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컬트와인의 '아주 특별한' 식구들 [와인 이야기]
'스크리밍 이글(Screaming Eagle)'이란 이름의 와인을 들어보셨나요.
미국을 대표하는 '컬트 와인'인데 한 해 생산량이 5000~9000병 정도로 제한적이고 가격이 병당 1000만원이 넘어 구하기도 쉽지 않고 맛보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스크리밍 이글의 소유주는 스탠 크롱키라는 부동산·스포츠 재벌입니다. 월마트의 상속녀와 결혼한 그는 영국 프리미어리그 축구 구단 아스널과 프로미식축구(NFL) 로스앤젤레스 램스, 프로농구(NBA) 덴버 너기츠, 프로하키(NHL) 콜로라도 애벌랜치 등의 지주회사인 '크롱키 스포츠 앤드 엔터테인먼트'의 소유주입니다. 스크리밍 이글 와이너리의 원래 창업자는 진 필립스라는 부동산 중개업자로 1986년 캘리포니아주 내파밸리 오크빌에 57에이커의 땅을 매입하며 와인 사업을 시작합니다. 1995년 출시된 1992빈티지가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로부터 99점을 받으면서 미국 와인업계의 슈퍼스타로 떠오르는데요. 크롱키가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가격'을 필립스에게 제시하며 2006년 스크리밍 이글 매수에 성공합니다.
당시 크롱키는 캘리포니아주 샌타바버라 카운티 밸러드 캐니언에서도 586에이커의 포도밭을 매입합니다. 이곳에서 생산된 와인이 호나타(Jonata)라는 와인입니다.
와인 영화 '사이드웨이'로 유명해진 곳이 샌타바버라인데요. 서노마 카운티가 위치한 북캘리포니아보다는 로스앤젤레스가 위치한 남캘리포니아에 속합니다. 저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16년을 살았기 때문에 지역적으로 샌타바버라가 친숙하지만 와인 산지로서 존재감은 그렇게 크지 않았습니다.
그 샌타바버라 와인의 잠재력을 깨운 것이 스크리밍 이글의 명성과 호나타 및 더 힐트(The Hilt)의 와인 메이커 맷 디즈입니다. 얼마 전 맷 디즈 와인 메이커가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호나타와 더 힐트는 스크리밍 이글의 자매와인으로 불립니다. 소유주가 같기 때문입니다. 호나타는 스크리밍 이글 가격의 수십 분의 1 수준이지만 여전히 프랑스 보르도 그랑크뤼 수준의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을 정도로 와인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더 힐트는 호나타보다도 좀 더 대중적인 가격대입니다.
'호나타'는 원주민 고어로 키 큰 오크나무를 뜻하는데 캘리포니아의 다른 많은 지명처럼 스페인어의 영향을 받아 'Jonata'를 조나타라고 발음하지 않고 호나타라고 부릅니다. 호나타에선 84에이커의 엄선된 포도밭에서 카베르네 소비뇽, 카베르네 프랑, 시라, 산조베세 등 서로 다른 품종으로 만든 9개 종류의 와인이 2004년부터 생산되기 시작했습니다.
맷 디즈 와인 메이커는 카베르네 프랑(Cabernet Franc)을 주로 만든 엘 알마(El Alma)와 시라를 주로 만든 토도스(Todos) 2018년 빈티지를 소개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는 날씨가 좋아 프랑스 부르고뉴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빈티지별로 와인 맛의 차이가 덜한 편합니다. '호나타 엘 알마 2018(Jonata El Alma 2018)'은 최근에 마셔본 와인 중 가장 기억에 남고 맛있는 와인이었습니다. 카베르네 프랑 62%,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21%, 메를로(Merlot) 17%를 섞어 만들었습니다. 2018년이면 아직까지는 영빈티지에 속할 수 있는데 부드러움이 20년 정도 숙성된 맛이 납니다. 어떻게 숙성 시간을 단축시켰을지 궁금합니다.
