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 엄벌’이 학폭 줄일까···실효성 문제·불복소송 증가 우려
12일 정부가 발표한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에는 이미 알려진 대로 수위가 높은 학교폭력 조치사항의 졸업 후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 기재 기간을 늘리고 대입 정시모집에도 학폭 전력을 반영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정책 발표 전부터 대표적인 부작용으로 예상됐던 가해 학생의 소송 남발 가능성 문제에 대한 대책도 일부 포함됐다. 하지만 ‘가해자 엄벌’에 초점이 맞춰진 정부 대책만으로는 실제 학폭을 줄이는 효과가 충분치 않고 가해 학생의 불복에 대응할 방법도 충분치 않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번 대책으로 학교폭력 조치사항 중 6호(출석정지), 7호(학급교체), 8호(전학)는 졸업 후 4년간 학생부에 남게 된다. 중학교 때 저지른 학폭 기록은 대입 때까지, 고등학교 때 기록은 대학 졸업 학년까지 남게 되는 셈이다. 하지만 대입 이후에 중·고교 학생부 기록을 확인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 실제로 가해학생들에게 불이익이 돌아갈지는 미지수다. 지금도 학교 현장에서는 졸업 시점 이후에 학폭 기록이 남는지 여부를 크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경우가 많다.
대입 정시모집에 학교폭력 기록을 반영하는 방안도 경쟁률이 높은 상위권 대학 진학을 원하는 극히 일부를 제외한 대다수 학생에게 경각심을 주지는 못할 수 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학교폭력 가해학생 중 명문대나 의대 등을 지망하는 학생은 극히 일부”라며 “처벌을 강화해서 학교폭력을 줄이려면 받아들이는 학생들이 이를 의미 있게 받아들여야 하는데, 대입 반영 강화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학생들에게 이런 조치의 효과가 얼마나 클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반대로 부모가 경제적 여력이 있고 교육에 관심이 있는 가정에서는 학생부 기재와 대입 반영을 막기 위해 조치사항에 불복하는 경우가 늘어날 수 있다. 이은주 정의당 의원에 따르면 가해 학생의 행정심판·소송 등 불복절차 청구는 2020년 587건에서 2022년 1133건으로 늘었다. 이는 조치 확정시기를 대입 이후로 미루거나 학생부에 기록이 남는 것을 막기 위한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번 대책으로 불복절차를 밟는 가해 학생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학교폭력 전문가들과 현장교사들, 입시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지적이다.
교육부는 소송 증가를 막기 위해 내놓은 방안은 학폭 조치사항 기록을 학생부에서 삭제할 때 피해 학생의 동의 여부를 반드시 확인하는 것이다. 4호(사회봉사)~7호(학급교체) 조치는 보존기간이 끝나지 않아도 졸업 직전 전담기구 심의를 거쳐 삭제할 수 있는데 심의 시 ‘피해 학생 동의확인서’를 반드시 확인하도록 의무화하고, 가해 학생의 소송 진행 상황도 확인하도록 했다. 가해 학생이 학폭위 조치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하는 등 피해자에게 상처를 주면 기록 삭제 심의에도 불리해지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동의를 받기 위해 피해 학생에게 연락하는 것 자체가 2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아름 법무법인 LF 변호사는 “접촉을 원치 않는 피해 학생에게 동의서를 빌미로 연락하는 과정에서 2차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다”며 “사건이 발생한 시점으로부터 시간이 많이 지난 졸업 때 가해 학생이 피해 학생에게 연락할 방법이 없는 경우도 많아 기록 삭제 규정 자체가 실제로 작동하지 않게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화해 전문가 등의 입회하에 받은 동의서만 인정하는 쪽으로 매뉴얼을 고안할 것”이라고 했다.
이번 대책에는 가해·피해 학생 즉시분리 기간 연장 등 피해자 보호 대책도 담겼는데, 이로 인해 생길 수 있는 또 다른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있다. 한국교직원총연합회는 “현장에서는 가해·피해 학생을 즉시 가려내기 어려운 사안이 많다”고 지적했다. 정순신 변호사 아들 사건 등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로 지적됐던 가해 학생의 불복소송 기간 단축 등의 대책은 포함되지 않았다. 교육부 관계자는 “학폭 소송을 신속하게 진행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법무부와 협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남지원 기자 somnia@kyunghyang.com, 김나연 기자 nyc@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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