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층시사국] 원격(遠隔) 씨의 ‘사라진’ 출근길

정진규 2023. 4. 12.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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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층시사국 11회 II] 원격 씨의 사라진 출근길

[프롤로그]
속초에서 눈을 뜬지 단 15초 만에 출근 도장을 찍는 주인공이 있습니다.

서울에서 속초로 이사 온 30대 박민철 씨인데요. 그는 서울에서 다니던 직장의 업무를 속초에서도 그대로 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을 활용한 원격근무를 시작하면서 매일 반복되던 지하철 출근 전쟁을 벗어났습니다.

박민철 / 원격 근무자
주변에 산이랑 호수가 있으니까 나가게 되더라고요, 자연스럽게. 그래서 러닝도 하고
운동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훨씬 건강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얼마 전 충북도립대학교를 졸업한 뒤 일자리를 찾고 있는 김진희 학생.

전공을 살려 기계 설비 분야 취업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지방에선 맘에 드는 일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김진희 / 취업준비생
당연히 대기업을 목표로 잡고 있고,
그런 대기업들은 수도권이나 경기도권에 집중돼 있어요.

"(취재기자) 나는 졸업 뒤에 지방을 떠나
수도권으로 갈 생각이다라는 학생들 손을 좀 들어주세요."


이 학교 학생 20명 가운데 14명이 수도권으로 가고 싶다며 손을 들었습니다.
허동숙 / 공주교대 사회과교육과 교수
대기업들이 수도권에서 내려오지 않고 수도권에 스타트업이라든지
청년층들이 선호하는 그런 직군. 그리고 기업 본사, 소위 말하는
고급 일자리들이 풍부하기 때문에 지방에서 계속 청년층들의 이탈이
가속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고요.

충주에 자리한 한국교통대학교.

이곳에서도 똑같은 질문을 던져 봤습니다.

"(취재기자) 나는 졸업 뒤에 지방을 떠나
수도권으로 갈 생각이다라는 학생들 손을 좀 들어주세요."

이번에는 10명의 중 3명만 수도권으로 가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이번엔 질문을 바꿔서 물어봤습니다.


지방에 남겠다는 학생은 10명 중 7명. 충북도립대와 한국교통대의 결과는 왜 정반대로 나온 것일까요.

[스튜디오]

남현종 / 9층 시사국 MC
: 졸업 후에 수도권으로 가겠느냐는 질문에 같은 충북권에 있는 대학인데, 한쪽은 70%가 수도권에 가겠다, 다른 한쪽은 70%가 지방에 남겠다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죠?

정진규 / 취재기자
: 지방에 남겠다는 학생들이 많았던 한국교통대는 충주에 있는데요. 충북 충주에는 지난해 매출 2조 원가량을 기록한 대기업인 현대엘리베이터 본사와 생산 시설이 집약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학생들 입장에서는 현재 있는 곳에서 대기업에 취업할 기회가 있으니 졸업 뒤에 반드시 수도권에 가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또, 이와 관련된 재미있는 연구 결과도 하나 있는데요. 지방 출신인 수도권 대학 졸업자들의 임금 수준을 확인해봤더니 수도권에서 취업한 졸업생들의 평균 임금이 212만 원이었는데 반대로 지방으로 돌아가서 취업한 학생들의 평균 월급이 243만 원으로 나타난 겁니다.

남현종 / 9층 시사국 MC
: 오히려 지방으로 돌아간 청년들의 임금이 훨씬 높았네요.

정진규 / 취재기자
: 네, 맞습니다. 연구자인 한림대 조동훈 교수에 따르면 지방에도 적기는 하지만 임금적인 측면에서 양질의 일자리가 있는데, 이 일자리를 찾아서 지방 출신 수도권 대학 졸업자들이 내려오기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남현종 / 9층 시사국 MC
: 양질의 일자리가 지방에도 많이 있다면 지금 청년들이 수도권에 몰리는 그런 현상을 좀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듭니다. 어떻습니까?

