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능력 1·2위 건설사 손 잡게 한 ‘위기감’... “공사현장 로봇, 기술개발 시급”
건설 현장 환경 특수성...가성비 한계
제조업 비해 로봇 기술 뒤쳐져
메이저 건설사들, 시장 초기 생태계 조성
日 건설사들, 한뜻으로 뭉친데 ‘자극’
#충남 천안시 삼성물산 자동화 기술지원 사무소. 팔이 달린 로봇이 일정한 간격으로 왔다갔다 하며 무게 10kg에 달하는 상판을 격자무늬 형태로 바닥에 착착 붙였다. 바로 옆에는 상판 여러개를 실은 작은 로봇이 마치 ‘콤비’처럼 달라붙어 함께 움직였다. 이른바 바닥 설치 전문 ‘플로어 로봇’이다. 이 로봇은 충남 아산시 탕정면 삼성디스플레이 아산공장 뿐만 아니라 클린룸, 데이터센터의 전산실과 같이 바닥을 이중시스템으로 설치해야 하는 곳에 주로 쓰인다. 같은 공간엔 다른 일을 하는 작업자도 함께 근무한다.
#현대건설이 시공 중인 ‘고속국도 제400호선 김포~파주간 건설공사 제2공구’. 일명 두더지라 불리는 터널 굴착기계인 TBM 안으로 4족 보행 로봇 개, ‘스팟’이 겅중겅중 걸어 들어갔다. 스팟은 무인 안전 서비스 로봇이다. 다양한 센서와 통신 장비 등 인공지능 기반 소프트웨어를 탑재해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사각지대까지 모니터링 한다. 덕분에 사람이 직접 공사 현장에 가보지 않아도 사무실에서 영상과 데이터로 현장 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한 작업 공간에서 사람과 함께 일하거나 또는 가까운 거리에서 작업하는 ‘협동 로봇(코봇, collaborative robot)’이 건설현장에서 더욱 자주 활용될 전망이다. 건설업계에서 로봇 시장은 진입장벽이 높은데다 이제 막 출발점에 있는 단계라는 점에서 향후 개발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블루오션’으로 통한다. 경쟁자라고 할 수 있는 시공능력 평가 1·2위의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이 전략적으로 손을 잡게 된 이유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양측이 전날 체결한 ‘건설 로봇 관련 업무협약(MOU)’은 삼성물산 건설로보스틱스팀에서 현대건설 건설자동화연구팀에 먼저 제안한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물산 건설로보스틱스팀은 작년에 신설된 팀으로 건설 현장 안전 확보, 품질과 생산성 제고를 위한 건설 로봇 분야 연구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현대건설 건설자동화연구팀은 2020년 융합기술연구팀 때부터 관련 연구를 시작, 조직개편을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양측은 이번 MOU를 통해 지금까지 각사가 개발한 로봇을 상호 현장에 적용하는 등 ‘실증 프로젝트’를 공동 추진하기로 했다. 또 건설 로봇 분야 얼라이언스(Alliance·연합체)를 구축하고 연구∙개발과 사업화 네트워크를 확장하는 등 산업 간 시너지를 높여가기로 했다.
사실 건설 로봇 분야는 건설업계에서 ‘미개척 분야’로 통한다. 제조업 로봇의 경우, 일정한 위치에서 저장 및 입력된 업무만 진행하면 된다. 즉 대부분 자동화 돼 있다는 점에서 안전·성능 인증을 한 번만 받으면 된다.
반면 건설 로봇은 움직이면서 사람과 함께 ‘코웍(co-work) 형태’로 일해야 한다. 또 공사 현장마다 특성이 전부 달라 인증을 새로 받아야 하는 등 규격화하기가 쉽지 않다. 공사 현장 자체가 넓을 뿐만 아니라(대형화) 자재 등도 무겁다는 점에서 보다 전문화된 작업 기술을 요한다. 현장이 대부분 야외라는 점에서 강한 햇빛에 노출되는 등 작업 환경이 녹록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설사 수준 높은 기술을 개발했다 하더라도 사업화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개발사 입장에서는 건설사로부터 로봇 기술 개발 의뢰를 받았다 하더라도, 공사기간 내 마무리 할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다는 입장에서 소위 가성비가 떨어진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건설업계에서도 로봇 개발에 대한 니즈가 높지만 작업환경의 특수성 때문에 다른 업종에 비해 개발 속도가 늦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로봇 활용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건설분야는 숙련도에 많이 의존하는 노동집약적 산업이지만 낮은 임금수준과 열악한 근로환경 문제가 뒤따르는 대표적인 3D 업종이다. 고령화와 인구감소로 건설현장 생산 인력이 부족한데다,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공사가 증가하고 여기에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안전 문제’까지 대두되면서 건설 로봇에 대한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고, 현장 안전 관리 및 인명 사고를 줄이는데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사업 초기에 관련 생태계 기반을 닦고 확대하는 일이 중요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기술 개발 분야에서 자존심 싸움을 하고 있던 양사가 극적으로 손을 잡게 된 계기는 작년 일본의 시미즈 건설, 카지마 건설 등 16개 건설사들이 ‘로봇 개발’을 위해 협력하는 연합체를 구성했다는 소식이 들리면서다. 더 이상 기술 개발을 미뤘다가는 영영 때를 놓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반영됐다.
현대건설 역시 이러한 취지에 십분 공감해 이번 MOU를 맺게 됐다고 밝혔다. 건설 로봇 기술은 애초 진입장벽이 높고 기술 발전 정도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상태가 아닌, 그야말로 시작하는 단계라는 점에서 ‘메이저 건설사’들이 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판단했다고 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진입 장벽이 높기 때문에 메이저 건설사들이 나서야 한다”면서 “동시에 경제적 효과를 보고 협업을 추진한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업계에서 로봇 기술 개발에 속도가 붙어야 향후 코봇에 대한 정의나 기준, 업계 표준 등 제도적 뒷받침도 따라올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승열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지능형로봇연구부 책임연구원(엠에프알 대표)은 “그동안 로봇 개발의 수익성 문제 때문에 몇 년 전만 해도 건설사들은 기존의 방법을 고수했었다. 공사 기간이 정해져 있어 기간을 넘기면 건설사 입장에선 막대한 지체상금(LD)을 물어야 한다는 점에서 주저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다른 산업과 비교해 유독 로봇 기술 실용화가 안 된 분야가 바로 건설 분야다. 이번 MOU를 통해 향후 관련 기술 개발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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