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벌주의' 선회한 학교폭력 정책…취업까지 영향 미칠까(종합)
소송 증가 등 부작용 우려, 교육적 해결 막는다는 비판도
(서울=연합뉴스) 고유선 기자 = 정순신 변호사가 아들의 학교폭력 논란으로 국가수사본부장에서 낙마한 지 약 50일 만에 정부가 내놓은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은 기존 정책을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 보호' 두 가지 측면에서 보강하는 쪽에 초점이 맞춰졌다.
가해자 처벌과 관련해서는 대입 의무 반영, 학폭 처분 기록 보존기간 연장 등 입시는 물론 취업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는 방안이 포함됐다.
'중대한 학폭은 범죄'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학폭 처분의 실효성과 경각심을 높이겠다는 취지로 풀이되지만, 일각에서는 정부가 '엄벌주의'로 선회하면서 교육적 해결이 더 어려워지고 가해학생 낙인찍기와 소송 증가 등 부작용이 커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피해자 보호와 관련해서는 관련법을 개정해 피해학생에게 가해학생과의 '분리요청권'(출석정지 또는 학급교체)을 주고, 학폭 담당 교사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한 민·형사상 책임을 면제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한 점이 눈에 띈다.
고교 학폭, 입시·취업 영향 '사정권'
정부가 12일 발표한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에는 현재 고교 1학년생들이 치를 2026학년도 대입부터 학교폭력 처분 기록을 모든 전형에서 반영하고, 학교폭력심의위원회(학폭위) 조치 중 '중대한 처분'의 학교생활기록부 기재 보존기간을 현행 '졸업 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는 방안이 포함돼 있다.
학폭위 조치는 ▲ 서면사과(1호) ▲ 피해학생 접촉 등 금지(2호) ▲ 학교봉사(3호) ▲ 사회봉사(4호) ▲ 심리치료(5호) ▲ 출석정지(6호) ▲ 학급교체(7호) ▲ 전학(8호) ▲ 퇴학(9호)으로 나뉜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학폭위 조치(가해학생 1명에게 2개 이상 조치 가능) 가운데 출석정지(14.9%)와 학급교체(4.2%), 전학(4.5%), 퇴학(0.2%) 등 중대한 처분 비율은 23.8%에 이른다.
새 대책이 시행되면 중대 처분을 받은 학생들은 대학에서 입대 또는 휴학 없이 4년을 연달아 수학하고 졸업반이 될 경우 취업을 준비할 때까지 학생부에 학교폭력 기록이 남아있게 된다.
지난해 고등학교 학폭위에서 이처럼 출석정지부터 퇴학까지의 처분이 나온 심의는 모두 720건이었다.
교육부는 학교폭력을 저지르면 대입뿐 아니라 졸업 때까지도 불이익을 받는다는 경각심을 주고자 기록 보존 기간을 늘린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번 대책이 실제로 취업에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는 정부 규제가 아닌 민간의 영역이자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문제라고 조심스러운 입장을 밝혔다.
오승걸 교육부 책임교육정책실장은 "취업 시까지 불이익을 주는 것은 사회적인 요구가 있다. 여론 조사 결과는 그렇다"면서도 "우리 사회의 논의와 합의가 필요하다. 취업은 민간 영역에서 결정할 사안이다"라고 말했다.
긴급조치 강화 등 피해자 보호 '실효성' 강화 기대
정부는 이번 대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피해학생 보호를 위한 제도의 실효성을 높일 방안을 고민한 것으로 보인다.
정순신 변호사 아들 사건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폭발한 것은 가해학생이 전문적인 법 지식을 활용해 불이익을 최소화한 반면, 피해학생은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고통에 시달렸기 때문이라는 판단에서다.
때문에 정부는 피해학생에게 가해학생의 출석정지나 학급교체를 요청할 수 있는 '분리요청권'을 주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하고, 학교장이 학생을 즉시 분리하는 기간을 '3일 이내'에서 '7일 이내'로 늘리기로 했다.
특히 가해학생이 교육청이나 교육지원청을 대상으로 처분 불복절차에 나설 경우 이를 피해학생에게 알려 진술권도 보장하기로 했다.
가해학생이 본인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일방적인 진술을 해 처분을 무력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교권 강화를 통한 학교 차원의 대응력도 높이기로 했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정부서울청사에서 진행한 브리핑에서 "학교폭력 기록 보존기간이 단축된 것, 교권이 제대로 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학생 인권이 지나치게 강조된 것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학교폭력이 늘었다"고 진단했다.
가해학생을 제대로 지도해 학교폭력을 줄이려면 교권 강화가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정부는 학교폭력 사안 처리 과정에서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아니라면 교원의 민·형사상 책임을 면제하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할 방침이다.
"'교육적 해결' 어려워져…소송 급증 우려도"
다만, 가해학생에 대한 대응책이 '엄벌주의'로 선회함에 따라 낙인효과가 커지고 불복절차 증가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학교폭력이 입시와 취업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소송이 늘고, 이 과정에서 피해자가 2차 피해를 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앞으로 피해자 입장에서는 더 강력한 심의 요구와 강도 높은 처벌을 요구할 가능성 높고, 가해자 입장에서는 피해 최소화를 위한 법리적 판단, 이의제기 등의 빈도가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학교폭력 가해 기록을 학생부에 기재하는 것 자체가 문제에 대한 '교육적 해결'을 오히려 가로막는다는 비판도 나온다.
소년범 또는 학교 내에서 교권침해로 징계를 받은 학생과의 형평성 논란도 있다.
19세 미만의 청소년이 형사 범죄를 저지른 경우 '소년법'을 적용받는데 소년법은 소년원 송치를 포함한 보호처분이 '소년의 장래 신상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아니한다'고 정하고 있다.
소년원에 송치된 사실은 학생부에 남지 않는데 학교폭력 처분 기록만 학생부에 남아 대입과 취업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 옳은 것이냐는 비판도 나온다.
송경원 정의당 정책위원은 "소년법과 학교폭력 학생부 기재가 일단 형평성 문제 생기고, 학교 내 다른 징계와 학교폭력 처분 간의 형평성 문제도 생길 수 있다"며 "여기에 대한 해법이 있어야 하는데 교육부 대책에서는 이를 찾아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cind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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