저의 최애 와인인 샤토 몽로즈 2010에 버금갈 정도로 밸런스도 잘 갖춰져 있고 피니시도 뛰어납니다. 거기에 톡 튀는 민트향은 호나타 와인에 캐릭터를 부여합니다. 제가 요즘 카베르네 프랑이란 포도품종에 대한 관심이 많아져서 '편견'이 작용했을 수도 있습니다.
같은 호나타 포도밭의 와인이라도 '시라'라는 포도품종으로 만든 토도스는 전혀 다른 와인입니다. 이는 와인 브랜드의 차이라기보다는 저의 개인적인 포도 품종에 대한 '호불호'일 뿐입니다. 저는 시라의 '달달함'을 선호하는 편이 아닙니다. 아직은 '시라'의 세계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실 호나타가 위치한 밸러드 캐니언은 시라를 중심으로 한 론(Rhone) 품종의 명산지로 유명합니다.
호나타가 성공하면서 테루아(땅)에 대한 시장의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맷 디즈 와인 메이커는 피노 누아와 샤르도네 산지로 주목받고 있는 샌타리타힐스에서 2008년부터 더 힐트 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합니다.
더 힐트의 포도밭은 세계에서 가장 서늘한 피노 누아와 샤르도네 산지 중 하나라고 합니다. 해안에서 불과 13마일(약 21㎞) 떨어진 '랜초 살시푸에데스(Rancho Salsipuedes)'라는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는 스페인어로 '벗어날 수 있으면 벗어나라(Get out of here if you can)'라는 의미일 만큼 가파른 경사, 척박한 토양, 매서운 바람, 차가운 해양성 기후, 적은 포도 소출량 등을 특징으로 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더 힐트 와인에선 단일 포도밭에서 만든 와인을 뜻하는 '싱글빈야드' 와인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 힐트의 싱글빈야드 와인으로 '벤트록' 샤르도네(화이트)와 '라디안' 피노 누아(레드)가 소개됐습니다. 싱글빈야드 와인은 여러 포도밭의 포도를 섞어 만든 에스테이트 레벨의 와인보다 좀 더 복합미가 우수합니다. 가격도 더 비쌉니다. 맷 디즈 와인 메이커는 "싱글빈야드 와인이 되려면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해서도 그 포도밭의 특징을 알 수 있도록 빈티지와 관계없이 해마다 같은 맛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라디안 포도밭은 춥고 가장 많이 바람이 부는 극한 환경이라 포도가 생존을 위해 땅속 깊이 뿌리를 박고 영양분을 흡수해 와인 맛이 풍부하고 파워가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이어 "샤르도네는 우아하고 활기차게, 피노 누아는 너무 달지 않게, 흙맛이 나게 만들려고 노력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에스테이트 레벨 피노 누아가 피노 누아치곤 상당히 달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라디안' 피노 누아가 보다 전형적인 피노 누아 맛에 가깝다고 평가했고요. 그 대신 라디안 역시 2019년 영빈티지라 아직 산도가 높았습니다. '숙성 잠재력'을 얘기하긴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저는 숙성된 피노 누아를 즐기는 편이라 숙성되면 어떤 맛을 가질지가 너무 궁금했습니다.
맷 디즈 와인 메이커는 "일반 피노 누아 껍질이 얇지만 더 힐트의 피노 누아는 껍질이 두껍다. 바람으로부터 포도의 발육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타닌이 더 많이 추출돼 구조감이 좋다"고 설명했습니다.
화이트 와인도 에스테이트 레벨 샤르도네는 산도가 높았고 싱글빈야드인 벤트록 샤르도네는 상대적으로 '굴'맛과 같은 복합미가 우수하고 좀 더 깊은 맛이 납니다.
호나타와 더 힐트가 위치한 샌타바버라 카운티는 LA국제공항(LAX)에서 차를 타고 북쪽으로 2시간 반 정도 거리에 있어 하루에 충분히 다녀올 수 있습니다. 다만 캘리포니아에선 '음주운전'으로 걸릴 경우 패가망신 수준의 높은 벌금이 나올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합니다.
[김기정 컨슈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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