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배 비싸도 K라면 찾는 미국인들 … 태평양 섬나라도 매주 먹는다
뉴질랜드 북동쪽 남태평양 한가운데 있는 작은 섬나라 사모아. 인구 5만5000여 명인 이곳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음식은 한국에서 온 '육개장사발면'이다. 사모아에선 지난해 판매된 농심의 육개장사발면은 약 250만개로 1인당 62개를 소비했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사발면을 먹은 셈이다. 농심 관계자는 "생필품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던 현지인들이 1990년대 초 원양어선을 타던 한국인들에 의해 사발면을 처음 접한 이후 꾸준히 소비를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10년 사이 K라면은 전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 유럽의 지붕으로 불리는 스위스의 융프라우 정상,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 코스, 지구 최남단 칠레 푼타아레나스 등 곳곳에서 한국 라면을 즐기는 세계인들을 목격할 수 있다. 라면의 종주국 일본은 최근 K라면을 본뜬 제품을 내놓는 등 바싹 긴장한 모양새다.
12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라면제조사 4곳(농심·삼양식품·오뚜기·팔도)의 지난해 라면 해외 매출액은 합계 2조3215억원으로 만두(약 1조원), 김(약 9000억원), 김치(약 2000억원) 등에 비해 월등히 크다. 해외시장에서 K푸드에 대한 관심이 커진 가운데, 라면이 K푸드 열풍을 선도하고 있는 셈이다.
글로벌 시장조사전문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작년 기준 국가별 연간 라면 소비 규모는 중국(22조9545억원), 일본(6조8887억원), 인도네시아(4조3751억원), 미국(2조7164억원), 한국(2조6469억원) 순이다. 전 세계에서 라면 소비가 4번째로 많은 미국은 자국 내 라면 제조업체가 없어 주요 라면기업들의 경쟁이 가장 치열한 시장으로 꼽힌다.
2021년 기준 국내 1위 라면기업 농심의 미국 라면시장 점유율은 26%로 일본 도요스이산(48%)에 이어 2위다. 농심은 2017년 미국에서 일본 닛신푸드를 제치고 2위에 올랐다. 농심 관계자는 "수년 내 미국 시장에서 일본 기업을 꺾고 1위 자리를 차지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실제 최근 K라면이 미국 등 글로벌 시장에서 인기가 급상승하면서 일본 식품기업들은 강한 위기감을 느끼는 모양새다. 일본 최대 라면기업인 닛신푸드는 올해 초 한국의 대표 인기 라면인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과 유사한 소위 '짝퉁' 제품을 출시해 논란을 일으켰다. 이 제품은 불닭볶음면과 흡사한 분홍색 배경에 한글로 '볶음면'이라고 표기됐다.
불닭볶음면은 삼양식품이 2012년 출시해 전 세계에서 큰 인기를 얻은 제품으로, 지난해 삼양식품이 식품업계 최초 4억달러 수출의 탑을 수상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일본 최대 라면기업의 유사 상품 출시는 불닭볶음면에 대한 전 세계적 관심이 얼마나 높은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했다.
미국에서는 일본 라면이 한국 라면의 반값도 안 되는 저가에 팔리고 있다. 농심 신라면은 미국 마트에서 한 봉지당 1.5달러 안팎, 신라면 블랙은 2.5달러 안팎에 팔리고 있다. 반면 미국 시장 점유율 1위인 일본 도요스이산의 대표 제품은 한 봉지에 0.5달러 정도에 팔린다. 일본 라면에 비해 신라면은 3배, 신라면 블랙은 5배 높은 가격에 팔리고 있는 셈이다.
최근 미국 식품시장을 둘러본 장재호 서울대 푸드테크학과 교수는 "일본 라면은 다소 밋밋한 맛이어서 미국인들이 주로 토핑을 곁들여 먹어왔는데, 신라면은 가격이 비싸지만 토핑 없이도 충분히 맛있다는 평이 많다"고 전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2020년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라면으로 '신라면 블랙'을 꼽았다.
K라면이 해외시장에서의 선전으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은 데는 K컬처 영향이 큰 것으로 지적된다. 2020년 전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은 영화 '기생충'에 '짜파구리'가 등장하면서 짜파게티와 너구리가 각광받았다. 그룹 BTS의 멤버 지민, 뷔, 정국 등이 잇달아 불닭볶음면을 먹는 모습을 유튜브에 올린 것도 중국·동남아를 넘어 미국·유럽·남미 등 전 세계로 K라면이 영역을 확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는 평가다.
농심은 지난해 5월 가동을 시작한 미국 제2공장의 가동률이 최근 100%에 근접하면서 조만간 제3공장 건립에 나설 계획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업체들이 해외 현지 생산능력을 키우고 있는 만큼 올해는 해외 라면 매출이 내수 소비를 추월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최재원 기자 / 진영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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