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비상소화장치’ 강릉 산불 진화에도 한 몫··소방당국 확대 설치 예정
“산불이 번지고 있는 마을 곳곳에 비상소화장치가 설치돼 있어 신속하게 소방 펌프차에 물을 보충할 수 있었어요. 이로 인해 진화작업도 빨라졌습니다.”
13개 펜션이 몰려 있는 강원 강릉시 저동골길 마을 진입로 옆에는 비상소화장치가 설치돼 있었다. 주민들은 산불이 난 지난 11일 이 비상소화장치에 두루마리 호스(호스릴)를 연결해 펜션 주변 곳곳에 물을 뿌리며 불을 끄기 위해 애썼다.
또 인근 안현로 일대의 펜션과 주택 주변 야산에서 번지던 산불을 진화하던 소방펌프차가 이곳으로 황급히 달려와 비상소화장치에 있던 소화전에 호스를 연결해 물을 담기 시작했다. 재빠르게 3t 가량의 물을 채운 소방펌프차는 600여m 떨어진 산불 현장으로 이동해 물을 뿜어내며 강풍을 타고 급속히 확산하던 불길을 잡았다.
땀에 흠뻑 젖은 얼굴을 닦으며 숨을 고르고 있던 한 소방관은 “경포동, 안현동, 저동 등 마을 곳곳에 비상소화장치가 설치돼 있어 신속하게 펌프차에 물을 채워 진화작업에 나설 수 있었다”며 “초속 30m 안팎의 강풍이 불고 있어서 펌프차의 물 공급이 늦어졌을 경우 산불 피해는 더욱 커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강릉지역 100개 마을에 설치한 비상소화장치가 이번 산불 당시 피해를 줄이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이다.
강원도소방본부 화재대응조사과 채희창 소방경(53)은 “이번 강릉 산불 때도 마을 주민이나 의용소방대원들이 비상소화장치를 이용해 초동진화에 나서면서 조기에 진화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며 “올해 산림과 인접해 있는 강릉지역 마을 154곳에 비상소화장치를 추가로 설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마을 비상소화장치’의 효용성은 과거 대형 산불 발생 당시 이미 입증된 바 있다. 지난해 3월 4일 경북 울진에서 강풍을 타고 넘어온 산불이 삼척 원덕읍 월천리, 산양리 등으로 확산되자 주민들은 마을에 설치돼 있던 비상소화장치를 이용해 초동진화에 나서 피해를 최소화했다. 지난해 3월 5일 강릉시 옥계면에서 발생한 산불이 동해시 승지골로 확산할 때도 이 장치가 큰 역할을 했다.
산림 1260㏊를 잿더미로 만들고, 584가구 1366명의 이재민이 발생하는 등 막대한 피해를 낸 2019년 4월 고성·속초 대형산불 때도 비상소화장치를 이용해 자체적으로 마을을 지켜낸 곳이 있었다. 고성 토성면 용촌리 ‘홍와솔 마을’ 주민들은 비상소화장치를 이용해 5시간 가량 진화작업을 벌인 끝에 불길을 모두 잡았다. 이 마을의 주택 4채가 전소 또는 반파됐으나 나머지 19채는 피해를 보지 않았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진 이후 산림 인접 마을에 비상소화장치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했다.
소화장치함과 두루마리 호스(호스릴), 관창, 옥외 소화전 등으로 구성된 ‘비상소화장치’ 1개를 설치하는 데 필요한 비용은 1500만원 가량이다. 행정안전부가 2019년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산불피해 위험지수가 높아 비상소화장치를 설치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확인된 강원 동해안 지역의 마을은 2880개에 달했다.
강원도소방본부는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강릉, 동해, 삼척, 속초, 고성, 양양 등 6개 시·군의 산림 인접 마을 1000곳에 비상소화장치를 설치한 데 이어 오는 6월까지 250개를 추가로 설치하기로 했다. 나머지 1600여개 마을은 2024년까지 설치할 계획이다.
강원도소방본부 관계자는 “산불이 대형화하는 추세를 보이는 점을 고려해 올해부터는 동해안 지역 뿐 아니라 영서 지역 산간 마을 등에도 비상소화장치를 설치하는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라며 “주민들을 대상으로 비상소화장치 이용과 관련된 교육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11일 오전 8시 22분쯤 강릉시 난곡동의 한 야산에서 발생해 경포·사근진 해변 인근으로 확산하면서 주택·펜션·호텔 등 125개 시설과 산림 379㏊를 태운 뒤 8시간 만에 진화됐다. 이번 산불로 인해 1명이 숨지고, 16명의 부상자도 발생했다.
최승현 기자 cshdmz@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경포대 상인들 “성수기 숨통 트이나 했는데”…잿더미 펜션단지, 할 말 잃어
- [단독] 강혜경 “명태균, 허경영 지지율 올려 이재명 공격 계획”
- “아들이 이제 비자 받아 잘 살아보려 했는데 하루아침에 죽었다”
- 최현욱, 키덜트 소품 자랑하다 ‘전라노출’···빛삭했으나 확산
- 수능문제 속 링크 들어가니 “김건희·윤석열 국정농단 규탄” 메시지가?
- 윤 대통령 ‘외교용 골프’ 해명에 김병주 “8월 이후 7번 갔다”···경호처 “언론 보고 알아
- 이준석 “대통령이 특정 시장 공천해달라, 서울 어떤 구청장 경쟁력 없다 말해”
- “집주인인데 문 좀···” 원룸 침입해 성폭행 시도한 20대 구속
- 뉴진스 “민희진 미복귀 시 전속계약 해지”…어도어 “내용증명 수령, 지혜롭게 해결 최선”
- 이재명 “희생제물 된 아내···미안하다,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