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를 가진 도청 아니다"? 김태효 설명에도 커지는 의문[정다운의 뉴스톡]
■ 채널 : 표준FM 98.1 (17:30~18:00)
■ 진행 : 정다운 앵커
■ 패널 : 정치부 김형준 기자
[앵커]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맹국들을 대상으로 한 미국의 도청, 불법 감청 의혹이 계속 커지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은 유출된 문건이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이렇게 말했는데 우리 정부는 문건 대다수가 위조됐다는 데 한미 평가가 일치했다고 밝히면서 도대체 뭐가 진실인지 알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외교부와 국방부 담당하는 김형준 기자 나와 있습니다. 오늘 국회 외교통일위원회가 열렸는데 어떤 내용들이 좀 나왔나요?
[기자]
네, 방금 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박진 외교부 장관은 미국은 이 문제를 심각성을 가지고 보고 있다며, 우리 정부와 긴밀하게 소통하면서 전적으로 협력해 나가겠다는 의사를 전해 왔다고 밝혔습니다.
야당 의원들이 미국에 강력하게 문제제기, 항의를 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하자 나온 답변인데요, 박 장관은 일단 사실관계가 가장 중요하다면서 미국 정부에서 사실 여부를 확인하면 한국과 공유할 것으로 본다면서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미국에 합당한 조치를 요구하겠다고 설명했습니다.
[앵커]
사실관계가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 정부와 미국 정부의 입장이 약간 차이가 있는 것 같거든요?
[기자]
일단 현지시간으로 10일, 그러니까 우리 시간으로 어제 새벽,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존 커비 전략소통조정관의 브리핑 내용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커비 조정관은 이 브리핑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진땀을 빼며 대답했는데, 요약해 드리면 이번에 유출된 문서가 일부 조작됐다, 일부 사례의 경우 우리가 생각하는 원래 소스에서 내용이 변경된 게 있다, 이런 이야깁니다.
문제는 그러면 모든 문서가 다 조작됐느냐 하는 건데, 커비 조정관이 '조작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문건', 그러니까 영어로는 don't immediately appear to be doctored.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일부 문건은 진짜일 수도 있다는 걸 시인한 셈이 됐거든요.
당연히 정확한 건 시간을 두고 다 조사를 해 봐야 아는 거긴 한데 일단은 그렇다는 거지만, 우리 대통령실 해명이 또 달라요.
국가안보실 김태효 1차장이 어제 미국으로 출국하는 길에 기자들과 만나서, "공개된 정보의 상당수가 위조됐다는 데 한미의 평가가 일치했다", 이렇게 언급을 했습니다. 물론 상당수라고 했지 전부 다라고 하진 않았습니다.
또 기자단에 입장문을 보내서는 대통령실은 원래 국방부 청사가 있던 곳이니까 군사시설이고 과거 청와대보다 훨씬 강력한 보안 시스템이 있다, 도청을 당했다는 의혹은 거짓이다.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앵커]
정리를 해 보자면 미국은 일부가 조작됐다, 우리 대통령실은 상당수가 위조됐다. 약간 뉘앙스 차이가 있는 것 같은데요. 오히려 우리 측이 미국보다 더 강한 반박을 하게 된 셈인데 이유가 뭡니까?
[기자]
아무래도 야당의 공격, 그러니까 청와대를 두 달만에 급하게 이전해서 그런 것 아니냐는 주장을 방어하기 위한 성격이 큰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대통령실 입장문에는 더불어민주당의 비판에 대한 반박이 포함돼 있었는데, "허위 네거티브 의혹을 제기해 국민을 선동하기 급급하다", "한미동맹을 흔드는 자해행위이자 국익침해 행위"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요, 사실 문건이 진짜냐 가짜냐 하는 문제랑 도청을 실제로 했느냐 아니냐는 별로 상관이 없습니다. 다만 문건이 진짜라면 그것을 통해서 도청을 실제로 했다는 증거를 확보할 수 있을 뿐입니다.
