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천재 장항준 감독이 왜 이걸 놓쳤을까('듣고 보니 그럴싸')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2021년 송은이와 찰떡 호흡을 과시하며 예능가의 블루칩으로 급부상한 장항준 감독은 그해 가을 영화 제작을 위해 방송을 일제히 그만두며, '한국 예능계가 인재를 잃었다'고 자평했다. 그리고 최근 영화 <리바운드> 개봉에 발맞춰 여러 편의 신규 예능에 신출귀몰하며 방송인으로 건재함을 과시함과 동시에 '예능 천재'의 복귀를 자축했다. JTBC 신규 예능 <듣고 보니 그럴싸>도 이런 장항준 감독의 최신 행보 중 하나다.
<듣고 보니 그럴싸>는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출신 제작진이 만든 실화 사건을 전달해주는 스토리텔링 예능으로, 국내 혹은 세계 최초로 시도되는 '보이는 라디오 극장'을 표방한다. DJ이자 배우 박하선과 배우 서현철, 대세 예능스타 이은지, 유튜브 스타들인 빠더너스의 문상훈, 쓰복만 등 플랫폼과 분야를 막론한 다양하고도 나름 화려한 출연진을 갖추고 있다.
장항준 감독은 라디오 드라마의 연출자이자 스튜디오 토크를 진두지휘하는 MC로서 제작 현장의 분위기를 이끌어 나간다. 토크쇼 전형의 스튜디오에서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씬 별로 배역을 맡은 출연자가 마이크 앞에 나가서 연기를 펼친다. 장 감독은 한없이 웃고 떠들다가 진지하게 연기지도를 하고, 음향효과를 담당하는 폴리 아티스트의 활약을 조명하는 등 라디오 드라마뿐 아니라 라디오 드라마 제작 현장의 현장감까지 액자식 구성처럼 담아낸다.
실화 사건을 취재하고 철저히 검토한 사료를 모아 쓴 대본을 토대로 라디오 드라마의 제작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라디오, 예능, 교양, 드라마의 작법이 섞였지만, 1화에서 장항준 감독과 박하선 배우의 언급처럼 안정적인 포맷도 아니고 레퍼런스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그래서 출연자들조차 어떻게 될지 궁금해 할 정도의 낯선 도전이기도 하다.
핵심은 이야기다. 스토리텔링 콘텐츠의 신선함은 몰입감을 높이는 화법 마련에 있다. 이 분야에서 아침의 햇살과도 같은 사례가 바로 SBS <꼬꼬무>다. 각기 다른 세 명의 화자가 각기 다른 세 명의 청자에게 1:1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우리가 익히 아는 사건사고들을 정서적으로 더욱 밀착되는 이야기로 만들어냈다. 라디오 드라마를 콘셉트로 잡은 <듣고 보니 그럴싸>가 내놓은 화법은 '연기'다. 이 프로그램이 이야기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방식은 연기자들의 출중한 연기력과 이를 뒷받침하는 감정이입 과정을 보여주는 데 있다.
이를 위한 장치가 바로 배역 별로 서로 다른, 불완전한 대본이다. 사전에 각기 다른 대본을 전달받은 출연진은 현장에서 촬영을 하면서 이야기의 퍼즐을 맞춰간다. 그 과정에서 배우들은 이야기에 점점 더 빠져들고, 리얼한 리액션은 스토리텔링의 밀도와 긴장감이 높아지고 몰입을 극대화한다. 오로지 청각으로 전달해야 하는 오디오 드라마의 특성상 호흡, 발성, 표현력 등이 두드러지는데, 박하선, 서현철 배우뿐 아니라 오나라, 김남희 등 게스트로 참여한 배우들의 호연과 존재감이 상당하다. 조금 더 과장하자면 연기로 이야기를 살린다고 해도 될 정도다.
그런데 이런 새로운 시도가 <꼬꼬무>의 1:1 화법과는 달리 대중에게 바로 와 닿진 못하고 있다. 우선 <꼬꼬무>의 화법은 다큐 제작진에겐 신선한 도전이었겠지만 한 명의 화자가 화면을 가득 채우고 이야기를 직접 전달하는 방식은 유튜브나 SNS, 인터넷 라이브 콘텐츠에 익숙한 대중들에게 너무나 익숙한 내러티브다. 그에 반해 <듣고 보니 그럴싸>는 오늘날 새롭게 커지고 있는 분야인 오디오북이나 오디오 드라마와 같은 오디오 콘텐츠를 바탕으로 삼고 있지만, 아직 누구나 향유하는 대중적인 콘텐츠는 아니다. 게다가 이를 시각화해서 보여주는 노력이 더해지다 보니 오디오 콘텐츠의 매력이나 특유의 질감 같은 본질 자체가 더더욱 가깝게 다가오질 않는다.
특히 첫 화에서는 씬 별 녹음 과정 사이사이 예능식의 왁자지껄한 스튜디오 토크, 뉴스 장면, 실제 사건 담당 형사 인터뷰, 중간중간 들어오는 연기지도 등등이 쉴틈없이 이어지며 때로는 녹음 장면보다 긴 호흡을 차지하다 보니 왜 오디오 콘텐츠를 모티브로 삼았는지, 또한 무엇을 이야기하는 콘텐츠인지 혼란스럽기도 했다. 다행이 2화부터 점점 회를 거듭할수록 드라마 전개를 중심에 놓고 많은 가지를 쳐냈다는 점은 고무적이긴 하지만 기존 스토리텔링 콘텐츠와 차별화되는 오디오 콘텐츠의 매력은 여전히 잘 나타나지 않고 있다.
실화 선정의 선정성이나, 연기력 격차, 스토리텔링 콘텐츠의 메시지 마련 등 남은 숙제가 많다만, 가장 선결되어야 할 이야기는 왜 오디오 콘텐츠인가라는 점이다. 최근 몇 년간 미국의 경우 팟캐스트, 오디오북 시장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고 우리나라도 많은 투자가 이뤄지며 시장 형성이 되는 과정에 있다. 이런 세계적인 트렌드라는 맥락 하에 당위를 만들든, 혹은 추억이 되어버린 라디오 드라마의 영광을 부활시키겠다는 포부를 내세우든 오디오 콘텐츠의 매력을 강조하고 우리가 즐겨야 하는 이유에 대한 설득과정이 빠져 있다.
그래서 <듣고 보니 그럴싸>는 세계 최초의 시도라고 도전을 앞세우지만 이야기를 들려주기에 앞서 '왜?'에 대한 질문을 채울 필요가 있다. 새로운 시도와 특이함만으로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그 특이함을 선택한 이유가 더욱 중요하다. 새로운 형식, 실험, 시도일수록 '왜'가 더욱 중요하다. 왜 지금 라디오 극장이라는 오디오 콘텐츠로 왜 우리가 지금 이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지 설득할 채비가 되어야 한다. 장항준 감독이 이 시점에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이유는 너무나 잘 알겠는데, 오디오 콘텐츠만이 갖는 특색, 라디오 드라마의 매력을 잘 느낄 수 없다는 점이 아쉽다. 출발선에서부터 다시금 스토리텔링 예능으로 오디오 콘텐츠(라디오 극장)가 갖는 특장점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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