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00통 ‘도움의 벨소리’···생명 지킴이 활동 자부심”
주 3일 ‘고민·갈등·위기·자살 문제’ 상담 등 맏언니 역할 ‘톡톡’
정진숙씨(75)와 장영희씨(69)는 전북생명의전화 상담사다. 각각 28년과 15년 동안 생명의전화 상담사로 자원봉사를 하다가 지난해 은퇴했다.
하지만 이들은 은퇴 1년도 안돼 또다시 전화기 앞에 앉았다. 전주서원시니어클럽 노인 일자리 사업의 도움을 받아 ‘생명의전화 사업단’ 상담사로 다시 활동한다. 덕분에 처음으로 급여도 받는다.
12일 오전 전북생명의전화 사무실에서 만난 정씨와 장씨는 언제 울릴지 모를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의 책상에는 전화기와 상담내용 등을 기록하는 컴퓨터가 놓여 있었다. 이들은 하루 평균 20여통의 전화를 받는다.
정씨는 1994년부터 자원봉사로 ‘생명의 전화’ 상담사로 일했다. “29년 전 교회에서 봉사활동을 하다가 전화 상담사 양성 교육 홍보를 보고 참여를 하게 됐다”고 한다.
장씨 역시 15년 동안 상담사를 했다. 그는 “공감 능력을 활용해 전화를 건 사람이 무슨 말을 하든 일단 다 들어주고 믿어준다”면서 “당사자가 미처 못 본 해결 방안을 제안하거나 힘을 낼 수 있도록 지지하고 격려해준다”고 말했다.
이들은 다시 전화기 앞에 앉은 이유에 대해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일을 놓을 수 없었다”고 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비난만 받던 사람들은 응원을 받으면 힘과 용기를 얻는다고 한다.
전북생명의전화 상담사들은 24시간 365일 고민을 들어주고 삶의 고단함과 아픔을 나눈다. 60세 이상으로 이루어진 전주서원시니어클럽 상담사들은 오전 7시30분부터 오후 10시까지 근무하며 후배 상담사들의 맏언니 역할을 톡톡히 한다.
시시때때로 걸려 오는 난처한 전화 등으로 후배 상담사들이 고통을 호소할 때마다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대처 방법 등을 알려주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정씨는 “경험이 있는 상담사들은 난처한 전화에도 대처 능력이 있지만 경험이 얼마 안된 상담사들은 많이 힘들어한다”면서 장난 전화를 삼갈 것을 부탁하기도 했다.
장씨는 “상담이 끝나고 전화를 끊기 전 ‘고맙습니다’ ‘노력해보겠습니다’라고 인사하는 분들이 있다”라며 “극단적인 생각을 했던 어떤 분은 상담이 끝나고 ‘1년만 더 살아보겠습니다’라고 말할 때 힘이 나고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한주 전북생명의전화 이사장은 “상담사들 모두 삶의 마지막 순간에서 도움의 손을 뻗는 이들의 마음을 헤아리기 위해 항상 최선을 다해 경청하며 노력하고 있다”라며 ““도민들께서는 힘들고 괴로울 때, 누군가와의 대화가 필요할 때 언제든 전화를 걸어달라”고 말했다.
1987년부터 2023년 4월까지 전북생명의전화에 걸려 온 상담 전화는 20만건 정도다. 올해는 최근까지 1500여건 상담을 진행했다.
정씨는“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시작한 일인데 상담을 하면서 되레 많은 것들을 선물로 받은 것 같아 감사한 마음이 든다”며 벨이 울리는 수화기를 얼른 들었다.
김창효 선임기자 ch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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