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억 횡령·배임' 조현범이 남긴 상처…한국타이어, ESG도 뒷걸음질
ESG 통합 등급 B+서 B로 하향 조정…"주주 가치 훼손 여지 있다"
조현범 구속 등 반복된 오너 리스크로 지배구조 개선 불투명
[더팩트ㅣ이성락 기자] 200억 원대 횡령·배임 혐의로 조현범 회장이 구속 기소되면서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한국타이어)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등급이 뒷걸음질 쳤다. 기업 대부분이 ESG 경영을 고도화하는 추세에 맞춰 한국타이어 역시 강한 실천 의지를 드러내 왔지만, 그룹 총수의 범죄 행위로 인해 회사 차원의 노력이 모두 수포로 돌아간 모습이다. 회사 실무진이 노력하더라도 최고경영진(CEO)에서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ESG 실현이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는 분석이 나온다.
13일 재계에 따르면 ESG 국내 평가 기관인 한국ESG기준원은 최근 기업 두 곳의 ESG 통합 등급을 하향 조정했다. 이는 1월 1일부터 지난달 31일까지 주요 기업에 대한 올해 1분기 ESG 평가를 실시한 결과로, 등급이 내려간 기업 중 한 곳은 한국타이어다. ESG 등급은 S, A+, A, B+, B, C, D 등 7등급으로 분류하며, 한국타이어의 ESG 통합 등급은 기존 B+(양호)에서 B(보통)로 떨어졌다. B는 지속 경영 체계를 갖추기 위한 노력이 더 필요하며, 비재무적 리스크로 인한 주주 가치 훼손의 여지가 있음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 한국타이어는 환경(E)과 지배구조(G) 영역에서 등급이 떨어졌다. 먼저 환경은 B+에서 B로 조정됐으며, 지난달 12일 발생한 대전공장 화재와 관련해 미흡한 부분이 있었다는 평가다. 13시간 동안 이어진 화재는 21만 개의 타이어와 주요 시설을 태우는 등 내부 피해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에도 큰 피해를 줬다. 현재 한국타이어에 접수된 주민 피해는 1200건을 넘어선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한국타이어의 지배구조 등급은 B에서 C로 추락했다. C는 지배구조의 취약성이 지속해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한국ESG기준원이 제시한 등급 조정 사유는 '횡령·부당 지원 행위 가담 혐의 발생'이다. 그룹을 지배하고 있는 조현범 회장이 구속 상태에서 재판에 넘겨진 상황을 고려한 것이다. 한국ESG기준원은 조현범 회장의 범죄 혐의와 관련해 한국타이어의 전사적 ESG 내부 통제가 미흡했다고 봤다.
조현범 회장은 자신이 지분을 보유한 계열사 한국프리시전웍스(MKT)의 타이어몰드를 경쟁사보다 비싸게 사주는 방식으로 부당 지원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한국타이어가 MKT에 몰아준 이익이 배당금 등의 형태로 조현범 회장을 비롯한 오너 일가에 흘러 들어갔다고 의심하고 있다. 또 조현범 회장은 개인적 친분을 이유로 경영이 부실한 것을 알면서도 지인의 회사에 50억 원의 회삿돈을 빌려주고, 집을 수리하거나 5억 원대 페라리 488피스타 등 외제차를 사는데 회삿돈을 사용한 혐의도 있다. 조현범 회장의 횡령·배임액은 총 200억 원대로 추산된다. 조현범 회장은 지난달 27일 구속 기소됐으며, 법원은 오는 21일 조현범 회장의 첫 공판준비기일을 열 예정이다.
현재 주요 기업들은 ESG 경영을 놓고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데 공감하고 있다. 투자자는 물론 소비자도 ESG 고도화를 요구하고 있으며, 국내외 ESG 규제를 감안했을 때 경영상 차질을 빚지 않으려면 ESG 경영을 강화해야 한다. 한국타이어도 이를 인식해 대외적으로 ESG 경영 강화를 외치고 있다. 2021년 ESG위원회를 설치한 한국타이어는 지난해 기업 지배구조 헌장을 제정·공표했고, 탄소중립 기조에 발맞춰 업계 최초로 '과학 기반 감축 목표 이니셔티브'에 가입하기도 했다. 한국타이어는 2010년부터 기업의 지속 가능 경영 활동과 성과, 중장기 전략을 공유하는 ESG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그룹 총수의 범죄 등 오너 리스크로 인해 ESG 강화를 위한 회사 차원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고 있다는 평가다. 한국ESG기준원은 기업의 ESG 경영을 강화하려면 CEO 중심의 강도 높은 ESG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기준원은 "ESG 수준이 양호한 것으로 평가되기 위해선 이사회와 CEO의 ESG 관행 개선이 전제돼야 한다"며 "근본적인 ESG 체질 개선이 없는 상태에서 실무진의 활동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향후 한국타이어의 ESG 개선 여지가 뚜렷하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이번에 C 등급으로 하향 조정된 지배구조 영역이 더더욱 그렇다. 재계에서는 조현범 회장의 구속 등 오너 리스크가 반복되는 것을 두고 준법·윤리 경영을 관리하는 회사 내부 통제 시스템이 사실상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실제로 조현범 회장의 구속은 지난 2019년 11월 이후 이번이 두 번째로, 오너 리스크는 한국타이어의 고질적 문제로 거론되고 있다. 당시 조현범 회장은 하청업체로부터 납품 대가로 매달 수백만 원씩 받아 수억 원을 챙긴 혐의 등으로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한국타이어 지배구조 등급은 지속 하락하는 추세다. 해당 등급은 이번에 B에서 C로 떨어지기 전, 지난해 말 기준 이미 B+에서 B로 하락한 상태였다. 그때도 계열사 부당 지원과 특수 관계인 사익 편취로 인한 과징금 부과 등 오너 리스크와 관련한 사안이 문제로 지적됐다.
노조 측은 현재 B인 한국타이어의 ESG 통합 등급조차 과대 평가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용성 금속노조 한국타이어지회장은 "한국타이어의 ESG 등급이 떨어진 것에 대해 직원의 한 사람으로서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러나 내부 직원 입장에서 기존 ESG 등급 역시 잘못된 평가라고 본다. 회사는 밖으로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고 있지만, 정작 자사 노동자의 의견은 무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rocky@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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