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루'는 여혐"···女교수 '페미니즘 책' 모금액 6000만원 돌파

김태원 기자 2023. 4. 12.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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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 부치는 편지 - 페미니즘 백래쉬에 맞서서'
목표 금액 5500만원 초과 달성하며 '의기양양'
윤지선 교수 페이스북 캡처
[서울경제]
‘보이루’ 논란의 촉발···5000만원 배상으로 귀결

유튜버 보겸(본명 김보겸)의 유행어 ‘보이루’를 여성혐오라고 주장해 명예훼손 등으로 5000만원을 배상해야 하는 윤지선 세종대 초빙교수가 수필집 펀딩을 열었다. 모금액은 닷새만에 6000만원을 넘겼다.

12일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텀블벅에 따르면 출판사 ‘사유의 힘’이 펴내는 윤 교수의 신간 ‘미래에 부친 편지 ? 페미니즘 백래쉬에 맞서서’ 펀딩 프로젝트는 12일 오후 기준 6030만 5062원이 모였다. 펀딩 목표금액 5500만원을 초과 달성한 것이다.

모금액은 인건비·배송비·발주비·디자인 의뢰비 등으로 쓰인다. 책은 A5용지 약 250페이지 분량으로 제작된다고 전해진다. 후원 금액에 따라 본책 외에도 책갈피·윤 교수의 독서 비법이 담긴 독서노트·온라인 강의 수강권 등이 제공된다. 책은 오는 6월 30일부터 발송될 예정이다.

에세이 ‘미래에 부친 편지 - 페미니즘 백래쉬에 맞서서’는 목표 금액 5500만원을 이미 넘어섰다. /텀블벅 홈페이지 캡처

책은 2020년 후반 남초 온라인 커뮤니티들의 ‘미러링의 미러링’ 전략을 진단하며 시작한다. 이듬해 윤 교수 온라인 강의에 침입해 음란 스트리밍을 벌인 사건, 정치계의 ‘남녀 갈라치기', 보겸과의 소송 과정 등을 다룬다.

윤 교수는 “내가 쓰는 이 편지는 앞으로 존재할, 그리고 지금 역시 존재하고 있는 미래와 현재의 어린 여성세대에게 부치는 것이요, 이 야만의 시대를 날카롭게 기록하는 투쟁의 일지”라고 책의 의미를 소개했다.

책을 펴낸 출판사 사유의 힘은 “이 책은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은 적 없는 현대판 마녀사냥의 타깃이 된 페미니스트 여성 철학자의 고난과 고통, 감정들을 허심탄회하게 표현할 뿐만 아니라 시대적 부조리의 분석을 날카롭게 이어나가는 용기와 빛나는 통찰을 전하고 있다”고 밝혔다.

온라인 강의에 난입해 ‘음란 사진’ 등을 공유한 사건에 대해 언급하는 윤지선 교수. /MBC 보도화면 캡처
법원 “보이루, 온라인상 여혐 악용 인정···보겸 의도는 아냐” 판결

앞서 윤 교수는 유튜버 보겸의 인사말이자 유행어인 ‘보이루’를 여성혐오 표현으로 규정하는 논문을 발표해 논란에 휩싸였다. 그는 2019년 철학연구회 학술잡지에 논문 ‘관음충의 발생학:한국 남성성의 불완전 변태 과정의 추이에 대한 신물질주의적 분석’을 게재하며 “한국 남아들의 여성혐오 용어놀이에 사용되는 용어”라고 규정했다. 보이루를 설명하는 각주에 여성의 성기를 뜻하는 단어와 ‘하이루(안녕)’의 합성어라는 주장을 폈다. 그러면서 이런 용어를 자정하지 못한 사회가 결국 불법 촬영물은 만들고 관람하는 ‘관음충’을 양산했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보겸은 ‘보이루’가 자신의 실명인 ‘보겸’과 ‘하이루’를 합쳐 만든 표현이며 여성혐오의 의도는 없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해당 논문으로 명예가 훼손됐다며 2021년 7월 윤 교수를 상대로 1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윤 교수는 “‘보겸+하이루’를 합성해 인사말처럼 시작됐지만 초등학생을 비롯한 2030 남성에 이르기까지 ‘여성 성기+하이루’로 유행어처럼 전파됐다”고 논문을 수정하며 맞섰다.

법원은 지난해 6월 보겸의 손을 들어줬다. 1심 재판부는 “윤 교수는 보겸에게 명예훼손과 인격권 침해로 인한 위자료 5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1심 재판부는 이 용어의 의미가 왜곡돼 온라인상에서 여성혐오 표현으로 사용된 점은 인정했다. 그러나 보겸이 의도적으로 이런 용어를 만든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도 같은 판단을 내렸다. 재판부는 “2013년부터 원고와 원고의 팬들이 사용한 유행어 ‘보이루’는 인사말일 뿐, 여성의 성기를 지칭하는 의미는 전혀 없었다”고 판단했다. 이어 “수정 전 논문은 원고가 성기를 지칭하는 표현을 합성해 ‘보이루’라는 용어를 만들어 전파했다는 내용을 담았다”며 “허위의 구체적 사실을 적시해 원고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판시했다. 지난달 윤 교수가 상고를 포기하면서 법원 판결이 확정됐다.

20대 대선 당시 20대 성별 지지 후보 격차를 보여주는 그래프. 남녀 간의 격차가 뚜렷하다. /KBS 보도화면 캡처
극단적 ‘젠더 갈등’ 시달리는 한국···외신들도 “韓, 남녀 불평등 해소해야” 지적

윤 교수의 에세이가 불과 5일 만에 6000만원이 넘는 금액을 모았다. 보겸과의 법적 공방 과정에서 남성 네티즌들이 보겸을 열렬히 응원한 것과는 확연한 대조를 이룬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 당시 2030세대의 투표 양상에서 나타났듯 우리 사회는 남녀 간의 갈등이 격화되다 못해 만연한 지경에 이르렀다. 지난해 조선일보와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가 실시한 ‘2022 대한민국 젠더 의식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1786명)의 66.6%가 ‘한국 사회 남녀 갈등이 심각하다’고 응답했다. 20대가 79.8%로 가장 높았고, 20대에서도 여성이 82.5%로 가장 크게 동의했다.

한 술 더 떠, 미국·이탈리아를 비롯한 외신들마저 한국의 저출생 문제로 ‘남녀 갈등’을 꼽고 있는 판이다. 특히 이탈리아 유력 매체 ‘코리에레 델라 세라’는 ‘한국의 엄마들이 파업한다: 동아시아 호랑이의 멸종 위기’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현상을 집중 분석하기도 했다.

매체는 “2021년 한국의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출생아 수)이 0.81명으로 세계 최하위 수준이었다”며 "한국에서 신생아들이 태어나지 않고 있다. 작지만 강력한 아시아의 호랑이가 인구 감소 묵시록의 한가운데에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한국이 저출생의 늪에 빠진 근본 원인으로 한국 사회의 남녀 불평등과 직업 환경에서의 차별을 꼽았다. 이러한 모순을 첨예하게 경험한 여성들이 의도적으로 출산을 기피하고 있는데 이를 '출산 파업'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미국의 블룸버그도 지난달 '한국, 세계 최저 출생률 자체 기록 또 깼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여성들이 아이를 낳아 일자리를 잃는 것에 대한 걱정을 덜 수 있도록 한국이 양성평등에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태원 기자 reviv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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