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짚어봅시다] 예타면제 `票퓰리즘 야합`

500억에서 1000억으로 상향
불필요 지출 거를 장치사라져
총선용 선심성사업 쏟아질듯

12일 오전 국회에서 기획재정위원회 경제재정소위원회가 열리고 있는 모습<연합뉴스>

여야가 국가 재정 수백억원이 투입되는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면제 기준을 총 사업비 500억 원에서 1000억 원으로 대폭 완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1000억 원 미만 도로 항만 철도 등 SOC 사업은 기획재정부의 예타 심사를 받지 않아도 된다. 여야가 총선을 1년여 앞두고 불필요한 재정사업을 걸러내는 자물쇠를 풀어 버린 것이다. 총선 표를 겨냥한 선심성 지역 퍼주기 사업이 쏟아질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12일 경제재정소위를 열고 SOC·국가연구개발사업(R&D)의 예타 면제 금액 기준을 총사업비 500억원(국비 300억원 이상)에서 1000억원(국비 500억원 이상)으로 상향하는 내용의 국가재정법 일부 개정안을 의결했다. 지난 1999년 예타 제도가 도입된 이후 기준이 조정되는 것은 24년 만이다.

개정안은 이르면 오는 17일 기재위 전체회의를 거쳐 4월 임시국회 내 본회의에 상정될 전망이다.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으면 총사업비가 1000억원이 넘지 않는 SOC·R&D 사업은 예타없이 추진할 수 있다. 사업 가능대상은 도로, 철도, 도시철도, 항만, 공항, 댐, 상수도, 하천 및 관련 시설이다.

다만 새 예타기준은 SOC·R&D 사업에만 적용된다. 나머지 사업들에 대해서는 현행 기준(총사업비 500억원·국가재정지원 규모 300억원 이상)이 유지된다.

예타 기준이 대폭 완화되면서 지역구 의원들이 경제성이 없는 선심성 SOC사업을 견제 장치 없이 추진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지역구 의원들은 총선을 1년 앞두고 유권자들의 각종 민원을 외면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특히 낙후된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의원들은 일찍부터 지역 현안 사업에 대한 예타 기준 완화를 위해 기재부에 건의해 왔다. 호남의 한 지역구 의원은 "인구가 적거나 개발이 열악한 지역의 경우 경제성 분석(BC)에서 수도권에 비해 많이 불리하다"며 "사업자체를 착수하지 못하고 탈락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해서 사업 계획 단계부터 청탁성 민원이 쇄도한다"고 말했다. 결국 숙원 사업을 처리하기가 용이해진 셈이다.

선심성 사업은 이미 현실화하고 있다. 포퓰리즘 논란이 일고 있는 지방공항 특별법이 대표적인 사례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등은 대구·경북(TK) 신공항 특별법과 광주 군 공항 이전 특별법을 4월 임시국회에서 동시 처리하기로 잠정 합의했다. 이들 법안에는 예타를 면제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총선 표를 의식해 사실상 야합한 것이다. 또 예타 완화를 골자로 한 다른 법안들에도 서울·수도권 교통수요 증가 지역의 도로·철도시설 사업의 예타 면제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나라빚은 계속 늘고 있다. 2022회계연도 국가결산 결과 지난해 중앙정부 채무와 지방정부 순채무(중앙정부에 대한 채무는 제외)를 합친 국가채무는 1067조7000억원이다. 2018년에는 680조5000억원, 2019년 723조2000억원, 2020년 846조6000억원이었다.

예산 편성 때 국내총생산(GDP)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을 3.0%이내로 유지하는 재정준칙부터 먼저 도입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는 "문재인 정부 당시 예타 면제를 남발하면서 재정낭비가 심했다"면서 "이번에 총선을 앞두고 예타 면제 문턱을 낮추는 법안을 통과시켰는데 포퓰리즘적 성격까지 가미된다면 큰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역구 의원들이 마구잡이로 선심성 사업을 남발하지 않도록 반드시 견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세희기자 saehee0127@d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