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허제 안 풀거면 재건축이라도 빨리...‘압여목성’의 속앓이 [르포]

이가람 매경닷컴 기자(r2ver@mk.co.kr) 2023. 4. 12.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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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한강변 아파트의 모습. 다수의 단지에서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다. [한주형 기자]
“토지거래허가제로 묶여 집을 팔고 싶어도 산다는 사람이 없어요. 건물 노후화 속도는 빨라지는데 재건축은 지지부진하고. 이게 이중 규제가 아니고 뭔가요. 평생을 노력해 축적한 내 재산에 대해 정부가 너무 지나치게 간섭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한양아파트 주민 A씨)

서울시가 압구정·여의도·목동·성수지역의 토지거래허가구역 재지정을 결정했다. 삼성·청담·대치·잠실지역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 역시 사실상 물 건너간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면서 주민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12일 매경닷컴이 찾은 토지거래허가구역 내 주요 아파트 단지에는 냉랭한 기운이 감돌았다. 부동산 하락장 본격화에 이번에야말로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실망감으로 변해 있었다.

압구정의 한 재건축 추진위원회 관계자 B씨는 “부동산 활황기에는 토지거래허가제의 필요성도 있었고 명분도 충분했다”며 “지금은 부동산 경기 흐름이 바뀌었는데 기존 규제를 이어가겠다는 것은 지역주민들이 부동산 폭등의 원인이라는 의미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여의도의 한 재건축 조합 관계자 C씨도 “토지거래허가제는 연장 결정처럼 지구단위계획 확정도 빨리 해 주면 좋겠다”며 “정비사업 진행은 지지부진하고, 토지거래허가제 피해는 불어나고, 재건축초과이익 환수까지 진행될 것을 생각하니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앞서 서울시는 지난 5일 도시계획위원회를 열고 ▲강남구 압구정동 아파트지구 ▲양천구 목동 택지개발지구 ▲영등포구 여의도동 아파트지구 ▲성동구 성수동 성수전략정비구역 등 총 4곳(4.58㎢)의 규제를 1년 연장했다. 이에 따라 이 지역들은 지난 2021년 4월부터 오는 2024년 4월까지 제약을 받게 됐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아파트 단지들의 모습. 이 일대는 현재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이가람 기자]
토지거래허가제는 일정 면적 이상의 부동산을 매매할 때 지방자치단체장의 허락을 받도록 하는 부동산 규제 수단 중 하나다.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주택을 매입하면 2년 동안 실거주가 필수라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갭투자와 외지인 유입을 차단하고 시세 급등을 제어해 거래시장이 안정되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사유재산권 침해 소지를 놓고 반발이 심한 데다가 실거주를 하기 위해 주택을 매입하려고 해도 매수 절차가 복잡하고, 거래절벽으로 인한 기존 주택 매각 어려움과 임대차법 영향 등으로 즉시 전입이 어려워 사실상 거래 금지 대책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하철 3호선 압구정역 인근에서 공인중개사사무소를 운영하는 대표 D씨는 “대출 금리가 부담스럽고 매매가 끊긴 상황에서 토지거래허가제의 실효성이 있는지 모르겠다”라며 “정부가 규제를 푼다면 그만큼 집값이 많이 내려갔고 앞으로 더 떨어질 확률이 높다고 경고한 것이나 마찬가지라,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만으로 집값이 뛰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하철 5호선 오목교역 근방에서 영업 중인 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 E씨는 “역대급 개발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권역인 만큼 투기수요 유입과 주택시장 자극을 막는 안전핀이 필요하다”며 “재건축·재개발에만 문제가 없다면 오히려 집값이 오르지 않기를 바라는 소유주가 다수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기간이 오는 6월 22일로 종료되는 ▲강남구 청담동 전역 ▲강남구 삼성동 전역 ▲강남구 대치동 전역 ▲송파구 잠실동 전역 등 총 4곳(14.4㎢)의 주민 불안도 확산하고 있다. 이 지역들이 규제의 대상이 된 사이 수요자들은 ▲용산구 한남동 ▲서초구 반포동으로 향했다.

잠실의 한 아파트 커뮤니티시설에서 만난 주민 F씨는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재지정된다고 봐야 할 것 같아 걱정된다”며 “이 동네는 집값이 떨어졌다는 기사가 일주일에도 몇 번씩 나왔는데, 풍선효과를 본 동네에는 토지거래허가제가 적용될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제도 시행에 일관성이 없다”고 꼬집었다.

한남·반포, 토지거래허가구역 아닌 이유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 ‘한남더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초고가 아파트 중 하나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실제로 토지거래허가구역이 아닌 한남·반포지역을 중심으로 신고가 계약이 속속 체결되고 있다. 실거래가를 기준으로 토지거래허가구역을 지정하면 한남·반포지역이 포함돼야 하는데 서울시는 고려하지 않는 분위기다. 토지거래허가구역 주민들 사이에서 형평성 논란이 불거진 이유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달 10일 한남동 ‘한남더힐’ 전용면적 240㎡가 110억원에 손바뀜됐다. 올해 들어 최고가 주택거래다. 앞서 지난 1월 16일 반포동 ‘래미안원베일리’에서도 전용면적 200㎡의 분양권이 100억원에 팔려 주목을 받았다.

아실을 참고해도 올해 서울 최고가 아파트 순위권에 한남더힐(1위·110억원), 반포주공1단지(3위·67억원), 반포자이(4위·63억원), 한남트윈빌(11위·45억원), 방배대우(12위·43억원), 반포힐스테이트(14위·42억원), 잠원청구빌라트(15위·41억5000만원) 등이 이름을 올렸다.

서울시는 실거래가보다는 개발 규모 및 여건 등을 포함해 종합적인 요인이 토지거래허가구역을 지정하는 데 주효한 기준이 된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반포의 경우 일대 재건축 프로젝트가 완료 수순을 밟고 있어 호재가 유의미하게 반영되지 않는 단계이고, 용산의 경우 일부 하이엔드 주거단지에 고가 거래가 국한됐을 뿐 뉴타운 재개발 구역은 거래가격 변동성이 심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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