이형종 / 한국ESG협회 이사
: 고령화 속도는 빨라지고, 그리고 기업은 노동력이 부족한 지방은 또 회피하고, 이러다 보니 지방은 악순환에 빠지고 있습니다.

남현종 / 9층 시사국 MC
: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금 정 기자가 취재를 해온 내용처럼 아무래도 좀 좋은 일자리가 먼저 지역에 배분돼야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이형종 / 한국ESG협회 이사
: 수도권 청년층의 58.7%가 지방으로 이주할 의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지방에 양질의 일자리가 없다는 게 지방으로 이주하지 않는 요인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남현종 / 9층 시사국 MC
: 청년들의 생각은 어땠습니까?

정진규 / 취재기자
: 저희가 카카오에 근무하면서 지방 이주를 현실화한 청년을 만나봤는데요. 지방 이주 전 이 청년의 상황을 직접 한번 들어보시죠.

김혜영 / 지방 이주 청년
사실 판교에 올라가서는 좀 일 위주로 생활했거든요.
당시에 제가 맡았던 업무가 제휴 업무여서 여러 언론사도 만나고
방송사도 만나고 정말 많은 사람과 만나다 보니까 조금 번아웃도 많이 왔었고
일 위주의 생활만 했다. 이렇게 보시면 될 거 같아요.

정진규 / 취재기자
: 하지만 이 청년은 고향인 제주도로 이주한 뒤에 삶의 만족도가 크게 높아졌다고 저희에게 말했는데요. 지방 이주를 선택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직장인 카카오의 본사가 제주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청년은 자신처럼 양질의 일자리가 지방에도 있다면 많은 청년의 선택이 달라질 수 있다고 얘기합니다.

남현종 / 9층 시사국 MC
: 실제 기업의 입장에서 지역으로 가고 싶어 하는지 궁금한데, 어떻습니까?


정진규 / 취재기자
: 그렇습니다. 지난해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우리나라 매출액 1,0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를 해봤더니요. 응답 기업 가운데 90% 기업의 가까이가 지방 이전 계획이 없다고 답변했습니다. 저희가 앞서 청년들의 수도권 집중 현상에 대한 해법으로 대기업의 지방 이전,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해줄 수 있는 대기업의 지방 이전을 이야기했지만 정작 기업들은 지방으로 이전할 생각이 없다는 겁니다.

남현종 / 9층 시사국 MC
: 일단 기업들은 지방 이전에 대해서는 그다지 긍정적이진 않은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전혀 해법이 없을 것 같지는 않은데요. 다른 묘수는 없을까요?

이형종 / 한국ESG협회 이사
: 현재 많은 글로벌 기업은 언제 어디서나 일하는 장소와 시간을 선택할 수 있는 일 방식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10년 전부터 원격 근무 장려 대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왔습니다. 그리고 그 원격 근무가 이제는 보편적인 일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VCR]

시즈오카 동쪽에 위치한 미시마.

조용한 마을 한 켠에는 요코하마에서 이주한 코가 씨가 살고 있습니다. 도쿄의 한 회사에서 근무하는 코가 씨는 지난해 회사가 상시 원격 근무를 도입하자 이곳으로 이주했습니다.


그녀는 원격 근무를 통한 지방 이주 생활을 1년 넘게 이어오고 있습니다.

코가 아키코 / 원격 근무 지방 이주자
“원격 근무가 가능해지면서 지방에 남아서 일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앞으로는 지방에 살고 싶다는 분들이 늘고, 줄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인구 6천여 명의 작은 마을 다테시나.


이곳에는 대도시 이주민들을 지원하기 위한 텔레워크 센터, 이른바 원격 근무 지원 센터가 들어서 있습니다. 일자리가 한정된 작은 마을로 이주하는 사람들에게 대도시의 원격 근무 일자리를 연결해 주는 겁니다.

