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수사 '검찰'과 정파성 강한 '언론'의 닮은꼴을 우려하며
[민언련 언론포커스]
[미디어오늘 김수정 민주언론시민연합 정책위원]
검찰이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을 구속해서 수사하겠다고 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이 기각했다. 서울북부지방법원 이창열 영장전담판사는 주요 혐의에 대해 다툼의 여지가 있고, 현 단계에서 구속은 피의자의 방어권을 지나치게 제한한다고 밝혔다.
검찰은 2020년 TV조선 재승인 심사에서 심사위원 일부가 점수를 고의로 낮게 수정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방송통신위원회를 수사했다. 일명 '먼지털이식 수사와 감사'을 벌여 직원들을 위축시키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지난해 9월부터 8개월 여간 TV조선 재승인 고의감점 의혹을 조사한 검찰은 네 차례나 방송통신위원회를 압수수색했고 수십여 명의 직원을 불러 조사를 벌였다. 점수를 수정한 심사위원들에 대한 압수수색과 소환조사도 여러 차례 진행됐다.
몇몇 언론을 통해 알려진 검찰의 수사를 지켜보면 심사위원들이 불법적 행위를 공모하고 이를 방송통신위원회가 종용한 것이 아니냐는 식으로 짐작하게 한다. 여론 영향력을 가진 언론에 확인되지 않은 의혹을 먼저 흘려 놓고, 굴뚝에 연기가 나는 이유를 혹은 그 배후를 알아서 지목하게 만드는 분위기로 몰아간다는 의심까지 키웠다.
검찰의 '고의감점' 주장, 정작 구속영장 청구 혐의에선 사라졌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한 위원장의 구속영장 청구가 법적 정당성보다 '정치적 목적'이 명백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시민 5618명이 연명한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 구속영장청구 기각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감사원 감사부터 검찰 수사, 국무조정실 감찰까지 권력기관을 총동원해 방송통신위원회를 8개월째 흔들고 있는데, 그 최종 목적지가 결국은 방송통신위원장 구속에 있는 것이 아니냐고 지적했다.
사실상 한 위원장을 목표로 한 '정치수사'라는 추측이 나오는 상황임을 법원이 판단해주길 바랐다고 볼 수 있다. 이전 정권에서 임명한 한 위원장을 일찌감치 중도 사퇴시키려는 정권의 압박용 수사로 볼 여지가 많다는 이유에서다. 검찰은 한 위원장이 TV조선 재승인 과정에서 고의감점을 지시했다고 주장해왔지만, 정작 구속영장 청구에는 해당 혐의가 빠졌다. 방송통신위원회를 흔들고 위원장을 교체하려는 시도였다는 점을 의심케 하는 정황이다. 법원이 이 부분을 유의해서 구속영장 심사에서 판단해주길 바란다는 점을 탄원서에서 강조했다.
시간을 돌려보면 윤석열 정부는 출범 이후 지속적으로 한 위원장의 사퇴를 압박했다. 권성동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방통위원장의) 법적 임기가 보장돼 있더라도 (대통령이 바뀌었으면) 정치 도의상 자리를 양보하고 물러나는 것이 맞다”는 식으로 말한 게 대표적이다.
방송통신위원장은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3년의 임기가 보장된다. 방송통신위원장은 공영방송 대표 및 이사 선임권을 갖는 자리다. 여기에 방송사업자를 대상으로 재허가재승인을 의결하는 기구의 장이기도 하다. 한 위원장과 방송통신위원회 흔들기가 공영방송에 대한 정권의 장악력을 키우기 위한 것 아니겠냐는 의혹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정치 철학 다르면 사퇴 압박, 소모적 정쟁이다
한 위원장은 줄곧 중도 사퇴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개인 비리도 아니고 정권 차원에서 사퇴를 압박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방송통신위원장이 집권여당의 자진사퇴 촉구를 받아들이는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기는 일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입장인 것으로 해석된다.
윤석열 정권의 노골적인 사퇴 압박은 그뿐만이 아니다. 한 위원장은 국무회의에 참석하지 말라는 국무조정실 연락을 하루 전날 받는 수모를 당했다. 이후 감사원이 방송통신위원회에 대한 전격적인 정기 감사에 착수했다. TV조선 재승인 심사 문제도 이때 시작된 감사에서 불거졌다.
농지법 위반 의혹이라든지 언론시민단체 활동에 정치편향 비판까지 들먹이면서 알아서 물러나야 할 것이라는 일부 언론의 보도도 나왔다. 현재 한 위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은 기각됐지만 업무 수행 공백이 불가피할 것이라든지, 차기 방송통신위원장 인선을 놓고 이미 윗선에서 논의가 진행 중이라며 정권에 맞춘 위원장 퇴진 압박 보도도 이어지고 있다.
이 글은 한 위원장의 자리를 보전해야 한다는 주장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여러 정황이 불거지고 커지는 상황의 방식을 짚어보자는 의도다. 검찰과 언론, 두 기관의 궁극적인 존재 이유는 실체적 진실을 통한 정의 실현에 있지만 그 길은 요원해 보인다(김재영이서현, 2023). 정치 구도에 따라 움직이면서 소모적 정쟁을 양산하는 부조리한 관행을 어찌 타파할지 고민이 깊어진다.
※ <민언련 언론포커스>는 언론계 이슈에 대한 현실진단과 언론 정책의 방향성을 모색해보는 글입니다. 언론 관련 이슈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고 토론할 목적으로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마련한 기명 칼럼으로, 민언련 공식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편집자주
※ 이 칼럼은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발행하는 웹진 'e-시민과언론'과 공동으로 게재됩니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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