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금속활자본 ‘직지’, 언제 한국에서 볼 수있을까
문화재청, 직지 관련 전시·학술 업무협약 체결
“국제법상 환수·반환 대상 아닌게 현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본인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직지심체요절·직지)이 50년 만에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특별전을 통해 일반에 공개된 가운데, 문화재청이 프랑스 국립도서관과 ‘직지’ 관련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문화재청은 “11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프랑스국립도서관과 ‘직지’ 관련 전시를 지원하고 학술적 조사·연구 등의 협력을 약속하는 업무협약을 체결했다”고 12일 밝혔다. 주요 협약 내용을 보면 ‘직지’가 포함된 이번 특별전과 관련한 대중강연 개최, 전시 관련 이미지 제공 및 번역 등의 지원, 전시회 홍보 등이다. 또 향후 프랑스국립도서관이 소장한 한국문화유산에 대한 학술조사, 연구추진 상호 협력 등도 포함됐다.
문화재청은 “이번 협약과 관련된 구체적인 업무는 문화재청 산하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담당해 진행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김정희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은 이날 파리에서 “이번 전시를 계기로 협업하고 좋은 신뢰 관계를 쌓는다면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직접 직지를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가질 수 있지 않은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프랑스국립도서관은 현재 ‘직지’를 포함해 약 2000여권의 한국 관련 기록물 등을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프랑스의 국립중앙도서관인 프랑스국립도서관은 루이 11세가 1480년에 창설한 왕실도서관에서 시작돼 세계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도서관의 하나로 꼽힌다.
프랑스국립도서관은 12일(현지시간)부터 7월16일까지 여는 특별전 ‘인쇄하다! 구텐베르크의 유럽’에 ‘직지’를 선보인다.
직지가 일반 대중에 공개되는 건 1973년 열린 ‘동양의 보물’ 전시 이후 처음으로 약 50년 만이다. 이번 특별전에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인 ‘직지’(1377년)를 비롯해 유럽 최초의 금속활자본인 ‘구텐베르크 성경(1455년경·42행 성경)’ 등 세계 인쇄사에 기록될 주요 인쇄물 사료 등이 선보인다.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11일(현지시간) 전시회 개막식 축사에서 “650여년 전 고려말 대선사인 백운 스님이 편찬하고, 그 제자가 2년 뒤 금속활자로 인쇄한 직지는 우리 불교계에는 매우 소중한 성보”라며 “이번 직지의 공개는 빠른 속도로 진화하는 물질문명의 흐름 속에서 우리 인류가 잊지 말아야 할 정신적 가치와 지혜를 되새겨 주는 기회”라고 말했다. 개막식 축사는 조계종을 대표해 총무원 사회부장인범종 스님이 대독했다.
이번 특별전을 계기로 ‘직지’의 가치와 의미를 알리는 행사들도 현지에서 열린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과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주프랑스 한국문화원은 13일 문화원 오디토리움에서 ‘직지’의 편찬 배경을 짚고 한국 불교의 인쇄 문화유산을 살펴보는 콘퍼런스를 연다. 이 자리에서는 현재까지 알려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해인사 대장경판 및 제경판’ 등도 소개될 예정이다. 범종 스님이 강연하며, 고려 불교를 전공하고 직지 불어판을 번역한 야니크 브뤼느통 파리7대학 교수가 통역을 맡는다. 18일에는 다큐멘터리 <직지, 활자의 시간여행> 상영회를 열며 연출을 맡은 제롬 세실 오프레 감독, 프랑스국립도서관 동양 고문서 부서 로랑 헤리셰 총괄 책임관 등의 토론도 예정돼 있다.
이번 특별전과 문화재청·프랑스국립도서관의 업무협약 등은 ‘직지’를 비롯한 한국 금속 인쇄술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고, 관련 연구의 활성화를 위한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직지’는 고려 시대인 1377년(우왕 3년) 청주 흥덕사에서 인쇄됐다. 당시 백운 경한(1298~1374) 스님이 역대 여러 고승 등의 법어·대화·편지 등에서 중요한 내용을 뽑아 엮은 책이다. 원래 상·하권으로 간행됐으나 현재는 하권만이 전해져 프랑스국립도서관에 있다. ‘직지’는 1886년 한·프랑스 수호통상조약 체결로 초대 주한 대리공사로 부임한 콜랭 드 플랑시가 수집해 프랑스로 건너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골동품 수집가 앙리 베베르가 프랑스국립도서관에 기증했다.
‘직지’가 유럽에서 처음 공개된 것은 1900년 프랑스에서 열린 파리 만국박람회에서다. 이후 1972년 당시 프랑스국립도서관에 근무하던 박병선 박사(1923~2011)가 ‘직지’의 존재와 가치를 세계적으로 널리 알렸고, ‘구텐베르크 성경’보다 먼저 제작된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이란 사실이 확인돼 국제적 주목을 받았다.
현재 전해지는 유일한 금속활자본은 프랑스에 있지만 금속활자본을 바탕으로 이듬해인 1378년 간행한 목판본은 한국학중앙연구원과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돼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소장한 목판본은 보물로 지정돼 있다.
‘직지’는 국립중앙박물관·청주고인쇄박물관 등 국내 기관들이 그동안 한국에서의 전시를 적극 추진해왔으나 성사된 적이 없다.
한때 국립중앙박물관을 통해 국내 전시가 상당한 진척을 이뤘으나 프랑스 측이 압류 가능성을 우려하면서 결국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2021년 황희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직지’의 한국 전시를 요청했을 때 프랑스 측은 압류 우려가 없다면 검토하겠다는 뜻을 전하기도 했다. 당시 한국 문화유산이 전시 등의 목적으로 잠시 들어왔을 때 압류·몰수 조치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압류 면제 조항’이 논의되기도 했지만 명문화되지는 못했다.
특히 ‘직지’는 프랑스군이 병인양요 당시 강화도 외규장각에서 약탈해 간 ‘외규장각의궤’ 등과 달리 불법 반출이 아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콜랭 드 플랑시 대리공사가 1800년대 말 지방에서 우연히 직지를 구매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가를 지불하고 구입하거나 선물로 받는 등 정당한 수집은 국제법적으로 불법 반출 문화재와 달리 환수 대상이 아니며, 돌려달라고 주장하기도 쉽지 않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관계자는 “직지는 반출 경위가 비교적 명확한 편”이라며 “국제법적으로나 관행상으로 봐도 무조건 환수하거나 반환을 주장할 대상은 아닌 게 현실”이라고 밝혔다.
도재기 선임기자 jae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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