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층시사국] 총수님의 골프왕국

KBS 2023. 4. 12.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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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층시사국 11회 I] 총수님의 골프왕국

[프롤로그]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명품 골프코스를 만난다, 2009년 9월 휘슬링락 컨트리클럽 건설현장..."

지난 2011년 개장한 골프장. 시원하게 펼쳐진 페어웨이. 클럽하우스는 한 눈에도 고급스러워 보입니다.

”지나가면서 구경만 할 수 있다고 하던데요?“ ”여기는 100% 회원제고요...“

돈이 있어도 아무나 들어갈 수 없습니다.

면적 170만 제곱미터, 27홀짜리 고급 회원제 골프장.

"한국 최고의 골프장 명문 골프장이기 때문에 회원관리를 하겠다고 그래서 굉장히 보수적으로 회원권 분양을 했고.."

세계 100대 골프장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회원권은 (가격이) 얼마나 해요?“
”제가 알기로는 13억 원입니다.“

이 골프장의 실제 주인은 이호진 태광그룹 총수입니다.

이호진 총수는 골프장에 진심이었습니다.

”그룹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건설사를 만듭니다. 그러니까 골프장 하나를 짓기 위해서, 개인 골프장 하나를 짓기 위해서 별도의 건설사 계열사를 설립했을 정도로... “

그러나, 태광의 내부 문건들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문건 내용 그대로가 실제로 당시 계열사들이나 협력업체들에게 하달된 명령들입니다. 간략하게 말씀드리면, (골프장은) 총수의 성역입니다.“

<타이틀>
총수님의 골프 왕국

이호진 총수. 흥국생명, 화재, 세화여자중고등학교까지 19개 계열사를 거느린 재계 순위 48위 태광그룹의 실소유주입니다.

그러나 천 4백억 원대 배임과 횡령 혐의로 기소되면서 2012년 회장 자리를 내놨습니다.

이 총수는 이후 재판과정에서 이른바 ‘황제보석’으로 더 유명해졌습니다.

"아프다는 분이 술도 마시고 떡볶이도 먹으러 가고,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2018.10.24. ‘뉴스9’)

간암 투병중이라며 보석 허가를 받은 상태에서 술을 마시고, 담배 피는 모습이 세간에 노출됐습니다.

이호진/태광그룹 총수(2018년 12월 12일)
"이번 일 포함해서 사회에 물의를 빚은 게 죄송합니다."

결국 보석 취소로 재수감돼 실형 3년 확정판결을 받았고, 재작년 만기 출소했습니다.

스튜디오
남현종/9층시사국 MC
2018년이었죠? 황제보석 사건, 당시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전형을 보여주면서 사회적으로 상당히 논란이 됐던 기억이 납니다.

송명희/9층시사국 취재기자
이호진 전회장의 배임과 횡령사건에서 논란이 됐던 것이 사실은 두 가집니다. ‘황제보석’ 그리고 ‘황제접견’입니다. 황제보석은 7년 넘게 재판을 받으면서 구속된 기간이 고작 63일, 그러니까 계속 풀려나 있는 상태에서 재판을 받았던 것이고요. 앞서 보신 것처럼 실제 생활이 드러나서 보석이 취소되고 재수감이 됐는데 수감생활을 하면서 거의 매일 변호사 접견도 했습니다.

남현종
거의 매일 했다는 변호사 접견, 일반적인 면회와는 다르다고 들었는데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송명희
일간 별도의 공간이 주어지고요 교도관이 입회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적인 대화도 가능하고, 간식을 먹을 수도 있습니다. 매일 한 두 시간정도 변호사 접견을 하면 주말과 공휴일을 빼고 한 달에 평균 천만 원 정도 비용이 든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황제 접견’이라고도 불립니다.

