黨·政 중재안에, 의사 "긍정적"…간호사 "X수작" 상반된 반응
간호사의 권익을 높이겠다는 간호법안, 의사 면허 취소 기준을 강화하는 의료법 개정안(이하, 의사 면허 취소법)이 현재 본회의에 직회부된 후 내일(13일) 표결을 앞둔 가운데 각 보건의료 직역 간 갈등이 극에 치닫고 있다. 이에 정부와 국민의힘이 관련 직역 단체장을 만나 의견을 조율하기 위해 지난 11일 국회 본관에서 '의료현안 민(民)·당(黨)·정(政) 간담회'를 마련하고 중재안을 내놨다.
중재안에 따르면 간호법안에선 원안보다 간호사의 요구사항을 덜어내고, 의사 면허 취소법은 의료법 개정안 원안보다 의사 면허 취소 기준을 완화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에 이날 오전 10시부터 한 시간가량 진행한 민당정 간담회에서 김영경 대한간호협회장은 도중에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그 직후 MBN 등 취재진의 카메라에 잡힌 영상에 따르면 신경림 대한간호협회 간호법제정특위 위원장은 "X수작이야, 이 XX들"이라는 거친 표현과 함께 강한 불만을 표했다. 반면 이필수 대한의사협회장은 새로 제시한 의사 면허 취소법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해보겠다"고 답했다.
왜 이렇게 입장 차가 달랐을까. 이날 민·당·정 간담회에서 당·정이 내민 중재안의 배경과 직역 간 입장을 분석한다.
'2019 범죄 통계'에 따르면 전문직(의사·변호사·교수·종교인·언론인·예술인·기타) 피의자는 5만2893명이었고, 이 가운데 의사가 5135명(9.7%)으로 가장 많았다. 또 2015~2019년 성범죄를 저지른 의사는 613명으로 전문직 1위였다. 사기·횡령 등 지능범죄를 저지른 의사는 2019년 881명으로 종교인(1123명)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하지만 현행 의료법에 따르면 의사 면허 취소 사유는 정신질환자, 마약중독자, 금치산자, 면허 대여, 허위 진단서 작성, 진료비 부당 청구 등 일부 범죄에 한했다. 생명을 다루는 의사가 성폭행·살인 등 중범죄를 저질러도 의료행위를 못 하게 할 법적 근거가 없었다. 변호사·공인회계사·법무사 등 다른 전문 직종의 경우 범죄 구분 없이 '금고의 이상의 형'을 선고받는 경우(선고유예 포함) 면허를 취소하도록 한 것과 대조된다. '의사에게만 주어진 혜택'이란 말이 나돈 배경이다. 이에 발의된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에서는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모든 의사'의 면허를 취소하는 것 ▶해당 의사가 면허를 다시 받은 후 다시 금고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아 면허가 취소된 경우 10년간 재교부를 금지하자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이에 대해 의사 단체는 반발해왔다. 윤동섭 대한병원협회장은 "의료와 관계된 범죄뿐만 아니라 교통사고 등 모든 범죄에 대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으면 5년 이상 의료인 면허가 취소될 수 있는 의료법 개정안은 지나치고 부당하다"며 "의료인도 평범한 인간이고, 실수도 할 수 있는데 교통사고를 냈다고 의료인이 환자의 곁은 떠나야 한다는 게 합당한가"라고 반문했다.
장 임병협회장은 "간호법안 가운데 '진료의 보조'라는 표현 하에 간호사가 임상병리사를 비롯한 의료기사·보건의료정보관리사의 업권을 침탈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된다"며 "타 직역의 업권을 침탈할 수 없도록 간호법에 업무 범위를 명시해준다면 중재안을 수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날 장 임병협회장은 간담회 현장에서 김영경 간협회장에게 "간호법안 중 간호사의 업무 범위에 '의료기사 및 보건의료정보관리사의 업무 범위는 제외한다'는 내용의 문구를 한 줄 넣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김 간협회장은 "수용할 수 없다"고 대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장 임병협회장은 "의사의 지시 하에 어쩔 수 없이 타 직역의 일을 도맡는다고 토로하면서 정작 타 직역의 업무 범위를 침탈하지 않겠다는 문구는 간호법안에 넣지 못하겠다고 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했다.
