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은 법조보도
[편집국에서]
[편집국에서] 김원철 | 사회부장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법조보도 이야기입니다. 출신부터 고백하겠습니다. 10여년 전 법조기자로 2년6개월 일했습니다. 주로 검찰을 담당했죠. 당시에도 답답했습니다. 문제라는 건 알겠는데, 어쩔 수 없기도 하고, 이런저런 대안도 있지만, 적용이 쉽지는 않겠구나…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법조기사와 법조기자, 왜 욕먹을까요? 변명부터 해보겠습니다.
검찰은 뭔가를 하지 않거나, 뭔가를 합니다. 당연한 얘기죠. ‘뭔가를 하지 않을’ 때 그것이 ‘해야 했을’ 일이라면 비판이 어렵지 않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인 김건희 여사가 연루된 것으로 의심받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에서 검찰은 명확한 설명 없이 김건희 여사를 조사하지도, 처분을 내리지도 않고 있죠.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명확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비판이 가능합니다.
문제는 검찰이 ‘뭔가를 할’ 때입니다. 여기서 ‘뭔가’는 바로 수사죠. 검찰이 수사를 시작하면 기자는 두가지를 판단해야 합니다. ①죄가 없는데 수사하는 걸까? ②죄가 적은데 과하게 수사하는 걸까? ① 또는 ②를 합리적으로 의심할 수 있다면, 비판적으로 보도하면 됩니다. 죄가 있고, 죄에 합당한 수준으로 수사한다면 누가 수사 대상이든 비판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죠.
난감한 점은 검찰이 수사를 벌일 때 ①, ②에 대한 판단이 꽤 어렵다는 데 있습니다. 수사기관이 어떤 혐의까지 내다보고 있는지, 그와 관련해 어떤 증거를 손에 쥐고 있는지 외부에서 판단하기 쉽지 않습니다. 밀행성과 보안을 중시하는 ‘수사’라는 행위의 특수성 탓이죠. 수사 결과가 나온 뒤 회고적으로 수사를 평가하는 건 가능하겠지만 말입니다.
검찰이 대대적으로 공적 인물에 대한 수사를 벌이는데, ① 또는 ② 판단이 쉽지 않다면, 언론사는 갈림길에 섭니다. 비판적 검토가 불가능하니 보도하지 않거나, 비판도 옹호도 않고 수사 자체를 단순 전달하는 겁니다.
대다수 한국 언론은 후자를 택합니다. 그런 판단 배경에는 ‘검찰도 국가기관인데, 국가기관이 공개적으로 하는 행위를 보도하는 게 문제가 되느냐’는 인식이 깔린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제아무리 ‘비판하지도, 옹호하지도 않은 채 현상 자체를 전달’해도 보도를 접한 독자들은 수사 대상자가 죄를 지었다고 받아들이게 됩니다. 예단을 갖게 됩니다.
개별 언론사의 역사적 지향,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까지 얹혀지면, ‘현상 자체를 전달’하는 걸 넘어 ‘응원’하는 보도도 하게 됩니다. 10년 전 검찰이 대대적으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추징금 환수를 위한 수사를 벌였을 때 <한겨레>는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적극 보도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수사, 이후 이어진 이른바 ‘적폐청산 수사’ 때도 비슷한 기조였죠. 반대로 보수 언론은 현 야권의 집권 시절 비리 의혹이나 시민사회단체·노동조합 관련 수사를 그런 마음으로 보도할 겁니다. 기사에 ‘응원하는 마음’이 담기면 ‘수사를 비판적으로 검증해야 한다’는 인식 자체가 옅어질 수 있습니다. 부지불식간에 검찰에 동조하는 마음까지 담길 수 있고, 유죄를 더 강하게 추정하는 방향으로 기사가 작성될 수도 있습니다.
변명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헷갈릴수록 원칙을 되돌아봐야 합니다. 보도할 때 ‘진실성을 비판적으로 검토’해 ‘사실이라고 믿을 만’해야 보도한다는 건 모든 보도에 적용되는 대원칙입니다. 범죄 수사 보도라고 예외일 수 없습니다. 혐의에 다툼 여지가 있다면 최대한 보수적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반론을 충실히 보장하는 건 필수입니다. 독자가 예단을 갖지 않도록 기사 작성 때 작은 표현 하나에도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검찰은 ‘형사사법 업무’라는 국가기능의 한 축을 담당하는 기관입니다. 이 업무는 검찰이라는 기관 하나의 처분으로 완결되지 않습니다. ‘수사-공소-공판-재판의 집행’, 즉 경찰·검찰·법원의 집합적 행위를 통해 완성됩니다. 수사는 형사사법 업무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 공소가 제기된 뒤 재판에서 치열하게 검증받는다는 점, 그런 뒤에도 두번째, 세번째 재판이 기다리고 있다는 점 등을 저부터 다시 새기겠습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법조보도, 독자님의 지혜도 머리 숙여 구합니다.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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