도 개선 방안을 논의한다. 앞서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의결한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선에 관한 결의안’을 보면 수도권에 경제적 자원과 정치권력이 집중돼 있는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소멸 위기에 처한 지역의 이익을 고르게 대변하고 정치적 자원을 공정하게 분배하기 위한 특단의 개혁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지방소멸 문제가 이번 논의의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전원위에서는 ▷도농복합형 중대선거구제+권역별·병립형 비례대표제 ▷소선거구제+권역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개방명부식 대선거구제+전국·병립형 비례대표제 등 3가지 안을 두고 여야 의원들이 자유 발언 방식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 난상토론이라기보다 제 각각 주장을 펼치다 보니 마지막날인 13일까지 어느 한쪽으로 의견이 좁혀질 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국회의원들이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나 마찬가지인 현재의 선거제 개편 논의에 뛰어든 만큼 비수도권 주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편이 이뤄져야 한다. 기득권을 내려놓고 이번 선거제 개편 논의를 시작하게 만든 가장 큰 이유인 ‘지방소멸’ 위기에서 대한민국을 구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안을 도출해야 할 것이다.
김태경 서울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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