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與지도부 만나 “금산분리 풀고 경제형벌 완화해야”
“경기 ‘상저하고’ 불가능…위기의식 어디갔나”
김기현 “기업이 모래주머니 달고 뛰게 안 해”
메가샌드박스·금산분리 등 재계 숙원 건의돼
노란봉투법·ESG공시의무화엔 “신중함 필요”
전기세 인하·지역별 법인세 차등 현장 건의도
최태원 회장을 비롯한 대한·서울상공회의소 회장단이 국민의힘 김기현 당 대표 등 여당 지도부를 만나 금산분리규제 개선, 경제형벌 완화, 기업 전기요금 인하 등 경제 위기 속 기업 활력을 촉진할 수 있는 입법·정책을 건의했다.
대한·서울상의 회장단은 12일 서울 중구 상의회관에서 여당 핵심 인사들과 정책간담회를 가졌다. 간담회에는 국민의힘 측에서 김 대표와 박대출 정책위의장, 이철규 사무총장 등 6명이 참석했다. 상의 측에선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을 비롯해 서울상의 부회장을 맡은 박승희 삼성전자 부사장 등 회장단 19명이 자리했다.
최 회장은 인사말에서 “새 정부 출범 1년이 돼 가는데 ‘기업하기 좋아지고 있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많다”면서도 “주변 얘기 들어보면 코로나 때보다 지금 더 어렵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국회가 기업 부담을 더는 과감한 정책적 지원을 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에 김 대표는 “우리 기업이 다리에 모래주머니를 달고 뛰게 해서는 안 된다”며 “규제·세제를 포함한 모든 분야에서 전방위적 검토가 필요하다”고 화답했다. 또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을 겨냥해 “소수당의 한계 때문에 많은 어려움에 부딪히고 있다”며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각종 법안을 밀어붙이는 세력과 달리 국민의힘은 민간 경제 활성화를 위한 모든 노력을 기울여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입법·정책건의 발표를 맡은 우태희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은 현재 한국 경제 상황에 대해 “사회 전반의 위기의식이 실종됐다”며 “현 상황을 엄중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우 부회장은 정부 등 국내 기관들의 ‘상저하고’(경기가 상반기에 나쁘고 하반기에 좋아짐) 전망에 대해 “실현되기 힘들 것”이라며 “사회 전반의 위기의식이 실종됐다”고 진단했다. 해외 주요기관의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일제히 하향조정되고 있어서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전망치는 지난해 11월 2.0%에서 지난달 1.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같은 기간 1.8%에서 1.6%로 내려앉았다.
우 부회장은 조속입법 과제로 △기업의 투자수출 애로 해소 △신산업 관련 규제 신속 정비 △메가샌드박스 도입 등을 꼽았다.
메가샌드박스는 앞서 최 회장이 제안한 개념으로, 기업 신기술에 대한 규제를 유예하는 기존 샌드박스를 넘어 산업 단위로 규제를 유예하고 대규모의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미래 산업 육성책이다. 최 회장은 이날 인사말에서도 “(메가샌드박스를 도입해) 규제와 세제를 제로(0) 수준으로 낮춰 기업들의 지방 이전을 유도하고, 지역경제뿐 아니라 미래산업·인구소멸 등의 문제를 통합적으로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눈에 띄는 입법 제안으론 금산분리규제 개선, 경제형벌 완화 등이 있다.
우 부회장은 한국만 지주회사의 금융사 소유를 제한하고 있고, 선진국은 규제가 없거나(유럽연합) 은행 중심의 금산분리제(미국)를 운영 중인 점을 강조하며 “공정거래법을 개정해 지주회사의 자산운용사 소유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제형벌 완화와 관련해선 “처벌이 만능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우 부회장은 한국이 공정거래법상 형벌조항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준이라며 “담합 외에 형사처벌 필요성이 적은 행위는 형벌조항을 폐지하고 과태료 등 행정제재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속추진 과제로는 △근로시간 유연화 △대형마트 영업규제 완화 △중대재해처벌법 보완 △의원입법 영향평가제도 도입 등을 제시했다.
우려되는 입법 사안으로는 △노란봉투법(노조법 개정안)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공시의무 법제화 등이 제시됐다.
오는 2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재의결을 앞둔 노란봉투법에는 원청업체에 대한 하청노조의 교섭·파업권, 회사 경영·인사사항에 대한 노조의 파업을 허용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 불법파업에 대한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하는 조항도 포함됐다.
우 부회장은 노란봉투법이 노조파업권을 강화해 산업 전반에 부작용을 야기할 것으로 봤다. 국내공급망이 훼손되고 국내 투자 기피 요인으로 작용해 일자리를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이다.
ESG 공시의무 법제화는 민주당 이용우 의원이 발의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에 담긴 내용으로 현재 국회 정무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공시의무를 현행 2025년에서 2024년으로 1년 당기고, 사업보고서 내에 ESG 공시를 포함할 것을 요구한다.
재계는 공시 의무화 조기 시행은 준비 기간이 촉박하고, 법적 책임이 발생할 수 있는 사업보고서에 ESG 공시를 담는 것은 기업에 부담이 크다는 입장이다. 우 부회장은 ESG 공시 의무화와 관련해 “충분한 유예기간을 주고, 공시 방식도 기업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전기요금 내리고 지방 법인세 차등 둬야”
상의 회장단은 준비한 입법 제안 외에도 현장에서 건의를 이어갔다.
회장단은 △전력산업기반기금 요율 인하 △비수도권 법인세 차등 △첨단전략산업 기금 조성 △배터리 핵심광물 확보를 위한 해외 광산투자 세제지원 △공항경제권 개발·지원 특별법 제정 등을 언급했다.
이윤철 울산상의 회장은 “최근 전기요금 인상으로 전기요금에 연동된 전력산업기반기금 부담금도 함께 인상됐다”며 “기업들은 전기요금과 전력산업기반기금 부담금 모두 급증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전력산업기반기금 요율을 대폭 인하해 전기요금 인상 부담을 상쇄해 주길 바란다”고 요청했다.
이동수 기자 d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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