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제로 반도체 요구에…삼성·SK"난감하네"
재생에너지 사용조건 내걸어
국내 재생에너지 턱없이 부족
인증서 값은 1년새 43% 뛰어
불황속 추가비용 부담 눈덩이
델테크놀로지스·애플 등 글로벌 기업이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에 주문을 할 때 재생에너지 이용을 조건으로 내거는 사례가 급증하면서 국내 기업이 '사면초가'에 빠졌다. 재생에너지로 생산된 전력 공급량 자체가 한정된 데다 이를 구입하기 위한 비용 또한 급격히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 입장에서는 최악의 반도체 업황 부진에 더해 재생에너지 수급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는 셈이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서버 1위 기업 델테크놀로지스는 2030년까지 '스코프3'의 상품·서비스 구매 영역에서 탄소배출량을 45% 줄이겠다는 새로운 목표를 제시했다.
기업의 탄소배출량은 스코프1~3으로 나뉜다. 스코프1은 사업장 내 연료 사용으로 직접 발생하는 탄소를 의미하고, 스코프2는 기업이 이용한 에너지를 생산할 때 배출되는 간접 발생 탄소를 말한다. 스코프3는 협력사의 제조와 물류 과정, 유통, 폐기 등 공급망에서 배출되는 탄소 전체를 포괄한다.
델테크놀로지스가 스코프3에서 탄소배출량을 줄인다는 것은 델테크놀로지스가 만드는 서버에 장착되는 반도체의 탄소배출량을 관리하겠다는 뜻이다. 쉽게 말해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이 델테크놀로지스에 반도체를 납품하려면 재생에너지로 제품을 생산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 같은 요구는 국내 반도체 기업의 주요 고객인 글로벌 기업에서 줄을 잇고 있다. 2030년까지 스코프3 배출량을 절반 이상 줄이겠다고 밝힌 마이크로소프트(MS), 2040년까지 탄소중립을 선언한 아마존웹서비스(AWS), 2030년까지 탄소중립을 선언한 애플도 국내 기업에 재생에너지를 이용해 만든 반도체를 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기업의 '넷제로(탄소중립)' 요구가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반도체 기업이 반도체 업황 부진의 돌파구로 이들 서버 기업의 수요를 꼽는 만큼, 반도체 기업도 이들의 요구를 들어줘야만 하는 상황이다. 문제는 국내 재생에너지 생산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2021년 기준 재생에너지 사용 비율은 삼성전자가 20.5%, SK하이닉스는 4.1%에 그친다. 2021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국내 전체 산업용 전력의 9.5%에 해당하는 27TWh(테라와트시)를 사용했다. 그러나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로 생산된 전력 비중은 국내 전체 전력 생산의 4.7%에 불과하다.
생산량은 제한됐지만 재생에너지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다 보니 비용은 급등하고 있다. 신재생 원스톱 사업정보 통합포털에 따르면 기업들이 재생에너지 사용 시 주로 이용하는 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 가격은 지난해 3월 한 단위당 월평균 가격이 4만7520원이었지만, 올해 3월에는 6만7865원으로 1년 새 42.8% 뛰었다. 가뜩이나 반도체 업황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는 반도체 기업에는 재생에너지 비용부담까지 늘어나고 있다.
그나마도 물량이 부족하다 보니 국내 기업은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만큼을 구분하는 방식으로 글로벌 고객사의 주문을 맞추고 있다.
문제는 앞으로 K반도체의 경쟁력이 재생에너지에서 판가름 날 수 있다는 점이다. 삼성전자가 이미 미국 내 사업장이나 중국 내 사업장에서 100% 재생에너지를 사용한다는 부분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최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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