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이 미래다] <86>한국과학기술원 출범…과학영재교육 신설 추진
1981년 1월 5일. 논란 속에 통합한 한국과학기술연구소와 한국과학원은 이날 한국과학기술원으로 새롭게 출범했다. 이튿날인 1월 6일 한국과학기술원은 부원장 인사를 단행했다. 연구담당 부원장에 김춘수 박사, 학사담당 부원장에 박송배 박사를 각각 임명했다. 두 명의 부원장 인사는 두 기관 통합에 따른 후속 조치였다. 연구담당 부원장은 기술연구소 업무, 학사담당 부원장은 과학원 업무를 각각 담당했다. 법정 단일기관으로 출범한 한국과학기술원이지만 초반 운영은 이원 체제였다.
물리적 결합으로 한 지붕 두 집 살림을 하다 보니 시작부터 이런저런 불협화음이 터져 나왔다. 일종의 성장통이었다. 원장실 위치를 놓고도 양측은 양보하지 않았다. 연구소 측은 원장실 이전, 과학원 측은 현 위치를 각각 주장했다. 이에 이주천 원장은 한동안 과학원 교수실에서 직무를 수행했다. 그 후 원장이 이전 여부를 결정하자는 여론에 무게가 실렸다. 이 원장은 구성원 간 화합과 상생을 위해 원장실을 과거 한국과학기술연구소 소장실로 옮겼다.
그러나 이 일은 시작에 불과했다. 한숨 돌리나 했더니 이번에는 교수와 연구원 직종 통일 문제가 논란이 됐다. 직종 통일 문제는 당시 가장 예민한 현안 가운데 하나였다. 변명섭 전 한국과학기술원 행정처장의 회고. “인적 융합과 학사, 연구업무 시너지를 높이기 위한 교수 및 연구원의 직종 통일 문제는 가장 민감한 현안이었다. 두 가지 입장이 서로 맞섰다. 직종을 교수로 통일하고 연구직을 겸임으로 하자는 의견과 당사자 뜻에 따라 교수나 연구직을 선택하고 겸임직도 당사자 뜻에 맡기자는 의견이 대립했다. 진통 끝에 교수는 본직, 연구직은 겸임직으로 결정났다.”
이 문제를 매듭짓자 기다렸다는 듯이 논문 평가방식을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 교수와 연구원 논문을 차등 평가해야 한다는 주장 때문이었다. 갑론을박하다가 이 문제는 인사위원회에서 평가 기준을 정하기로 함으로써 일단락지었다. 한국과학기술원은 통합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바람 잘 날이 드물었다. 1989년 두 기관이 분리할 때까지 크고 작은 분란은 고구마 줄기처럼 계속 불거졌다.
그해 2월 20일 오후 2시. 한국과학기술원은 노천극장에서 제7회 학위수여식을 거행했다. 이 자리에는 남덕우 국무총리, 이정오 과학기술처 장관, 산업계, 학계, 학부모 등이 참석했다. 남덕우 총리는 졸업식 치사를 통해 “우리 경제가 더욱 성장하려면 과학기술이 발전해야 한다”면서 “그런 점에서 인재 양성과 연구개발이란 두 기능을 통합한 한국과학기술원의 역할이 매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남 총리는 “졸업생들은 한국 과학기술 발전을 이끌 주역이므로 사명감을 발휘해서 국가 발전의 선봉이 돼 달라”고 당부했다. 이날 과학기술원은 석사 278명, 전문석사 84명, 박사 14명 등 모두 376명의 석사와 박사를 배출했다.
그해 2월 27일 오후. 한국과학기술원은 이날 이사회를 열고 이한빈 전 경제부총리를 이사장으로 선출했다. 감사에는 이찬주 전 한국과학기술연구소 부소장을 선임했다. 이한빈 이사장과 이정오 과학기술처 장관, 이주천 원장 등은 이날 한국과학기술원 현판식을 갖고 과학기술 강국을 향한 힘찬 새 출발을 다짐했다.
이듬해인 1982년 1월 9일. 한국과학기술원은 이날 오전 11시 임시 이사회를 열고 이주천 원장 후임에 재미 과학자 임관 박사를 제2대 원장으로 선임했다. 임 원장은 1955년 서울대 공대 기계공학과 재학 중 미국으로 건너가 1960년 노스웨스턴대 석사, 동 대학원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어 아이오와주립대 공대 교수와 부학장, 의료공학연구소장 등을 역임했다.
임 박사는 1월 12일 2대 원장에 취임했다. 그는 기자들과 만나 “한국 과학기술 발전을 주도할 과학 인재 양성에 목표를 두고 선진기술 강국을 뒷받침할 운영체제를 정비하고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임 원장은 “과학기술의 획기적 발전 없이는 고도성장을 이룩할 수 없다”면서 “세계 속의 과학기술 한국을 건설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해 11월 정부는 과학기술 인력 양성을 위한 특수이공계 대학 설립을 추진했다. 한국 과학기술 인재의 산실인 한국과학기술원과는 다른 한국산업기술대학 설립이었다. 노동부가 주도한 기술대학설립 추진 경위는 다음과 같다.
