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0조 시장이 온다… 삼성·LG·엔비디아 눈 돌린 곳
LG전자가 올 1분기(1~3월)에 1조4974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두면서, 14년 만에 삼성전자(6000억원)의 실적을 넘어섰다. 전자 업계에선 그 배경으로 전장(VS·자동차 부품) 사업부의 약진을 꼽는다. 6년 이상 적자를 냈던 VS 부문이 작년 2분기부터 흑자로 돌아선 데다, 매 분기 빠른 성장세를 보이며 영업이익이 커지고 있어서다. 증권가에선 전장 부문의 이익 기여도가 커지면서, LG전자가 올해 연간 최대 실적을 낼 것으로 보고 있다.
글로벌 IT(정보 기술)·전자 기업들이 앞다퉈 자동차 부품 산업에 뛰어들고 있다. 스마트폰·PC·TV와 같은 전통 효자 사업들이 글로벌 경기 침체와 함께 수요가 급락하는 가운데, 자동차 부품 산업은 전기차·자율주행차로의 전환에 따라 빠르게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 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에 따르면 글로벌 전장 시장 규모는 내년 4000억달러에서 2028년엔 7000억달러(약 924조원)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미 삼성·LG를 비롯해 엔비디아·화웨이 등 해외 IT·전자 기업들도 전장 부문을 공격적으로 키우고 있다. 시장이 계속 커지는 블루오션인 만큼 지금이 투자의 적기라는 판단 때문이다.
◇사업 포트폴리오 바꾸는 삼성·LG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지난달 24일 중국 톈진에 있는 삼성전기 사업장을 방문했다. 톈진 공장은 삼성전기의 전장용 MLCC(적층세라믹콘덴서) 대부분을 생산하고 있다. 전자 업계에선 최근 호실적을 보이고 있는 전장용 MLCC 사업 확대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행보라는 평가가 나온다. MLCC는 반도체에 안정적으로 전류가 공급되도록 조절해주는 일종의 ‘댐’과 같은 역할을 한다. 스마트폰용 MLCC는 폰 1대에 1000개 정도 들어가지만, 차량용은 한 대에 1만~1만5000개가 필요하다. 또 차량용 MLCC는 스마트폰용보다 고온·충격에 더 강해야 하는 만큼 부품 단가도 스마트폰용의 2~3배다. 삼성전기가 최근 자회사였던 솔루엠 지분을 매각해서 마련한 1000억원가량의 현금도 MLCC 사업 확대에 상당 부분 투입될 전망이다. 장덕현 삼성전기 사장은 최근 주주총회에서 “자동차용 부품 회사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도 전장 시장을 염두에 두고,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 구조에 변화를 주고있다. 경계현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사장도 “파운드리 사업에서 모바일 제품군 이외의 분야가 차지하는 매출 비중을 2027년까지 50%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이 중 주력으로 꼽히는 게 차량용 반도체다. 삼성전자는 최근 미국 자율주행 기업인 모빌아이의 ADAS(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 칩 물량을 따냈고, 지난달부터는 미국 인공지능(AI) 반도체 업체 암바렐라의 자율주행용 반도체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매출에 크게 의존하는 사업 구조 때문에 메모리 반도체 업황이 나빠지면 실적에 큰 타격을 입는다”며 “이런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미래 사업 중 하나가 차량용 반도체”라고 말했다.
LG의 전자 계열사들도 전장 사업의 비중을 늘리고 있다. 정철동 LG이노텍 사장은 최근 주주총회에서 “차량 카메라, 라이다, 파워 모듈 등 전기차 및 자율주행 부품 사업을 새로운 성장 축으로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LG이노텍은 지난달 기존 제품보다 크기를 20% 줄이면서 데이터 송수신 속도를 향상시킨 차량용 통신 모듈 제품을 개발하는 등 사업 중심 축을 차량용 제품으로 옮기고 있다. 스마트폰에서 쌓은 이미지 센서 노하우를 바탕으로 자율주행용 카메라 모듈 시장도 개척한다는 전략이다. LG이노텍은 애플 아이폰에 들어가는 카메라 모듈이 전체 매출의 80%를 차지하는데, 본격적인 체질 개선에 나선 것이다. 실제로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 전시회 ‘CES 2023′에 처음으로 부스를 차린 LG이노텍은 출품한 43가지 제품 중 60%를 전장 부품으로 채웠다. TV 수요 부진으로 지난해 2조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한 LG디스플레이도 차량용 투명 OLED(유기발광다이오드)나 차량 내부 설계에 맞춰 쉽게 구부릴 수 있는 플라스틱 OLED(P-OLED) 등 첨단 제품을 미래 먹거리로 보고 육성하고 있다.
◇“다양한 전장 기술 경쟁 펼쳐지는 춘추전국시대”
글로벌 그래픽처리장치(GPU) 시장을 장악한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도 전기차에 탑재되는 차량용 반도체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엔비디아는 지난달 중국 자동차 업체 BYD(비야디)와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향후 출시되는 다이너스티 등 BYD의 신차에 엔비디아가 설계한 자율주행차용 프로세서 ‘드라이브 오린’을 탑재한다는 내용이다. 애플의 최대 위탁 생산 업체인 대만 폭스콘은 아예 전기차 생산 공장을 매입해 전기차 위탁 제조에 시동을 걸었다. 지난 2021년 미국 전기차 회사 로드스타운의 미국 오하이오 생산 공장을 인수한 데 이어, 지난 9일에는 “앞으로 3년간 대만 남부 가오슝에 전기버스와 전기차용 배터리 제조 공장을 포함한 시설 건설에 250억 대만달러(약 1조800억원)를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때 중국 최대 스마트폰 기업이었던 화웨이도 미국 제재 이후 전장 산업으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화웨이는 중국 전기자동차 기업 싸이리스와 합작한 전기차 브랜드 ‘아이토’의 신차 M5가 오는 17일 공개된다고 발표했다. 이 차에는 화웨이가 개발한 전기차 모터와 전기차 구동 시스템인 ‘드라이브 원’이 탑재됐다. 차량용 OS(운영시스템) ‘훙멍' 역시 화웨이가 개발했다.
전자 업계 관계자는 “자율주행을 돕는 AI 반도체부터 전력 통제용 파워 모듈, 첨단 차량용 디스플레이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기술 경쟁이 펼쳐지는 춘추전국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말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신네르, APT 파이널 우승...2024년 남자 테니스를 지배하다
- GS건설, 22년만에 '자이(Xi)' 브랜드 리뉴얼...새 브랜드 철학, 로고 공개
- 하청업체 기술 훔쳐 중국에 넘긴 귀뚜라미 보일러…과징금 9억원
- 김정은, “핵무력 강화, 불가역적인 정책”
- ‘독극물과 다름없다’더니... 햄버거 들고 트럼프와 사진 찍은 케네디
- 野 “대북전단 방치한 국방장관, 탄핵 사유 검토”
- Trump Rally sparks Crypto boom in S. Korea, overshadowing its stock market
- 野 이해식, 이재명 사진 올리며 “신의 사제, 신의 종”
- “치료비 도와달라” 호소한 中암환자, 알고보니 부동산 재력가
- “타이슨 엉덩이만 봤다”…6000만명 몰린 이 경기, 불만 폭주한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