남현종
정말 죄를 짓고도 그룹 총수로서 누릴 것은 다 누렸다, 심지어 수감 중에도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이제 이호진 총수의 골프장 이야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춘천에 있는 이 골프장, 사실 개장 초기부터 많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송명희
골프장 건설비를 충당하기 위해서 계열사에 회원권을 다량으로 떠넘겼다가 적발이 됐습니다. 공정위가 과징금을 45억 원 가까이 부과했었습니다. 선분양 형식으로 계열사에서 예치금을 받았는데 적발된 것이 2011년, 개장하던 바로 그 해입니다. 그럼 그 이후에는 제대로, 정상적으로 경영됐느냐, 취재팀이 입수한 문서를 보면 그렇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부터 차근차근 설명해드리겠습니다.

[VCR]

이 골프장 정회원은 273명으로 제한돼 있습니다.

개인 회원권은 13억 원, 정회원 두 명을 지명할 수 있는 법인 회원권은 26억 원에 분양했습니다.

만만치 않은 금액의 회원권은 그럼 누가 가져갔을까.

9층 시사국이 입수한 골프장 입회금 명세서, 즉 회원명부입니다.

골프장을 운영하고 있는 계열사, 티시스가 2017년 10월 기준으로 252개의 회원권 거래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우선 VIP, 이호진 총수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총수의 누나인 이경훈씨도 2010년 4월, 11억 원을 내고 회원으로 가입한 것으로 돼있습니다.

계열사 가운데서는 흥국생명이 가장 먼저 회원권 20개를 선 분양으로 사들였습니다.

전 태광그룹 관계자 (음성변조)
졸부들이 오고 이런 걸 싫어해요. 이건 내꺼야, 내 놀이터야라는 게 강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계열사들한테 (회원권을) 떠넘기고...건설비 뽑으려고

태광산업 24개, 대한화섬 8개 등 60개를 계열사가 이런 식으로 선 분양 받았습니다.

2011년 공정거래위원회는 부당지원으로 적발했지만, 대부분 2017년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계열사 거래는 오히려 2017년까지 더 늘어났습니다.

2011년 60개였던 것이 2017년엔 150개, 전체 회원권의 60%입니다.

노종화/경제개혁연대 변호사
“굳이 회원권을 구입할 사업적 필요성이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2018년 4월경까지 사실상 이호진 전 회장 일가의 가족 회사였던 티시스에게 상당한 이익을 제공할 목적으로 회원권을 구입했다면 아마 종전과 마찬가지로 부당지원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이 됩니다.”

외부법인이라고 표기된 회원 오른쪽에 특정 계열사가 적혀있는데, 해당 계열사를 통해 회원권을 구매한 것으로 보입니다.

전 거래업체 대표 (음성변조)
지방에 있는 협력업체까지 능력이 되는 회사에 골프 회원권을 하나씩 사라라고 이야기를 했죠. 부산 울산에서 춘천까지 누가 골프 치러 가겠습니까. (거래) 유지를 위해서는 구입을 할 수밖에 없죠.

명부에 있는 회원권 252개 가운데 이런 식으로 계열사가 표시된 것이 54개입니다.

그런데, 비고란에 표시된 알 수 없는 영문 ‘S’.

이 회원들은 흥국생명 등 태광그룹 계열사에 보안, 가구, 컴퓨터, 인쇄, 정수기 등 물품을 공급했거나 현재도 하고 있는 거래업체들입니다.

계열사 직원들은 이 업체들에 대해 의아했던 상황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털어놓습니다.

전 흥국생명 직원(음성변조)
노트북 같은 경우에 굉장히 좋은 사양의 노트북도 있는데, 굳이 이걸 공급해주지? 라고 했을 때 이게 사실은 계열사가 어떤 내부 거래가 있대라고...이건 극비인데 이렇게 직원들이 이야기를 해요, 여기를 꼭 써야만 한대.. 그런 이유가 있대..

‘갑’의 입장인 계열사가 직원들의 불만을 감수하면서 해당 업체의 물품을 꼭 써야만 했던 이유, 대체 뭐였을까요.

태광그룹과 계열사들이 이 업체들과 체결한 업무협약서들입니다.

정수기 대여 업체와는 10년간 서비스를 약속하고, 기존 서비스 업체 변경에 따르는 위약금은 태광이 부담하겠다고 했습니다.

