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춤’ ‘화관무’ 만든 한국 新무용 대모 김백봉 별세

이태훈 기자 2023. 4. 12.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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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이미지가 된 ‘부채춤’과 ‘화관무’를 만든 ‘한국 신(新)무용의 대모’ 김백봉(97) 전 경희대 명예교수가 11일 별세했다. /김백봉 춤 보전회

해외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이미지가 된 ‘부채춤’과 ‘화관무’를 만든 ‘한국 신(新)무용의 대모’ 김백봉(97) 전 경희대 명예교수가 11일 오후 별세했다.

1927년 평안남도 평양에서 태어난 그는 최승희 무용단 단원으로 1943년에 이미 일본과 중국, 동남아 여러 나라를 순회 공연했다. 1944년 스승 최승희의 남편 안막의 동생인 무용이론가 안제승(1928~1996)과 결혼했다. 1946년에는 최승희를 따라 월북한 뒤 평양에서 최승희 무용단 제1무용수 겸 부소장, 상임 안무가로 활동했다. 북한 정권의 간섭에 시달리다 6·25전쟁 이후 남편과 함께 월남하여 1953년 서울에 김백봉 무용연구소를 세웠다.

1954년 서울 시공관(市公館·현 명동예술극장)에서 김백봉 무용 발표회를 열고 ‘부채춤’과 ‘화관무’를 선보였다. 생전 김백봉은 “부채춤은 해가 뜨고 지는 것, 인생의 윤회와 영생을 표현한 것이었다”고 회고했다. 이 춤 공연 장면들은 오랫동안 해외에서 한국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 이미지였다.

그의 노력을 통해 많은 이가 어려서부터 한국 무용을 접하면서 대중화의 물꼬가 트였다. 1950년대 말부터 동남아, 유럽, 미주 등에서 공연하며 우리 춤 세계화를 이끈 공도 크다.

김백봉은 또 ‘장고춤’ ‘무당춤: 광란의 제단’과 ‘청명심수’ 등 무용, 최승희의 보살춤을 재현한 ‘만다라’, 무용극 ‘우리 마을의 이야기’ ‘바라’ ‘종이여 울려라’ ‘심청’ 등 작품을 내놓으며 한국 신무용의 초석을 다졌다.

해외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이미지가 된 ‘부채춤’과 ‘화관무’를 만든 ‘한국 신(新)무용의 대모’ 김백봉(97) 전 경희대 명예교수가 11일 오후 별세했다. /김백봉 춤 보전회

1965년부터 경희대 무용학과 교수로 재직, 1992년 정년 퇴임해 명예교수가 됐다. 1995년 김백봉 춤 보전회가 결성됐다. 한국종합예술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경희대 무용학과 명예교수,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제5대 서울시무용단 단장을 지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식전 행사 공로로 대통령상을 받았고, 서울시문화상(1962), 예총예술문화대상(1990), 대한민국을 빛낸 최고의 명인상(2016), 제 58회 3·1문화상 예술상(2017)을 수상했다. 보관문화훈장(1981), 은관문화훈장(2005)을 수훈했다.

유족은 아들 안병철(경희청한의원 원장)과 딸 안병주(경희대 무용학부장), 안나경(김백봉 춤 연구회 이사장), 사위 장석의, 손녀 안귀호(춤이음 부대표). 빈소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발인 14일 오전 7시. (02)2227-7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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