마키우치 구미 / 다테시나 텔레워크센터 사무국장
"다테시나의 문제는 인구 감소입니다.
제가 여기 왔을 때, 많은 분이 다테시나에 이주를 하고 싶다거나,
고향으로 돌아오고 싶다는 상담을 했었는데요. 이주하려 해도 일이 없었죠.
특히, 여기에서는 컴퓨터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는데,
그런 일을 만들어 이주자를 늘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센터가 처음 문을 연 2017년에만 해도 원격 근무자는 9명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100명 가까운 주민이 대도시 기업 11곳의 일을 원격 근무로 처리하고 있습니다.
마키우치 구미 / 다테시나 텔레워크센터 사무국장
"이는 텔레워크(원격 근무)가 보급되지 않았으면 불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19의영향으로 수도권 기업과 사원들 대부분이 원격 근무를 경험하면서,
다테시나에 일을 맡기는 데 거부감이 없어졌고요.
여기서 원격 근무는 일을 하는 데 있어 필수 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원격 근무 지원센터의 처음과 끝을 책임지는 우에마에 씨는 원격 근무와 지방의 미래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말합니다.
우에마에 도모히로 / 타테나시면사무소 지역진흥계장
"(과거에는) 이주 홍보를 아무리 해도 의미가 없었습니다.
지금까지는 기업을 유치하고, 공장 유치하는 게
고용을 창출하는 주된 방식이라고 생각했지만,
앞으로의 시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원격으로도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도시가 아니라도 일을 할 수 있다는 인식이 큰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기업들도 원격 근무로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알았고요.

일본 내에만 직원 18만 명을 거느린 일본 최대의 통신기업 NTT그룹.

과거, 직원의 거주지를 통근시간 2시간 이내로 제한했던, 일본 안에서도 손꼽히는 보수적 기업이었는데요. 이런 NTT그룹도 이제는 필수 현장직을 제외한 70% 이상의 직원이 원격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NTT는 본사가 있는 도쿄뿐만 아니라 일본 전역에서 직원들이 원격으로 일할 수 있도록 위성 사무소를 500곳 가까이 늘렸습니다.

요시오카 이쿠로 / NTT 인사제도총괄 부장
"(원격 근무로) 일하는 장소가 자유로워지면,
다양한 이유로 도쿄에 올 수 없었던 젊은이들이 (지방에서) NTT에 근무할 수 있고,
지금 도쿄에서 일하는 사람도 더 좋은 환경에서 일하고 싶다면
NTT에서 (원격 근무로) 일할 수 있기 때문에..."

인구 10만 명이 되지 않는 나가노현 사쿠시.

사쿠시 순 유입인구는 나가노 현에서 가장 많은 306명을 기록했습니다. 사쿠시는 원격 근무의 확산에서 그 이유를 찾고 있습니다.

오기하라 아유미 / 나가노현 사쿠시청 이주교류추진과장
"(원격 근무를 통해) 지금까지 하던 일을 그대로 하면서
거주지만 사쿠시로 옮기는 것이,
일이 바뀌지 않는다는 안심감과 자연 환경이 좋은 사쿠시에서
여유롭게 살 수 있는 좋은 환경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나카니시 호다카 / 테이쿄대학교 첨단연구기구 교수
"한곳에 머물기만 하는 게 아니라 왔다 갔다 하면서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도 생기겠죠.
그런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앞으로의 우리 사회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스튜디오]

남현종 / 9층 시사국 MC
: 얘기를 들어보니까 일본에서는 이직 없는 지방 이주에 대해서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네요.


정진규 / 취재기자
: 네, 그렇습니다. 실제로 일본 내각부 자료를 보면요. 20세에서 59세 도쿄권 거주자의 49.8%가 지방권 생활에 관심이 있다고 응답을 했습니다. 특히 지방 출신인 도쿄권 거주자들은 이보다 더 높은 61%가 지방 이주에 관심이 있다고 응답을 했고요. 또 나이도 30대에 가까워질수록 지방 이주의 경향이 더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남현종 / 9층 시사국 MC
: 오히려 젊을수록요?

