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지극히 ‘실험적’이란
동시대 공연 작품에 있어 ‘실험적’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실제로 많은 예술가가 창작에 앞서 이 실험적이라는 단어에 집착하는 모습을 많이 봐 왔고 필자 역시 항상 그 지점에 대한 고민이 있다. 창작된 작품이 관객들로 하여금 창의적이고 새롭게 읽혀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사실 공연예술에서 실험적인 작품이 좋은 작품이라는 등호가 성립된 시기는 2500년이라는 공연예술의 긴 역사를 놓고 봤을 때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필자는 그 시발점이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에 유럽 국가들에서 일었던 개혁인 아방가르드 연극 운동이라고 보고 있으며, 이후 1960년대부터 세계 공연의 발달에 영향을 미쳤던 네오 아방가르드 연극 운동에서 극대화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 그와 맞물려 있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이르러 공연예술의 변화와 다양성의 시도가 확장됐다. 예를 들어 셰익스피어 작 ‘햄릿’으로 세계 공연계는 무수히 많은 햄릿의 모습을 재탄생시켰다. 오히려 작품 ‘햄릿’을 희곡 그대로 공연하는 것이 훨씬 더 실험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이처럼 동시대 공연예술은 몇 차례의 혁신과 다양한 매체와의 협업 등을 통해 새롭게 거듭났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햄릿’의 수많은 레퍼토리 작품들보다 희곡 그대로 공연하는 ‘햄릿’이 더 실험적이라고 앞서 언급한 바와 비슷한 맥락에서 무대나 조명, 의상 등 장치에 대한 의존도를 상당히 낮추고 오롯이 창작적 내러티브와 그에 상응하는 움직임에 집중한 한 현대무용 작품이 새로운 느낌으로 필자를 자극했다.
‘Alone, naturally’는 작년 마곡으로 이전한 LG아트센터의 블랙박스 극장인 유플러스(U+)스테이지에서 2023년 3월에 공연된 현대무용가 김나이의 새로운 안무작이다. 텅 빈 무대의 댄스플로어에 덩그러니 누워 있는 한 사람. 수미상관(首尾相關) 구조로 전개되는 이 작품은 현대인으로 삶을 살아가는 홀로 된 인간군상을 대변하는 듯 공허한 느낌을 준다. 특히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직면한 동시대 인물들을 형상화한 모습에서 객석에 앉아 있는 나 자신을 끊임없이 환기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첫 장면 이후 9명의 무용수가 등장해 각자의 속도로 무대의 하수에서 상수로 끊임없이 이동한다. 그들의 움직임은 목적이 없으면서도 한편으로 무겁다. 이따금 뒤로 걷는 무용수도 등장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반복의 시퀀스를 거치면서도 그들이 동작 그대로 엎어져 누워 있는 모습일 때 무대가 한결 안정적으로 보였다는 것이다. 무용수들 제각각의 불안한 시선들 속에서 관객으로서 안도감이 느껴지는 그들의 움직임이 바로 누워 있는 자세라는 것이 몇 번이고 와 닿았을 때 이 공연이 말하고자 하는 인간으로서의 외로움과 변질된 공동체의 의미들이 피부로 느껴졌다.
현대무용은 동시대성이 강한 예술이기에 더욱 적극적으로 현실을 반영하며 자연스레 동시대성이 요구되는 장치들이 많이 사용된다. 그런데 작품의 주제를 더욱 명료하게 전달하기 위해 공연 장치와 같은 외연에 집착하지 않고 움직임만으로 관객에게 공감되는 내러티브로 구성된 본 작품 ‘Alone, naturally’가 오히려 지극히 실험적인 형태의 새로운 작품이었다고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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