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만의 공개 ‘직지’ 표지에는 ‘1377년’ 위대한 낙서가 있다

오윤주 2023. 4. 12.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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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석 청주시장이 12일 개막한 프랑스국립도서관의 ‘인쇄하다 구텐베르크의 유럽’ 특별전에서 <직지> 원본을 관람하고 있다. 청주시 제공

세상에 하나뿐인,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직지)이 세상에 나왔다.

<직지>를 소장한 프랑스국립도서관은 12일 개막한 ‘인쇄하다 구텐베르크의 유럽’ 특별전에서 <직지>를 공개했다. 오는 7월16일까지 이어지는 특별전에선 <직지>와 더불어 서양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 <구텐베르크 성서> 중세 유럽의 판목 등 동서양 인쇄문화 유물 270여점이 선보인다.

<직지>는 1972년 ‘세계 도서의 해’를 맞아 프랑스국립도서관이 특별전(5~10월)을 통해 존재를 알린 데 이어, 이듬해 프랑스국립도서관의 ‘동양의 보물’ 전시(6~10월) 때 공개한 이후 50년 만에 공개됐다. 이번 특별전 개막 행사에 초대된 이범석 청주시장은 “50년 만의 <직지> 공개 행사에 <직지>를 간행한 청주의 대표로 참석하게 돼 감개무량하다. 프랑스국립도서관과 더불어 단 한권 밖에 남아있지 않은 <직지>를 안전하게 보존하고, <직지>의 가치를 세계에 알리는 데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50년 만에 외출한 <직지>의 본디 이름은 <백운화상 초록 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이다. 좀 어렵지만 두자씩 풀면 이해가 쉽다. 백운 큰 스님이 부처·선사·조사 등의 가르침 가운데 중요한 부분을 가려 기록한 책으로, 백운 화상을 따르던 석찬·달잠·묘덕 등이 시주를 받아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간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애초 상·하 두권이었지만 지금은 하권만 프랑스국립도서관에 남아 있으며, 유네스코는 2001년 <직지>를 세계 기록유산으로 등재했다.

<직지> 표지. 청주고인쇄박물관 제공
<직지> 마지막장. 청주고인쇄박물관 제공

<직지>는 어떻게 프랑스로 넘어갔을까. 표지를 보면 대략 답이 나온다. <직지> 표제 옆 ‘711’이란 숫자가 적혀 있는데 이는 경매 번호다. 1886년 한불 수호조약 뒤 초대·3대 공사를 지낸 콜랭 드 플랑시가 <직지>를 수집해 프랑스로 가져간 뒤 1911년 3월 파리 경매장에 내놨는데, 이때 골동품 수집상 앙리 베베르가 180프랑을 주고 구매했다. 표지 아래 ‘COREEN 109’는 프랑스국립도서관이 찍은 도서번호로, 한국 서적 109번이란 뜻이다. 앙리 베베르는 1952년 <직지>를 프랑스국립도서관에 기증했다.

<직지> 표제 옆 프랑스어 메모는 첫 소유자 콜랭 드 플랑시의 자필이다. <직지> 마지막 장 ‘선광 칠년 정사 칠월 청주목외 흥덕사 주자 인시’를 요약한 것으로, 풀어보면 ‘1377년 7월 청주교외 흥덕사에서 주조한 활자로 찍은 책’이라는 말이다. 서양 구텐베르크 성서보다 78년 앞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이라는 것을 증명한 ‘위대한 메모’다.

50년 만에 공개된 <직지>를 보면 군데군데 색이 바랬지만, 글자는 선명하다. 청주고인쇄박물관과 프랑스국립도서관 등은 지난 2021년부터 공동연구를 진행해 646년 전 <직지>가 평량(종이 두께·무게) 27.5±2.5g/㎡, 백색도 60%의 전통 한지에 카본이 주성분인 먹으로 제작된 것을 규명했다. 이 연구를 토대로 청주시는 현재 상태의 <직지> 복본 30권, 1377년 제작 당시의 소재·기법을 추정한 <직지> 복본 30권을 만들었다. 영인본이 2차원적 복제지만, 복본은 종이 질·먹 성분·오염 상태 등을 종합 분석해 새로 제작하는 3차원적 복제다. 청주시는 이들 복본을 프랑스국립도서관 등에 건넸다.

<직지>의 본향 청주는 <직지> 실물 공개를 계기로 <직지> 세계화에 나설 참이다. 6월께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10월께 미국 로스앤젤레스 등에서 <직지> 국외 전시를 추진한다. 9월께 유네스코 본부에서 <직지> 복본과 한지 등 특별전을 개최하는 것도 검토 중이다.

더불어 <직지> 원본 국내 전시도 추진할 참이다. 이범석 청주시장은 프랑스국립도서관 특별전에 앞서 “가까운 미래에 대한민국 국민들이 한국에서 <직지>를 직접 볼 수 있기를 고대한다”고 밝혔다.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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