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주석 칼럼] 두 국부론, 남산에 백범과 우남 동상을

파이낸셜뉴스 2023. 4. 12. 18:00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서울 남산은 최고의 정치선전장이다.

우남의 동상이 시위대에 의해 끌어내려진 뒤 단군상이나 4·19 기념탑 건립이 유력했지만 1969년 박정희 대통령이 백범을 낙점했다.

한국 현대사의 두 거인이 남산의 명당자리를 두고 자웅을 겨룬 결과 백범이 판정승을 거둔 셈이다.

남산 백범광장을 '국부의 광장'으로 확대해서 백범 옆에 우남의 동상을 나란히 세울 것을 제안한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서울 남산은 최고의 정치선전장이다. 누구나 남산에 동상이나 시비를 세우거나 기념관을 갖고 싶어 한다. 하지만 남산에 동상을 가진 인물은 김유신, 이황, 정약용, 안중근, 유관순, 김구, 이시영 등 7명에 불과하다. 기념관은 안중근과 이회영 둘뿐이다. 시비와 기념비는 김소월과 조지훈 등 5개가 드문드문하다. 남산 진입장벽은 매우 높다.

남산은 조선시대 왕이 제왕남면(남쪽을 바라보고 백성을 다스림)할 때 바라보는 산이다. 일제강점기 통감부와 통감관저가 들어섰고, 조선신궁까지 지어 신성시했다. 해방 이후 이 산의 핵심 공간을 차지하려는 전쟁이 치열했다. 우남 이승만이 선점했다. 1956년 세계 최대 규모의 동상을 세웠다. 지금은 백범 김구가 주인이다. 우남의 동상이 시위대에 의해 끌어내려진 뒤 단군상이나 4·19 기념탑 건립이 유력했지만 1969년 박정희 대통령이 백범을 낙점했다. 1949년 백범이 암살된 뒤 동상을 세우려던 바로 그 자리였다. 백범 옆에는 초대 부통령을 지낸 이시영의 동상도 1988년 똬리를 틀었다.

한국 현대사의 두 거인이 남산의 명당자리를 두고 자웅을 겨룬 결과 백범이 판정승을 거둔 셈이다. 분단 이후 진행형인 '남남 갈등'을 대변하는 현장이다. 우리 사회는 두 명의 정치 지도자 중 누구를 따르느냐에 따라 '1919년 건국'과 '1948년 건국'으로 갈라져 '역사 전쟁'을 벌이는 중이다.

우남을 건국의 아버지(국부)로 모시거나 백범을 국부로 섬기는 두 개의 진영이 격렬하게 부딪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분열과 대립상의 대부분은 '1인 국부론'에서 비롯됐다. '끝나야 할 역사전쟁'(동문선, 2022)의 저자 김형석은 "국부론은 대한민국의 국가 정체성과 건국 논쟁의 핵심 쟁점"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이승만과 김구'(나남, 2008)를 저술한 손세일은 "두 사람은 민족주의 안에서 이승만은 건국을, 김구는 민족을 강조했을 뿐 차이가 없다"라고 했다.

손세일은 "이승만과 김구는 대한민국의 두 국부"라면서 쌍두마차 체제를 제시했다. 백범의 1919년 임시정부가 있었기에 우남의 1948년 건국이 가능했으며, 임시정부 덕분에 대한민국에 적법성이 있다고 해석했다. 1인 국부론은 백범의 겸양에 불과하다는 논리를 폈다.

그동안 '독재자 프레임'에 갇혀 금기시됐던 이승만 재평가 바람이 불고 있다. 항일·반공의 초대 대통령, 최초의 경제민주화라고 할 만한 농지개혁, 제2의 한국전쟁을 막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 업적만 따져도 '공7과3' 이상의 평가를 받기에 차고 넘친다는 주장이다. 기념관과 동상을 세워 후세의 사표로 삼아야 한다는 얘기다.

누가 국부인가 하는 케케묵은 논쟁을 넘어설 때가 됐다. 국가 통합을 위해 국부가 여럿이면 어떤가. 미국은 147명의 독립 유공자를 '건국의 아버지들'이라고 떠받든다. 우남과 백범 두 분을 '공동 국부'로 모셔도 될 법하다. 낳아준 부모와 길러준 부모가 한집에 사는데 내 편은 영웅시하고, 네 편은 악마화하면 콩가루 집안이 되기 십상이다. 남산 백범광장을 '국부의 광장'으로 확대해서 백범 옆에 우남의 동상을 나란히 세울 것을 제안한다. 우리나라는 좌우대칭의 날개로 날아야 한다.

joo@fnnews.com 노주석 논설고문

Copyright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