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사범은 좀비” 경찰과 중독자가 말하는 ‘마약’의 위험성 [뉴스+]

이희진 2023. 4. 12.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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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사건 전담 경찰 “마약 끊은 마약사범 본 적 없다”

“세게 말하면, 마약사범은 좀비야. 죽을 때까지 주변 사람들을 전염시킨다고. 마약이 그렇게 위험한 거야. 정말 끊기 어렵다니까.”

지난해 4월 서울 한 경찰서에서 만난 마약사건 전담 경찰관은 ‘좀비’를 끌어들여 마약 위험성을 설명했다. 온갖 사건을 다룬 그였지만 마약사범이 가장 대하기 힘들다고 했다. 그는 “마약사건을 처음 수사하는 경찰에겐 ‘피의자들이 숨 쉬는 것도 믿지 마라’라고 말한다”며 “경찰 수사단계에선 마약에 중독돼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피의자들은 연기와 거짓말을 정말 많이 한다”고 했다. 이 형사는 “마약을 끊은 마약사범은 제대로 본 적 없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20대 마약사범 증가에 대한 기사를 쓰는 과정에서 마약사건을 수사하는 경찰관과 마약 경험자 8명을 만났다. 2021년은 2001년 마약사범 검거 통계 공개 이후 처음으로 20대 마약사범이 30%를 넘은 해였다. 이 같은 추세는 지난해에도 이어졌다. 지난해에 검거된 20대 마약사범은 31.6%(5804명)로 전년(5077명·31.4%)보다 소폭 상승했다. 마약사범 연령이 점점 낮아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지난해 하반기부턴 사회에 충격을 안긴 마약 관련 사건이 연달아 발생했다. 지난해 7월 강남에서 발생한 ‘유흥주점 사망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강남구 역삼동 한 유흥주점을 방문한 20대 손님이 30대 여성 종업원 술잔에 필로폰을 탔는데, 종업원은 술을 마신 뒤 어지러움 등을 호소하며 경찰에 신고했다. 종업원은 그날 오전 숨졌다. 국과수는 종업원을 부검한 결과 ‘필로폰 중독’이 원인으로 보인다는 소견을 냈다. 술을 탄 20대 손님도 유흥주점 인근 공원 내 차량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올해 초엔 유명배우 유아인이 프로포폴과 대마, 코카인, 케타민, 졸피뎀을 투약한 혐의로 경찰 수사 중인 사실이 알려져 충격을 줬다. 유아인은 첫 조사를 마친 뒤 “저의 일탈 행위가 누구에게도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 그런 식의 자기합리화 속에서 잘못된 늪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며 사과했다.

지난 3일 서울 강남 학원가에서 발생한 ‘마약음료’ 사건은 마약이 사회에 만연하게 퍼져 있다는 공포를 국민들에게 심어줬다. 강남에서, 그것도 대낮에 버젓이 학생들에게 마약이 든 음료를 ‘집중력 강화 음료’라며 권유하는 일이 발생한 건 상식적이지 않아서다. ‘상선(마약거래 윗선)’으로부터 ‘학생들에게 음료를 건네라’고 지시받은 4명은 학생들에게 음료를 건넸고, 이후 학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돈을 주지 않으면 자녀의 마약 복용 사실을 신고하겠다”며 협박했다. 음료를 받은 학생 중 일부는 실제 이를 마시기도 했다.

정부도 마약 수사 컨트롤타워인 ‘마약범죄 특별수사본부’를 지난 10일 출범하며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사회에 만연한 마약을 지금이라도 끊어내지 못하면 사회 전체가 병약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의 발로다.

지난해 만난 마약중독자 고백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마약 중독성이 얼마나 위험한지 실감할 수 있었다. 가령 김모(50)씨는 중학생이던 1987년 처음으로 마약류를 접했다. 본드가 시작이었고 이는 곧바로 루비킹(덱스트로메토로판), 대마 등으로 이어졌다. 처음이 어렵지 그 뒤는 본인도 모르게 수렁텅이로 빠져드는 셈이다. 김씨는 27살이 되던 해 필로폰을 접했고 이게 지금도 벗어나기 힘든 악몽의 시작이었다. 김씨는 수사기관에 덜미를 잡힌 2020년 6월까지 꾸준히 본인의 몸에 필로폰을 투약했다.

김씨는 마약에 중독된 자신의 과거를 끊임없이 후회했다. “저 같은 경우는 부모님이나 여자친구, 돈 이런 것들보다도 마약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있더라고요. 어느 순간부터 모든 건 뒷전이고 마약만 쫓았어요. 그것만 보고 달린 거죠. ‘헤어 나올 수 없는 길에 들어섰구나’ 싶었어요.”

김씨는 ‘단약을 결심한 계기’를 묻자 기자 눈 앞에서 오열하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마약 투약으로 검거돼 구치소에 들어가는 날 협심증으로 쓰러졌는데, 눈을 떠보니 암 투병 중인 어머니가 본인의 다리를 잡고 흐느끼고 있었다고 했다. 응급실 침대에 누워 있는 본인은 수갑을 차고 있는 상태였다.

“‘자식으로서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은 회의를 느꼈어요. 10대 때부터 50살이 다 될 때까지 어머니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왔는데 이제라도 정신 차리자 싶더라고요. 그래서 단약을 결심했는데 어머니가 코로나19 합병증으로 돌아가셨어요. 저도 죽으려 했죠. 그런데 이대로 죽으면 사람들이 ‘약쟁이 죽었구나’ 이렇게 생각할 것 같았어요. 이런 의미 없는 삶은 싫더라고요. 지금이라도 정신 차려서 나중에 죽을 때 주위 사람들에게 ‘쟤가 괜찮은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들게 하고 싶어요. 하늘에 가서 어머니를 만날 때 어머니에게 ‘아들, 너 열심히 살았다’는 말을 듣기 위해 노력해야죠. 진짜 이젠 인간답게 살아보려고요.”

김씨는 호기심과 인생을 바꾸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는 “마약을 처음 접할 땐 호기심”이라며 “호기심과 자기 인생을 맞바꾸지 말라고 하고 싶다. 인생을 다 버려놓는다”고 했다. 김씨는 “마약이 인생을 다 망가뜨린다는 것만 말씀드리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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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진 기자 he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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