그해 11월 29일. 전두환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김준성 경제부총리와 정한주 노동부 장관에게 “고도산업사회의 필수인 공업기능 인력 양성을 위한 특수기능대학 설립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과학기술 인재 양성에 관심이 남다른 전 대통령은 이날 △우수 공고와 우수 기술고 졸업생을 확보해서 이들을 고도산업사회 필수 요원으로 양성하고 △졸업생에게는 취업 보장과 학위 수여, 병역특혜 등도 주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병역특혜는 한국과학기술원을 제외한 다른 교육기관 학생들에게 적용한 적이 없는 파격적인 조치였다.
노동부는 대통령 지시에 따라 이듬해인 1983년 2월 초 (가칭)한국산업기술대학설립 계획안을 마련했다. 노동부는 이 계획안에 대해 병무청장 및 과학기술처·문교부 장관 협조 서명과 경제부총리, 국무총리 결재를 거쳐 그해 3월 10일 전두환 대통령의 최종 재가를 받았다.
1985년 3월 1일 개교 예정인 한국산업기술대학설립안의 주요 내용은 획기적이었다. △기본목표=2000년대 고도산업사회 건설을 위한 최고 전문 기능인 양성기관으로 한국산업기술대학을 설립하며, 최우수 훈련생을 선발해 산업의 중추적 기간 요원인 직종 단위의 다능공을 양성한다. △교육과목=기계금속과(정밀기계, 기계정비, 열처리), 전기과(컴퓨터응용, 컴퓨터정비, 산업전자), 산업공과(산업디자인)를 둔다. 모집인원은 기계금속과 240명, 전기과 210명, 산업공과 90명 등 총 540명. △입학자격=20세 미만(단 군필자는 27세 미만)의 공고 졸업자, 기술학교 졸업자로서 2급 기능사 자격 소지자. 인문고 졸업자는 졸업 후 1년 이상 직업훈련 이수자로서 2급 기능사 자격 소지자. △선발=학교장이나 훈련원장 추천을 받아야 하며, 자질과 적성 검사 후 필기시험을 거쳐 선발. △대우= 졸업생은 학사 학위를 수여하며 기능사 1급, 지사 1급, 기능장 응시 자격을 준다. 전원 기술사 생활을 하며, 수업료는 면제하고, 훈련비는 본인 부담. 우수자에게 장학금을 지급한다. 현장훈련을 1년간 하며, 이 기간에 산업체에서 수당을 받는다. 병역특례 조치로 재학 중 입영을 연기할 수 있고, 졸업 후 방위산업체에 근무하면 실역복무필 처분을 한다. 우수생은 해외 유학도 보낸다. △교육 기간= 기초교육 1년, 전공교육 1년, 응용교육 1년, 현장교육 1년 등 4년이다. △교과 편성=이론 교육이 전체의 40%, 실기 교육은 69%다.(기존 공대는 실기 30%, 이론 70%) △교수 확보=정규 교수를 80% 채용하고, 20%는 대덕연구단지 연구소와 연구원을 활용한다. 교수에게 아파트를 제공하고, 해외연수 기회를 준다. △대학 조직=교육법에 따른 특수대학으로 하며, 학장과 교학처·사무국 등을 둔다. △시설=충남 대덕군 유성읍 구성리 일대 대지 10만평 및 건평 1만6600평에 실습실·교실, 강당·후생시설, 기숙사, 교수 아파트, 부속시설을 신축한다. 교육기자재는 최신 장비를 도입하며, 장비선정 심사위원회를 구성·운영한다. 이런 파격적인 정부안에 대해 과학기술계와 전국 공고생들의 관심이 집중했다.
이런 가운데 과학기술처와 한국과학기술원은 과학영재 교육 과정 신설을 추진했다. 그해 2월 11일. 이정오 과학기술처 장관은 이날 청와대에서 전두환 대통령에게 새해 업무계획을 보고했다. 이 장관은 이 자리에서 “고급기술 인력 집중 양성을 위해 한국과학기술원을 전문양성기관으로 정해서 전자·통신·기계·재료·시스템 분야 첨단 과학기술의 조기 개발을 위해 과학영재 교육 과정을 신설할 방침”이라고 보고했다.
그해 3월 10일. 임관 한국과학기술원장도 김상협 국무총리에게 새해 주요 업무계획을 보고했다. 임 원장은 “1984년부터 과기원에 고등학교와 대학 석·박사과정을 8년에 끝내는 과학영재 교육과정을 설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임 원장은 “우수 두뇌를 조기 발굴해서 교육하면 20대 박사를 배출할 수 있다”면서 “올해 안에 필요한 준비를 끝내겠다”고 밝혔다. 임 원장은 “전자(반도체)·전산 등 첨단산업 기술 분야 정예 과학기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과학영재 교육 과정을 설치해야 우수과학 두뇌 양성이 조기에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 당시 정부의 과학기술 인재 양성 의지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고 확고했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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