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VB발 위기는 선행지표? 겉은 멀쩡한데 ‘손실 폭탄’ 품은 미 은행들

이재연 2023. 4. 12.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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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는 '탄광 속 카나리아'였을까.

12일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를 보면, 미국 중소규모 은행들은 만기보유증권과 매도가능증권의 시장가격 변화에 따른 미실현손익을 규제자본에 반영하지 않을 선택권이 있다.

이는 대규모 미실현손실을 떠안고 있던 실리콘밸리은행의 파산 사태가 예고 없이 들이닥친 배경이기도 하다.

중소규모 은행들이 매도가능증권의 미실현손익을 규제자본에 반영하지 않을 수 있는 것도 2015년 금융규제 완화의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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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실리콘밸리은행 지점. AP 연합뉴스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는 ‘탄광 속 카나리아’였을까.

진정 국면에 접어든 은행발 금융불안 사태를 두고 안심하기엔 이르다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이번 사태가 저금리 시절에는 간과됐던 ‘약한 고리’를 보여줬으며, 금융 시스템 안에는 여전히 비슷한 종류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번에 확인된 금융감독 사각지대를 하루빨리 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12일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를 보면, 미국 중소규모 은행들은 만기보유증권과 매도가능증권의 시장가격 변화에 따른 미실현손익을 규제자본에 반영하지 않을 선택권이 있다. 금리 상승기에 이들 증권의 시장가격이 떨어져도 은행이 규제를 받는 자본비율은 바로 타격을 입지 않는 것이다. 이는 대규모 미실현손실을 떠안고 있던 실리콘밸리은행의 파산 사태가 예고 없이 들이닥친 배경이기도 하다.

통상 회사가 들고 있는 채권과 주식 등 유가증권은 회계상 3가지로 분류된다. 만기까지 들고 있는 만기보유증권과 단기간의 매매차익을 목적으로 하는 단기매도증권, 그리고 둘 중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매도가능증권이다. 중소규모 은행의 경우 이 중에서 시장가격의 변화가 제때 규제자본에 반영되는 건 단기매도증권뿐이다. 그렇지 않은 나머지 두 증권이 미국 전체 은행권 총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10월 약 25%에 이르렀다.

미국 은행권의 자본적정성이 겉으론 양호해 보여도 실제로는 다를 수 있다는 얘기다. 국제통화기금이 미실현손실을 모두 반영해본 결과, 총자산이 100억∼3000억달러인 미국 은행 중 약 9%는 보통주자본비율이 규제 수준(7%)을 하회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고금리 국면에 이들 은행이 급하게 채권을 팔아 유동성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릴 경우, 실리콘밸리은행처럼 위기로 내몰릴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저금리 시절에 만들어진 ‘약한 고리’가 금리 상승기에 어떻게 위기로 이어지는지 잘 보여준다. 미국 은행들은 2020년 금리가 크게 떨어지자 수익을 조금이라도 더 내기 위해 장기채를 대규모로 사들였다고 국제통화기금은 설명했다. 문제는 만기가 길수록 금리가 오를 때 가격이 더 많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이런 ‘약한 고리’는 위기로 실현될 때까지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특징도 있다. 국제통화기금은 “금리에 대한 익스포저(손실 위험에 노출된 금액)는 유동성 충격이 나타날 때까지 숨겨져 있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루빨리 감시·감독과 규제의 공백을 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융회사의 자본적정성 등에 대한 규제가 강화됐지만, 시장에서는 이를 향한 의구심이 싹트고 있다고 평가했다. 국제통화기금은 “최근 은행권의 혼란은 은행의 금리·유동성 위험과 관련된 내부 위험 관리 관행의 실패와 감독 실패를 부각시켰다”며 “감독당국은 은행이 자본·유동성 스트레스 테스트를 적절하게 실시하는 등 위험을 제대로 관리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디지털 시대에는 규모가 작은 금융회사의 위기도 시스템 전체로 퍼질 수 있다고 짚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공포 심리가 급격하게 확대재생산되면서 투자자 심리가 전반적으로 위축되는 탓이다. 2018년 미국은 보다 강력한 규제를 적용받는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금융기관’의 자산 기준을 500억달러에서 2500억달러로 상향 조정한 바 있다. 중소규모 은행들이 매도가능증권의 미실현손익을 규제자본에 반영하지 않을 수 있는 것도 2015년 금융규제 완화의 산물이다.

이재연 기자 ja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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