실제로 정보기관에 계셨던 분들을 상대로 취재해 봤는데, 사견을 전제로 말하긴 했지만, 이번 문건을 보니 일부는 위조됐을 수 있다, 하지만 만듦새나 이런 걸 보면 위조를 하려고 해도 결국은 진짜가 필요하다,
[앵커]
그러니까 완전 가짜를 허위로 만들어 냈다, 이렇게 보기가 좀 어려웠거든요?
[기자]
결국 진짜가 있어야 가짜도 만들어낼 수 있고, 따라서 진짜가 유출됐을 가능성은 미국만 알고 있다는 거죠. 그럴 수(진짜가 유출됐을 수)도 있고요.
그런데도 대통령실이 일단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며 적극적으로 방어하는 모습은, 도청 피해자가 가해자를 변호해주는 것 아닌가, 하는 아리송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겠습니다.
도청을 당했고 그 사실이 유출까지 돼서 우리가 외교적으로 좀 곤란해졌으니 항의를 하든지 협의를 하든지 어쨌든 그만한 반대급부라도 곧 있을 한미정상회담에서 얻어내는 게 우리의 국익을 위해 바람직하다고 전문가들도 지적하고 있고요.
거기에 오늘 새벽 워싱턴 DC에서 아까 말씀드린 김태효 1차장이 이런 말을 했는데, 직접 들어 보시죠.
"현재 이 문제는 많은 부분 제3자가 개입돼 있기 때문에… 미국이 우리에게 어떤 악의를 가지고 했다는 정황은 발견되지 않고 있습니다."
제3자라는 건 이 문건 유출 때부터 제기되고 있는 러시아 또는 친러 세력의 공작일 가능성을 뜻한다고 해석됩니다.
그런데 조금 취재를 해 보니, 김 차장의 이 말은 처음부터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왜냐면 정보기관에 의한 도감청은 원래 전 세계적으로 어떤 나라든지 다른 나라에 대해서 다 하는 일이거든요. 우리나라도 외국에 가서 하고 있고요. 다만 안 걸리면 됩니다. 첩보전이 원래 그렇습니다.
그런 첩보 활동을 하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상대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서인데, 그렇게 의중을 일단 알고 나서야 선의가 되든 악의가 되든 뭐든 판단이 서죠. 그러니 처음부터 '악의를 가지고 한 것이 아니다'고 하는 것 자체가 논리적으로 이상하다는 얘깁니다.
[앵커]
설명을 듣고 보니까 정말 그렇네요. 그리고 보안 사고가 사실이라면 굳이 도감청 말고 다른 방법들도 많지 않습니까?
[기자]
우리 입장에선 유감스러운 일이긴 한데, 바로 그겁니다.
대통령실의 설명은 최신 보안 시스템을 갖췄기 때문에 도감청을 당했다는 게 사실이 아니라는 이야기지만, 방법이 도감청만 있는 게 아닙니다.
이번에 유출된 한국 관련 문건의 위쪽을 보면 'SI-Gamma' 라는 표시가 돼 있는데 SI란 특수정보를 말합니다. 즉 적에게 발각되면 치명타를 입을 수 있어 출처와 수집 방법을 철저하게 보호하는 정보를 말하는데요, 어떤 특정한 방법의 첩보와 정보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그런 속성을 가진 첩보와 정보를 포괄적으로 말하는 말이 SI입니다.
보통은 흔히 아는 도감청, 그러니까 신호정보 SIGINT를 말하는 거긴 한데 SI엔 사실은 인간정보 HUMINT, 쉽게 말해 간첩도 포함됩니다. 그러니까 내부 협조자를 포섭해서 그런 내용을 유출하거나 아예 도청까지 같이 조립했을 수 있는 거예요.
지금까지 했던 대통령실의 설명이 다 사실이라고 치더라도, 그 내용을 천천히 생각해 보면, 우리 대통령실 내부에 협조자 또는 미국의 간첩이 있을 수 있고 그 내용을 유출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불편한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앵커]
정말 불편하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이야기였습니다.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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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김형준 기자 redpoint@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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