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산불] "화상 입은 줄도 몰라"…불길 뛰어든 소방대원들 '화마 사투'

강태현 2023. 4. 12.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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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속 30m '태풍급 강풍'에 기진맥진…치솟는 화염 뚫고 진화 작업 벌여
강릉 산불 화재 불길 진압하는 소방대원 (서울=연합뉴스) 11일 오전 강원 강릉시 난곡동의 한 야산에서 난 불이 확산해 주택 화재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사진은 화재 진압하는 소방대원. 2023.4.11 [소방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강릉=연합뉴스) 강태현 기자 = "산불 현장이 워낙 긴박해서 가슴에 화상을 입은 줄도 몰랐어요. 거센 바람 때문에 불티가 이리저리 흩날리다가 방화복 안으로 들어갔더라고요. 그래도 이 정도는 피해 본 분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봄기운 가득했던 강원 강릉시 난곡동 땅에 내려앉은 불티가 강한 바람을 타고 순식간에 민가 등으로 옮겨붙으면서 푸른 하늘이 순식간에 잿빛으로 변했다.

혼비백산한 주민들은 몸만 겨우 빠져나와 삶의 터전이 잿더미가 되는 광경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아수라장 속에서 화마(火魔)와의 사투에 힘을 보탠 건 위험을 무릅쓰고 불길 속으로 뛰어든 소방대원들이었다.

손 쓸 틈 없이 번지는 불길에 지원 요청을 받고 강릉으로 향한 삼척소방서 봉황119안전센터 소속 김호영(31) 소방교는 경포 현대아파트 인근으로 향하던 중 시뻘건 화염을 내뿜고 있던 펜션 하나를 발견했다.

김 소방교는 펜션 1층 나무 데크에서 불씨가 번지고 있는 모습을 목격하고는 곧장 내부에 사람이 있는지 살피기 위해 펜션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다행히 안에는 사람이 없었지만, 그대로 뒀다가는 불티가 인근 건물에까지 옮겨붙을 게 뻔했다.

불티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진화에 몰두하던 김 소방교는 가슴 쪽에서 '따끔'한 통증을 느꼈다.

소방차 문도 제대로 여닫을 수 없을 만큼 강한 바람이 여민 방호복까지 풀어 헤치는 바람에 그 틈새로 뜨거운 재가 그의 가슴 위에 내려앉아 생긴 통증이었다.

김 소방교는 이 사고로 가슴 부위에 동전 크기만 한 2도 화상을 입었다.

그는 당분간 병원에서 지속적인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 놓였음에도 "이 정도는 피해 본 분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강릉서 산불…대피하는 주민들 (강릉=연합뉴스) 유형재 기자 = 11일 오전 강원 강릉시 난곡동의 한 야산에서 난 불이 주택으로 번진 가운데 주민들이 긴급하게 대피하고 있다. 2023.4.11 yoo21@yna.co.kr

비슷한 시각. 김 소방교가 미처 도착하지 못한 현대아파트 인근에서는 또 다른 소방대원들이 아파트 턱밑까지 번진 불길을 막고자 사력을 다하고 있었다.

강원도소방본부 환동해특수대응단 기동 1대 소속 이상호(57) 소방령은 지난 11일 오전 여유로운 휴무일을 즐기던 중 동료들에게 산불 소식을 전해 들었다.

30년 경력의 '베테랑 소방관'인 그는 바람의 세기 등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지난 2019년 4월 고성, 속초를 불바다로 만든 산불처럼 대형 재난 상황이 펼쳐질지도 모른다는 직감이 들었다.

달콤한 휴식 시간을 즐길 틈은 없었다. 그에겐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 강릉을 산불로부터 지키고 강릉 시민들을 한 사람이라도 더 피신시켜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이에 그는 최소한의 장비만을 챙겨 자차로 자택에서 7∼8분가량 떨어진 경포대로 향했다.

강원도소방학교, 충청소방학교, 경북소방학교에서 산불 강사로도 활동할 만큼 경륜이 풍부한 이 소방령은 이동하는 과정에서 급한 대로 산불 확산 패턴, 예상 피해 지역을 휴대전화 지도 앱에 표시해 동료들에게 상황을 전했다.

김 소방장은 먼저 도착해 진화 작업 중이던 후임 안태영(35) 소방장과 합류해 시민들의 소중한 보금자리가 모여 있는 아파트 단지로 불길이 번지지 않도록 온 힘을 다했다.

강릉 산불 화재 불길 진압하는 소방대원 (서울=연합뉴스) 11일 오전 강원 강릉시 난곡동의 한 야산에서 난 불이 확산해 주택 화재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사진은 화재 진압하는 소방대원. 2023.4.11 [소방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바람이 하도 강하게 불어서 독수리가 건물에 부딪혀 아래로 떨어질 정도였어요. 강풍에 진화 작업도 벅차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어요. 제대로 된 안전 장비도 없이 솟구치는 화염 속에서 불길을 잡으려고 하다 보니 그야말로 그로기 상태였죠."

순간풍속 초속 30m '태풍급' 강풍에 두 대원은 두 다리가 떨려오고 온몸이 휘청거리기 일쑤였지만, 호스를 두고 자리를 떠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고글 하나 없이 건물 위로 날아다니는 불티를 잡던 과정에서 눈 부위에 불티가 튄 안 소방장이 상처를 입기도 했다.

등짐 펌프를 등에 메고 묵묵히 불길과 맞선 끝에 아파트로 번질 뻔한 화재는 다행히 막을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이 소방령에게 비상소화전함 사용법 등을 배운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과 강릉시청 직원들도 힘을 보탰다.

이일 도 소방본부장은 "다급한 현장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책임을 다해 수고한 대원들이 대견스럽다"며 "피해를 본 지역 주민분들이 마음의 상처 등을 극복하고 일어나 이른 시일 안에 피해를 복구해 일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소방에서도 적극적으로 힘을 보태겠다"고 말했다.

산불 연기 뒤덮인 강릉 (강릉=연합뉴스) 양지웅 기자 = 11일 대형 산불이 발생한 강원 강릉시 산림 일원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2023.4.11 yangdoo@yna.co.kr

taetae@yna.co.kr

[그래픽] 강릉 산불 현황(종합2보) (서울=연합뉴스) 이재윤 기자 = 11일 오전 강원 강릉시 난곡동에서 발생한 산불은 바람을 타고 경포까지 번져 많은 건물에 손해를 끼쳤다. 이날 오전 8시 30분께 시작한 강릉산불은 같은 날 오후 3시 30분까지 진화율을 88%까지 끌어올리고서 8시간 사투 끝인 오후 4시 30분께 주불 진화에 성공했다. yoon2@yna.co.kr 트위터 @yonhap_graphics 페이스북 tuney.kr/LeY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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