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중 경제성과 내세우지만…마크롱 ‘내치’ ‘외치’ 모두 유럽에서 혹평 확산

박은하 기자 2023. 4. 12.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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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에 국빈방문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11일(현지시간) 암스테르담 왕궁에서 열린 만찬에 참석하고 있다./AFP연합뉴스

중국을 국빈방문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환대를 받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유럽에서는 고립되는 형국이다. 특히 대만 문제에서 유럽의 자율성을 강조한 마크롱 대통령의 발언은 유럽의 단결을 해친 외교참사라는 비판이 프랑스 내에서도 확산하고 있다.

11일(현지시간) 네덜란드를 국빈방문한 마크롱 대통령이 헤이그의 한 싱크탱크에서 ‘유럽의 주권’을 주제로 연설하려 할 때 객석에서는 야유가 터져 나왔다고 외신들이 보도했다. “프랑스에 민주주의가 있습니까” “프랑스는 기후변화 협약을 존중하고 있습니까” 같은 질문도 쏟아졌다. 프랑스 정부의 연금개혁 강행과 소극적인 기후정책에 대한 비판이었다.

장내에 미리 들어와 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시위대는 영어로 “폭력과 위선의 대통령”이라고 적힌 현수막을 펼쳤다. 시위대의 항의로 마크롱 대통령의 연설은 다소 지연됐다. 이 장면들은 온라인으로 고스란히 생중계됐다.

유럽 국가 정상들도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다.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대통령은 이날 미국 방문길에 오르면서 “일부 서방 지도자들은 러시아, 극동의 일부 세력과 협력하는 꿈을 꾼다”고 말했다. 프랑스24는 모라비에츠키 대통령의 발언이 마크롱 대통령을 겨냥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마크롱 대통령의 ‘내정’과 ‘외교정책’이 모두 해외에서 비판받고 있는 것이다.

앞서 마크롱 대통령은 중국 방문 기간에 프랑스 경제지 레제코, 미국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와 한 인터뷰에서 대만 문제와 관련해 “유럽은 미국의 추종자가 돼서는 안 되며, 유럽의 것이 아닌 위기에 연루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미·중 쌍방으로부터 독립한 전략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크롱 대통령과 함께 중국을 방문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위원장이 “대만 문제 현상 변경을 위한 무력 사용은 용납할 수 없다”고 말한 것과 배치된다. 폴리티코는 지난 9일 “프랑스 대통령궁(엘리제궁)의 인터뷰 허가 조건에 따라, 마크롱 대통령의 일부 ‘더 솔직한 표현들’은 삭제됐다”고 밝혔다.

마크롱 대통령의 발언과 엘리제궁의 기사 개입 사실이 공개되면서 미국과 유럽의 많은 정치인이 마크롱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미국의 전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대사였던 아이보 달더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마크롱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미국의 최대 장점인 전 세계 동맹과 파트너십을 훼손하려는 시진핑의 손에 놀아난 것”이라고 비판했다. WSJ는 사설을 통해 마크롱 대통령의 정제되지 않은 말 때문에 중국에 대한 미국과 일본의 억제력이 심한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마르코 루비오 미 공화당 연방 상원의원(플로리다주)은 트위터에서 마크롱 대통령의 입장이 유럽의 입장인지 알아봐야 한다면서 “(유럽이 대만 문제에 그런 입장을 취한다면) 우리는 중국이 제기하는 위협과 대만 문제에 집중하고 우크라이나와 유럽은 당신네들이 알아서 하라고 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중도 우파 성향인 노르베르트 뢰트겐 독일 기민당 의원도 “마크롱의 방중은 시진핑에겐 ‘홍보 쾌거’이지만, 유럽에겐 ‘외교적 참사’”라며 “마크롱은 미국과의 경계선을 강조하는 그의 주권에 관한 생각으로 인해, 유럽에서도 고립될 것”이라고 말했다. 런던정경대 유럽연구소의 분석가 무흐타바 라흐만은 “중국이 대만 해협에서 군사훈련을 하는 시기에 발언한 것은 잘못”이라며 “중국의 대만 침략에 대한 청신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만 언론도 ‘민주주의 가치 훼손’이라고 잇따라 유감을 표명했다.

EU는 마크롱 대통령의 발언이 EU의 공식 의견이 아니라고 해명해야 했다. 엘리제궁도 11일 양안관계에 대한 프랑스의 입장은 변화 없다고 해명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방중 경제성과를 내세우고 있지만 프랑스 내부 여론은 싸늘하다. <르몽드>는 마크롱 대통령이 2019년 나토 무용론을 강조하기 위해 했던 ‘나토 뇌사’ 발언이나, 우크라이나 문제 관련 다른 유럽 국가와의 협의 없이 러시아와 대화를 시도하려고 했던 일 등을 언급하며 “오해가 너무 자주 발생하면 외교정책에서 문제가 된다”고 비판했다. 프랑스24도 마크롱 대통령의 발언이 ‘드골주의’ 노선을 계승한다고 하지만 프랑스가 인도양과 태평양에 해외 영토를 두고 있다며 마크롱 대통령의 발언이 프랑스의 국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짚었다.

프랑스 내에서는 마크롱 대통령의 연이은 국빈방문이 연금개혁 문제로 인한 국내 정치의 비판 여론을 돌리기 위해서가 아니냐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13일 연금개혁 반대 12차 시위를 앞두고 정유소 파업 노동자들이 복귀하는 등 석 달 가까이 진행된 연금개혁 저항은 한풀 꺾이고 있다. 하지만 지난 대선과 같은 구도로 현재 선거를 치르면 마린 르펜 국민연합 대표가 승리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는 등 마크롱 대통령의 정치적 리더십은 크게 손상됐다는 것이 중론이다.

박은하 유럽 순회특파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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