전 흥국생명 직원(음성변조)
계약기간이 남아서 위약금을 물어야 되는 상황인데도 갑자기 시달이 내려왔어요. 무조건 다 위약금 물더라도 철수... 그때는 직원들이 의아해했어요. 이것도 뭔가 내부 거래가 있나 보다..

이런 의심은 태광산업이 기안한 내부 문서에서 확인됩니다.

본사와 울산, 반여 공장에서 쓰던 정수기와 비데, 공기청정기 200대를 업무협약서를 체결한 업체 것으로 바꾼다는 내용입니다.

3년 계약에 같은 조건으로 두 차례 자동 연장한다고 돼있는데, 월대여 비용은 기존 업체보다 더 비쌉니다.

위약금은 2천2백만 원. 문서 기안 날짜는 2016년 6월 28일.

정수기 대여업체가 골프장 회원권을 구매한 날과 일치합니다.

현재도 이 계열사들은 이 업체의 정수기를 쓰고 있습니다.

5년, 6년간 독점계약, 연평균 매출액 20억 원 보장, 연간 35억 원 이상 10년 보장.

‘갑’의 입장이라고는 이해하기 어려운 약속들이 협약서 곳곳에서 확인됩니다.

태광그룹이 한 가구업체와 체결한 업무협약서.

태광이 업체의 사무 가구를 연평균 15억 원 규모로 발주한다고 약속합니다.

계열사 ‘한국도서보급’에 6년간 독점공급을 보장합니다.

2년 단위로 거래규모를 정산하면서 부족하면 다음 해에 그만큼 추가 발주하겠다고도 돼 있습니다.

한없이 너그러운, 그러나 납득하기는 어려운 ‘갑’의 약속.

‘을’인 가구업체가 해야 할 일은 골프장 회원권 구매였습니다.

노종화/경제개혁연대 변호사
이렇게 상식적이지 않은 조건을 제시한 이유는 결국에는 협력업체들에게 티시스(골프장 운영회사)의 회원권을 매입해달라는 요청을 해야 되기 때문에 그렇게 태광의 계열사들에게는 손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내세웠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거래업체들은 대가성은 없었다면서도 구체적인 건 확인해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인쇄업체 관계자(음성변조)
((태광이) 계약에 대한 조건부로 회원권을 판매를 한 건지...)
그러면 문제가 있냐 이거죠. 저희는 그런 건 없고요, 저희는 한 20년 됐어요. 거래한 지가.

PC업체 관계자(음성변조)
명확히 기억 안 나는데 어쨌든 저희도 그때가 (회원권이) 필요할 때였었어요.

복합기 업체 관계자(음성변조)
계약이 2015년도부터 유지된 거는 맞고요 네 회원권 관련해서는 계약 사항이라서 좀 공개가 불가능하다고 하시네요.

이들은 대부분 현재까지 태광 계열사에 물품 등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전 태광그룹 관계자(음성변조)
이미 그 당시에 태광그룹 내외에 경영기획실과 협력사가 이런 형태의 업무협약을 진행한다라는 내용 자체가 이미 파다하게 퍼져있는 상황이었거든요. 업무협약서 내용이 그대로 업무 지침으로 내려왔습니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무인경비시스템업체와 맺은 업무협약.

태광 계열사들이 2015년부터 5년간 월 8천만 원을 보장하고, 태광이 만약 다른 업체와 계약하면 남은 기간 서비스료를 청구할 수 있다고 돼있습니다.

이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한 달여 뒤 이 업체는 골프장 회원권 두 개를 26억 원에 매입합니다.

대가성 거래 여부를 묻는 질문에 보안업체 역시 고객과의 계약정보여서 확인해줄 수 없다고 답했습니다.

태광그룹에 사실관계 확인을 요구했습니다.

태광은 “가구업체와의 업무협약서는 구속력이 없는 의향서”이고, “인쇄업체들은 회원권 구매 이전부터 오래 거래한 업체로 거래처 영업용으로 회원권을 구매한 것” 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각 해당 업체와 거래는 회원권 구입여부와 상관없다”고 밝혔습니다.