김 간협회장은 11일 성명을 통해 "간호법에 대한 가짜뉴스를 바로 잡기 위해 민·당정 간담회에 참여했으나, 정작 참여단체는 간협을 제외하면 간호법에 반대하는 단체들만 초청됐고 간호법과 전혀 무관한 임상병리사협회까지 참석했다"며 임상병리사협회가 참석한 것에 대해 날을 세웠다.
이번 중재안에선 간호조무사의 학력 제한을 담은 간호법안을 수정해 간호조무사 학력 제한과 관련, 특성화고 간호관련학과 '이상'으로 수정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간무협은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11일 간무협은 협회지인 간호조무사신문을 통해 낸 입장문에서 "위헌성이 있는 간호조무사 학력 제한과 관련해 특성화고 간호관련학과 '이상'"으로 수정한 중재안이 제시된 것을 환영한다"며 "간호협회의 일방적인 입장만 수용한 간호법안의 문제점을 해소하고, 다양한 이해관계 당사자의 의견을 반영한 중재안을 제시한 여당과 정부에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곽지연 간무협회장은 "간호조무사 시험 응시 자격 학력 제한이라는 위헌적 요소가 그대로 존치하고 있는 간호법은 엉터리 법안"이라며 "간호인력 처우개선을 지향하면서도 간호사와 더불어 간호인력의 한 축인 간호조무사 시험 응시 자격 제한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간무협은 "당정 중재안이 제시됐음에도 불구하고, 더불어민주당이 기존의 간호법을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강행 처리하면 13개 보건복지의료연대 400만 회원과 함께 총파업 투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간호사 처우 개선 내용을 보강했고, 간호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간호정책심의위원회 규정을 신설하는 내용을 제시했다"며 "이를 통해 간호 지원에 대한 정부의 체계적·종합적인 계획을 수립할 것을 의무화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한 마디로 간호사의 처우는 개선하되 간호사의 업무 범위는 기존 의료법 안에서 해결하자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대한간호협회(이하, 간협)는 "수용 못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날 간담회장에서 김영경 간협회장과 신경림 간협 간호법제정특위 위원장은 "간호법은 대통령 공약사항이며 4차례의 법안심사 과정에서 여야 국회의원과 보건복지부까지 합의한 법안"이라며 "간호법이 국회법 제86조에 따라 합법적으로 의결된 법안"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이번 중재안 가운데 '지역사회'를 겨냥한 데는 병원이 아닌 곳, 즉 지역사회에서 간호사의 업무 권한이 커질 것에 대한 비(非) 간호사 직역들의 반발을 의식한 것으로 분석된다. 간호사들이 간호법 제정에 절실한 데는 3년 후 예고된 '초고령화 사회 진입'과 맞물린다. 고령의 만성질환 환자가 늘면서 '병원 밖' 즉, 지역사회에서 확대될 간호사의 역할을 법적으로 보호받기 위해서다. 현행 의료법은 의료기관(병원) 중심이어서 간호사가 지역사회에서 수행하는 역할을 간호행위로 포함하지 않고 있다.
의사를 비롯한 13개 직역의 단체인 보건복지의료연대는 "지역사회에서의 간호사 업무를 인정하는 순간 간호사가 의사의 지시 없이도 단독 개원할 수 있고, 임상병리사·간호조무사·응급구조사 등 타 직역의 업무 권한을 침범할 법적 빌미를 제공하는 셈"이라며 강력히 반발해왔다. 보건복지의료연대는 13일 간호법이 국회에서 통과하면 16일 서울 시청 앞에서 총궐기대회를 열고, 파업도 불사하겠다고 예고한 상황이다.
이번 중재안에 대해 김 간협회장은 "지금의 간호법 대안은 2022년 4월 27일 아침 10시 30분부터 저녁 7시 30분까지 논의해 여야뿐 아니라 보건복지부까지 합의해 마련된 간호법 조정안을 토대로 마련된 것"이라며 "합의된 내용과 절차를 간호법에 대한 가짜뉴스를 이유로 깨뜨리는 것은 공정과 상식에 어긋나는 것으로, 충분히 숙의되고 심의 의결된 간호법 대안에 대해 원안 그대로 통과해달라"고 호소했다.
한편 대한간호협회 소속 간호사를 비롯해 예비 간호사, 간호법제정촉구 범국민운동본부 등 2만여 명은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국회대로에서 '간호법 국회 통과 촉구'를 위한 집회를 열었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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