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신·연진이가 불지핀 '학폭대책'..우려 쏟아진 학교 현장

유효송 기자 2023. 4. 12. 17:1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서울 숭례문 일대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퇴진·김건희 여사 특검 촉구 촛불승리전환행동 집회에서 한 시민이 아들 학교 폭력 논란에 휩싸인 정순신 국가수사본부장을 비판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사진=뉴스1
정부가 학교폭력(학폭) 가해학생 제제를 대폭 강화하는 방향으로 선회한 것은 교육적 접근만으론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고 결론을 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처벌 만능주의를 둘러싼 교육 현장의 우려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가해조치 학생부 기록 삭제 요건 강화 등은 자칫 기본권 침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고, 인력부족과 같은 구조적인 문제를 바꾸지 않으면 학폭 대책의 실효성을 거두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가해학생 불이익에 방점..실효성·형평성은 과제
정부가 12일 내놓은 '학폭 근절 종합대책'은 앞서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됐던 정순신 변호사의 아들이 과거 고교 시절 학폭으로 강제전학 조치를 받았지만 서울대에 합격한 사건을 계기로 마련됐다. 학폭 가해자가 사회에서 큰 불이익을 받아야 한다는데 방점을 찍고 관련 기록 기간을 연장한 것도 이를 반영한 조치다.

교육부 관계자는 "가해 조치 기록을 기존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한 것은 4년 이상 N수생 비율이 급격히 줄어드는 부분을 감안한 것"이라며 "조치 기록 삭제도 가해 학부모의 신청을 받지 않고 학교가 명단을 관리해 심의대상을 심의하고, (가해자가 불복) 소송을 제기할 시에도 이를 엄격히 반영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변호사처럼 '끝장 소송'을 통해 가해 기록 삭제를 시도하는 사례를 막기 위해 불복 소송을 제기할 시 삭제 심의에서 불이익을 주겠다는 의도인 셈이다.

하지만 교육현장 안팎에선 소송 증가와 함께 기본 권리를 침해 소지가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아직 대학 입시에 적용될 방안이 대학교별로 확정되지 않았지만, 사실상 전학(8호) 이상 처분을 받으면 5년 동안 원하는 대학 진학이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에 불복절차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실제로 심판·소송을 통한 가해학생 불복사례는 증가하는 추세다. 교육부에 따르면 학교폭력 조치 결정 이후에도 가해학생의 행정심판 청구 및 행정소송 제기 건수는 2020년 480건에서 2021년 751건, 2022년 889건 등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송경원 정의당 청책의위원은 "가해 조치 기록 연장은 국민 감정을 고려해 적정선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4호(사회봉사)와 5호(특별교육 또는 심리치료), 6호(출석정지), 7호(학급교체) 처분을 받은 학생은 중간삭제를 하려면 사실상 불복절차를 밟지 않아야 심의에 유리하기 때문에 소송은 감소하는 효과는 있겠지만 자칫 가해학생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가해학생 제재 강화와 함께 피해학생 지원도 확대하겠단 방침이다. 피해학생을 가해학생과 분리하도록 하는 제도를 기존 3일에서 7일로 늘린다. 학교와 교육(지원)청에 '피해학생 전담지원관' 제도도 새롭게 도입해 학교폭력 사안발생 초기부터 피해학생이 필요로 하는 실질적인 심리상담·의료·법률서비스를 맞춤형으로 제공한다.
가해 엄벌도 좋지만 진정한 사과·반성이 먼저
교육계에선 사과와 반성, 회복 등 교육적 해결에 대한 언급이 부족하단 점을 아쉬운 대목으로 꼽았다. 정부가 가해와 피해 '학생'의 관계 회복보다는 형사사건 해결과 비슷한 엄벌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교사노동조합(전교조)은 이날 논평을 통해 "학교 문제 상황은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지만 관계나 정서적 결핍이 주된 원인"이라고 진단한 뒤 "처벌은 종종 면죄부로 작용하며 관계회복의 장애물로 작동한다"며 "과도한 처벌은 피해 사실의 인지와 반성, 사과, 피해자와의 관계 회복에 대한 노력을 자극하기보다 회피 전략을 부추길 뿐"이라고 꼬집었다.

학폭 담당 교사들의 업무 과중과 정부의 교사 인원 감축 등 학교 현장의 불비한 여건도 학폭 대책 실행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정부는 17개 시도교육청에 '학교폭력예방·지원센터(가칭)'를 단계적으로 설치해 사안처리와 피해회복·관계개선, 법률서비스 등을 통합 지원하겠다고 밝혔지만 인력 충원 없이는 새로운 업무 추가에 따른 피로도가 가중될 것이란게 교육계의 시각이다.

경기도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 일선 교사는 "학폭 담당 교사들은 업무 과중으로 1~2년마다 바뀌는 게 현실"이라며 "교육청에 새로운 센터를 만들어도 새로운 인력을 충원해주지 않고 기존 장학사들로 구성된다면 큰 실효성은 없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학폭 지도과정에서 분쟁이나 소송에 휘말릴 때 면책권을 부여하도록 관련 법령도 마련해 학교가 좀더 안심하고 교권을 통해 지도할 수 있도록 다각적인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이번 대책은 학폭 가해 제재를 두려워하는 학생이 그만큼 많아야 효과가 있지만 현실은 대학 경쟁률은 점점 줄어드는 추세이고 미달인 대학도 많아지는 만큼 그 실효성이 소수에게만 해당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학폭을 예방법으로 다루는 이유는 가·피해 학생들이 빠른 관계회복을 통해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기 때문"이라며 "피해 학생 상담과 회복에 더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효송 기자 valid.song@mt.co.kr

Copyright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