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개월 표류한 재정준칙은 뒷전…예타면제법은 1분 만에 통과
예타 기준 500억→1000억 상향
총선 노린 선심성 사업 남발 우려
작년 나랏빚 1000조 넘어섰는데
'안전장치' 재정준칙, 또 논의안돼
4월 국회서도 법제화 물 건너가
1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경제재정소위 회의실 앞. 사회간접자본(SOC)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기준을 대폭 완화하는 국가재정법 개정안 논의가 시작되자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복도로 나왔다. 법안 통과에 대한 기자들의 의견을 묻기 위해서였다. 기자들이 답하려는 순간 회의실에서 의사봉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여야가 상정 1분 만에 법안을 통과시켜버린 것이다. 지난해 12월 열린 소위에서 논의를 끝낸 사안이라는 이유에서였다.
○표 되는 법안엔 손발 척척
여야가 이날 통과시킨 국가재정법 개정안은 반쪽짜리로 평가받는다. 현재 기재위에 상정된 국가재정법 개정안은 크게 두 가지다. 재정준칙 법제화와 예타 면제 기준 완화다. 여야는 이 중 도로 철도 등 SOC와 연구개발(R&D) 사업의 예타 면제 금액 기준을 현행 사업비 500억원(국비 300억원 이상)에서 1000억원(국비 500억원 이상)으로 조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22대 총선이 1년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지역구 민원 사업을 해결해야 하는 여야 의원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재정준칙 관련 내용은 이날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 정부가 2020년 10월 재정준칙 법제화를 발표한 후 2년6개월간 관련 논의가 표류하고 있는 것이다. 예타 면제 기준 완화가 재정지출의 문턱을 낮추자는 취지라면, 재정준칙은 반대로 ‘재정 방파제’를 쌓자는 것이다. 현 정부와 여당이 법제화를 추진하는 재정준칙은 관리재정수지 적자폭을 국내총생산(GDP)의 3% 이내로 제한하고,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60%를 넘을 경우 적자 한도 비율을 2% 이내로 조정하는 내용이다.
○재정준칙 도입한 국가 106개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재정준칙을 도입한 국가는 106개에 달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재정준칙을 도입한 적이 한 번도 없는 나라는 한국과 튀르키예밖에 없다.
1992년 유럽연합(EU)이 창설될 때 가입국들이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 60% 이하, 재정적자비율 3% 이하를 유지한다는 공통 규정을 만들면서 재정준칙이 세계적으로 대중화됐다. 미국은 1986년 일찌감치 재정준칙을 도입했다. 복지국가의 대명사로 꼽히는 스웨덴조차도 엄격한 재정준칙을 갖춘 나라 중 하나로 꼽힌다.
재정준칙 법제화 논의가 표류하는 사이 한국에서는 국가채무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지난해 국가채무는 1067조7000억원으로 1000조원을 넘어섰다. 저출산 고령화가 심화하면서 부채 증가 속도는 더 빨라지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 11일 내놓은 ‘세계경제 전망 2023년 4월호’에 따르면 2028년 한국의 일반정부부채는 1622조6799억원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 2021년과 비교해 52.5% 늘어난 수치로, 증가율이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독일 등 주요 선진국보다 훨씬 높다.
○시행 시기까지 변경했지만…
지난달에는 논의가 물꼬를 트는 듯했다. 정부가 “경제위기인 지금은 오히려 복지를 확대해야 한다”는 야당의 주장을 반영해 시행 시기를 ‘법 통과 후 즉시’에서 ‘2024년 1월 1일’로 변경하면서다.
하지만 갑자기 기류가 바뀌었다. 민주당이 재정준칙 법제화를 위해서는 사회적경제법을 함께 통과시켜야 한다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사회적경제법은 정부가 구매하는 재화 및 서비스의 최대 10%를 사회적기업에서 구입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당은 ‘운동권 지대추구법’이라고 비판하며 당론으로 반대하고 있다. 사회적경제법에 발목이 잡히면서 재정준칙 법제화는 4월 국회에서도 논의할 수 없게 됐다.
■ 재정준칙
나라 살림을 건전하게 유지하기 위해 재정지표에 목표를 부여하고 관리하는 재정운용체계. 정부가 지난해 내놓은 재정준칙안은 관리재정수지 적자폭을 국내총생산(GDP)의 3% 이내로 제한하고,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60%를 넘을 경우 적자 한도를 2% 이내로 조정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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