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살상무기 우크라이나 우회 지원 숨긴 정부 진상 밝히라
윤석열 정부가 우크라이나군이 쓸 무기를 미국을 통해 우회 지원하기로 한 정황이 드러났다. 우크라이나 지원으로 155㎜ 포탄 재고가 부족해진 미국에 한국이 다량의 포탄을 대여 방식으로 제공한다는 보도에 국방부는 12일 “확인해줄 수 없다”고 밝혔다. 부인하지 않은 정황상 사실로 보인다. 한국 업체가 생산했거나 미국의 전쟁예비물자로 국내에 반입됐다가 한국이 인수한 포탄 등 약 50만발을 전달하는 계약을 미국과 맺었다는 것이다. 곡사포 등에 사용되는 155㎜ 포탄은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수요가 많은 무기로 미국이 지난 1년간 100만발을 지원했다. 한국은 지난해 11월 한·미 안보협의회의(SCM)에서 미국이 최종 사용자라는 조건하에 수출하기로 한 포탄까지 합해 약 60만발의 포탄을 제공하게 된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대러시아 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 대신 인도적 구호물품 등을 지원한다는 원칙을 밝혔다. 하지만 미국은 한국에 무기 지원에 동참하라고 강하게 요구했다. 윤 대통령은 국빈 방미 일정을 조율하던 지난달 미국 요구를 수용한 걸로 보인다. 운신의 폭이 좁은 윤석열 외교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윤 대통령이 자유수호를 위한 국제연대, 즉 가치외교를 강하게 외치면서도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하는 것에 대해 미국과 서방 국가들은 모순적이라고 봤다. 지난 1월 나토 사무총장 방한, 미국 국방장관 방한 때도 서방의 압력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로써 한국은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기존 방침을 변경했다고 볼 수 있다. 정부는 여전히 우크라이나 직접 지원은 아니라는 점을 부각한다. 하지만 한국이 그 전장에서 쓰이는 포탄 상당수를 공급하는 나라가 된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정부가 이런 사실을 자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다가 미국 정보기관 문서 유출로 논의 사실이 폭로되자 슬그머니 그 정황을 흘렸다는 데 있다. 겉으로는 살상무기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강조하면서 뒤에서는 그 원칙을 허물어버리고도 쉬쉬해온 것이다. 국가안보와 관련된 사안이라고 해도 금방 탄로 날 거짓말을 하게 되면 정부 신뢰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은 일부 언론을 통해 내용을 두루뭉술하게 공개할 것이 아니라 시민들에게 무기 지원과 관련한 정확한 내막을 설명해야 한다.
아울러 정부는 미국에 도청 의혹 해소를 요구해야 한다. 한·미 정상회담 협의차 방미한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미국이 우리에게 악의를 가지고 (도청)했다는 정황은 발견되지 않는다”며 문제 삼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도청을 했더라도 선의로 했으니 묵인해주자는 의미다. 정작 가해자인 미국 정부가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조사에 착수하겠다는데, 한국이 섣불리 면죄부를 주려는 건 지나친 저자세 외교이다. 어느 나라 정보기관이든 도청을 하고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사실이 음지에서 양지로 나온 이상 이 문제를 그냥 덮고 가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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