정진규 / 취재기자
: 네, 맞습니다.

남현종 / 9층 시사국 MC
: 일본의 상황은 이렇고 중요한 건 이제 우리나라의 상황 아니겠습니까?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떤가요?

정진규 / 취재기자
: 실제로 서울에서 근무를 하다 원격 근무를 통해 부산으로 내려와서 지역 정착까지 꿈꾸고 있는 청년들도 저희가 만나봤는데요. 한번 들어보시죠.

김마야 / 원격 근무자
사실 제 로망 중에 하나가 그거예요. 바닷가 근처에서 일하다가 오늘 파도가
정말 좋아 하면 서핑보드 들고 뛰쳐나갈 수 있는? 그런 로망을 가지고 있거든요.
그걸 원래 해외에서 실현하기 위해서 준비하는 단계인데
마침 부산에서 그렇게 할 수 있게 돼서 지금 너무 행복합니다.

(기자) 지방에서 살 수도 있겠다?
네, 지방에서 살 수도 있고. 물리적 공간이 제약이 필요가 없어졌는데
굳이 서울에 머무를 필요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드는 거죠.

남현종 / 9층 시사국 MC
: 청년들의 얘기를 들어보니까 현실이 확 와 닿습니다. 지방에 살아보면, 내가 생각보다 수도권에 안 살고 지방에 살아도 행복할 수 있구나라고 느끼는 청년들도 많을 것 같아요.

이형종 / 한국ESG협회 이사
: 관계인구를 늘려서 이주하고 정착할 가능성을 높일 필요가 있습니다. 지방 원격 근무는 관계인구를 늘리는 가장 효과적인 대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남현종 / 9층 시사국 MC
: 그러나 결국에 또 돌고 돌아 가장 중요한 건 기업들의 역할인 것 같기도 해요.

정진규 / 취재기자
: 지난해 기준으로 재택 근무 등 원격 근무를 활용한 직장인들이 96만 명이나 되는데요. 전체 노동자의 4.4%에 해당합니다. 최근 3년간은 열 배나 늘어났는데, 이렇게만 보면 기업들의 원격 근무 도입이 굉장히 늘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이 강한 것도 사실입니다.


정진규 / 취재기자
: 결국 우리가 처음 이야기했던 청년들의 수도권 집중 현상과 이로 인한 다양한 사회 문제를 원격 근무로 풀어가기 위해서는 단순히 지방으로 내려가려는 원격 근무자를 지원하는 제도뿐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앞으로도 우리 기업들이 원격 근무를 도입하고 또 유지하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런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에필로그]

박민철 / 원격 근무자
지방에서 서울로 가신 분들이 자기 고향으로 가고 싶어 하잖아요.
자기 가족이 있고 친구들이 있는.
그런데 큰 기업이 지방으로 가는 일은 사실 힘들잖아요.
갑자기 그 100대 기업들이 정부에서 가라고 한다고 갈 것도 아니고.
그랬을 때, 기업들이 갈 수 있는 방법은 현실적인 방법인 것 같아요.
원격 근무를 하는 거는.

(기자) 반응은 어땠어요. 우와 좋다. 이런 반응이 많아요.
아니면 어떻게 살아 이런 반응이 많아요?
바닷가까지 10분 너무 멀다. 뭐 이런 거 뭐 장난으로 그러면 연락이 와요.

(기자) 부럽다. 이런 거죠?
약 올라서 이제 연락이 오는 거죠.

김혜영 / 지방 이주자
(기자)지금 제주 생활이 100점 만점으로 몇 점 정도세요?
저는 지금은 100점. 너무 높나? 97점 하겠습니다.

(기자) 3점은 왜 뺐어요?
앞으로의 남은 삶도 있으니까요. 기대감 때문에?

취재기자 : 정진규
촬영기자 : 강사완
외부촬영 : 장용석
영상편집 : 이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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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규 기자 (jin9@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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