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하루]중국·러시아 공동의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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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3월 21일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과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전략적 협력 관계에 대한 의지를 과시했다.
그동안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는 연대보다는 경쟁과 반목이 더 많았지만 공동의 강력한 적이 등장할 때마다 전략적 연대가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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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3월 21일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과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전략적 협력 관계에 대한 의지를 과시했다. 지난해 9월 15일 상하이 정상회의 이후 7개월 만의 재회로, 미국이라는 공통의 적에 대한 연대를 위함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그동안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는 연대보다는 경쟁과 반목이 더 많았지만 공동의 강력한 적이 등장할 때마다 전략적 연대가 이뤄졌다. 중국과 러시아의 첫 번째 조약인 네르친스크 조약이 체결될 때도 그러했다.
해발고도 600m의 시베리아 자바이칼 지방의 네르친스크에서 1689년 9월 7일(음력 7월 24일, 러시아력으로는 8월 28일) 최종적인 타결에 도달한 네르친스크 조약은 중국이 서양 국가와 맺은 첫 번째 조약이자 상호 이익을 위해 주권 평등에 입각해 맺은 최초의 국제조약으로 평가받는다. 조약의 정본은 라틴어로 작성됐지만 러시아 측은 러시아본을 부본으로 작성하고 당시 청나라 측은 만주어본을 간직했다. 세 언어에 모두 정통한 청 조정의 예수회 선교사들이 뛰어난 매개자 역할을 감당했다.
역대로 중국은 1949년까지 외국과 맺은 1300여 건의 외교 조약이 있는데 그 가운데 네르친스크 조약은 최초의 조약으로 인정받는다. 난징 조약 등 대부분의 조약이 불평등 조약이었던 것을 상기해보면 최초의 조약이 상호 평등한 용어로 대우했던 네르친스크 조약이었음은 대단히 이례적이다. 양국 모두에 몽골이라는 강력한 위협 세력이 존재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서몽골의 중가르가 할하몽골을 침입한 사건은 청에 긴박한 상황을 만들었고 청은 러시아의 중립을 확보하기 위해 형식상의 평등을 허용했다. 반면 러시아는 청과의 안정적인 무역이 긴요했다. 결국 청과 러시아 모두 몽골이 상대국과 연대하는 것을 우려했기에 양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이른바 ‘반몽골 연대’로 네르친스크 조약이 체결된 셈이다. ‘반미(反美) 연대’로 한층 가까워진 시진핑과 푸틴의 행보가 양국 사이에 또 어떤 전략적 조약으로 이어질지 주목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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