이 업체들이 업무협약서를 체결한 날짜와 골프장 회원 명부상 입회일을 비교해봤습니다.

빠르게는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이틀 뒤, 대부분은 한두 달 사이에 골프장 회원권을 매입했습니다.

노종화/경제개혁연대 변호사
결과적으로는 계열회사들이 그 협력업체들과 사실상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독점적 거래를 내걸면서 대신에 협력업체들에게는 티시스의 회원권을 매입해달라는 요청을 한 것이죠. 결과적으로 보면 계열회사들이 협력업체들에게 상당한 이익을 보전해 주고 동시에 본인들은 그 정도의 손해를 감수하되 티시스에게는 회원권 판매라는 이익을 보장해준 거래라고 생각이 듭니다. 이호진 회장 일가에게 사익편취의 기회를 제공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회원명부에 이런 영문 ‘S’가 표시된 업체는 모두 19곳.

이 업체들이 2015년, 2016년 2년 동안 매입한 골프장 회원권이 25개, 325억 원어치입니다.

[스튜디오]
남현종
그룹 총수의 골프장 건설, 그리고 골프장 운영에 계열사도 모자라서 거래업체까지 동원됐네요.

송명희
그런데 통상적인 경우와는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대기업의 이른바 갑질로 불리는 강매 사례는 거래 업체들이 기존의 거래를 유지하기 위해서 억지로 하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이 회원권 명세서를 보면 이런 경우도 물론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이 경우에는 거래업체들도 독점계약, 장기계약, 매출보장 등의 이익을 얻은 것이거든요. 인쇄업체와 업무협약서를 보면 회원권을 사면서 대출을 받을 경우 이자의 절반을 태광이 부담한다, 이런 내용까지 있습니다. 결국 그만큼 피해는 계열사가 봤습니다.

남현종
취재 내용을 보면 상당히 규모는 큰데 은밀하고 신속하게 일사천리로 지금 골프장 운영 건설까지 동원이 된 것 같습니다. 이 정도 수준이면 지금 그룹 차원에서 전방위적으로 일어난 거죠?

송명희
업무협약서에 서명한 것이 개별 계열사도 있지만 대부분 그룹 경영기획실입니다. 그룹기획실이 거래업체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계열사에 지시하면 계열사는 해당 업체와 계약을 하고 업체는 골프장 회원권을 구매하는 구조로 이뤄진 겁니다.
이런 거래가 집중됐던 시기가 2015년, 그리고 2016년이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이 시기는 이호진 총수, 배우자, 그리고 자녀, 그러니까 총수일가가 골프장을 운영하는 회사의 지분을 100% 가지고 있을 때입니다. 동시에 배임 사건 재판도 진행 중이었거든요. 결국 이런 시기에 계열사가 피해를 감수하면서 총수의 사익편취에 앞장섰다, 이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VCR]
그렇다면 이호진 총수는 이런 일들을 알고 있었을까요.

업무협약을 주도한 그룹 경영기획실이 해답을 쥐고 있습니다.

전 태광그룹 관계자 (음성변조)
경영기획실의 그 당시 역할과 권능은 그 당시에 병보석 황제보석 중이었던 총수의 철저한 대리인으로 보시는 게 맞습니다. 전 계열사들이 경영기획실장의 지시나 어떤 방향성에 대해서 ‘이건 총수의 뜻이다’라고 받아들였고(기자:경영기획실의 지시는 총수의 지시다?) 물론입니다.

온갖 구설을 일으키며 회장 자리에서 물러나 있는 태광그룹 이호진 총수,

재계에선 재작년 출소 이후 경영복귀를 노리고 있다는 소문이 퍼져있습니다.

다음 주 9층 시사국에서 더 깊이 살펴보겠습니다.

취재기자: 송명희
외부촬영: 조선기 설태훈
영상편집: 손보라
자료조사: 정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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