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정년연장 예고된 시나리오
[아이뉴스24 박성현 기자] 요즘 취업자 중 60세 이상 고령자의 비율이 작년 처음으로 20%를 넘어섰다. 통계청에서도 1963년 취업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래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국내 취업자(2022년 기준) 5명 중 1명이 이미 정년퇴직한 60세 이상이라는 말이다. 2022년 통계청 고용동향 조사결과에 의하면 현재 국내에서 일하고 있는 약 2천800만명 중 60세 이상이 590만명으로 약 21%를 차지해 40대(22.5%) 50대(23.6%)보다는 조금 적지만 10·20대(14.2%), 30대(18.9%)보다는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퇴직한 60세 이상 고령자들이 한창 일할 젊은 청년들보다 더 많이 취업활동을 하고 있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데, 이는 30대 이하 인구가 줄어들어 정년 60세를 넘은 고령자들이 퇴직 이후에도 노동시장에 남아 있거나 다시 돌아와 있는 것을 말해 주는 대목이다.
60세 이상 고령자들이 20·30대보다 많이 취업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면 기존 60세 정년제도가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가 저출산 초고령사회로 가는 물구나무 모양의 인구구조에서는 현실적이지 못한 것이다. 일할 젊은 청년세대가 급격히 줄어드는 현 상황에서 베이비부머 세대(1955-1963)들이 환갑 이후에도 계속 일을 해야만 시장경제가 돌아가게 돼 정년연장이 단순히 노후보장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노동시장 인력 부족으로 흔들리는 시장경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할 상황에 이른 것이다. 따라서 하루아침에 출산을 늘리거나 경제활동 인구가 나타날 수 없으니 특단의 제도적 조치가 있어야하는 것 중의 하나가 정년연장이다.
저출산 초고령사회에서는 정년연장이라는 것이 결국 예고된 시나리오라 할 수 있다. 초고령화에 따른 부양부담을 생각해도 당연한 것이다. ‘생산인구’가 갑자기 ‘은퇴인구’로 대량 전환되는 것을 다소 지연시킬 수 있는 것이 정년연장이다. 국민연금의 경우 보험료를 납부할 생산인구는 급격히 줄어드는데 연금을 받을 고령인구만 늘어난다면 아무리 기금이 충분하다고 해도 장기간 지속될 수는 없다. 결국 저출산 초고령 사회에서는 생산인구가 급격히 은퇴인구로 전환되지 않도록 정년연장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년연장이 생산인구가 은퇴인구로 급속히 전환되는 것을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다면 연금재정 외에도 사회 전반적으로 많은 영향을 줄 수 있다. 조기 퇴직 연령을 1년 연장할 경우 GDP(국내총생산)는 약 2% 정도 증가한다는 영국의 실증연구 결과가 있다. 한마디로 정년 연장을 통해 고령자의 취업률이 높아질 경우 ‘고용효과’와 ‘소득창출’ 그리고 ‘연금재정’ 등 주로 ‘경제적 부가가치’가 발생하는 것이다. 정년연장으로 고령자들의 삶에 활력이 유지되면 ‘부양부담’을 덜 수 있고 ‘복지와 조세 차원’의 ‘선 순환적’ ‘세대부조’가 가능하게 된다. 정부 입장에서는 복지비용을 줄이고, 근로자는 ‘노후안전망’이 촘촘해지며, 기업은 숙련된 노동력 확보를 지속할 수 있기에 좋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우리보다 먼저 저출산 초고령화를 겪은 선진국들도 정년연장을 이미 채택했다. 아예 ‘연령에 따른 정년’이 없는 나라도 있다. 미국과 영국 같은 나라는 ‘연령에 따른 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하여 ‘정년 자체’가 없다. 일본의 경우는 65세 정년을 2021년부터 70세까지 늘렸는데, 강제가 아닌 노력 의무이긴 하지만, 사실상 세계 최초로 명문화된 70세 정년을 도입한 것이다. 스페인(2027년)과 독일(2029년)도 65세에서 67세로 정년연장을 점진적으로 진행하고 있고, 요즘 언론에서 자주 보도되는 프랑스 경우도 ‘62세에서 64세’로 연장을 시도하고 있다.
정년연장을 두고 정부와 국민들 간의 입장 차이도 있겠지만 청년세대와 고령세대 간의 입장 차가 많다. 청년세대와 고령세대간의 가장 중심이 되는 논란중의 하나는 ‘정년을 연장하면 청년취업이 박탈된다’ 는 주장이다. 정년연장으로 근무기간이 늘어나면 급여가 높아지는 ‘연공급(seniority-based pay), 흔히 ‘연공서열 호봉제’의 임금체계가 청년의 미래 임금을 희생시킨다는 논리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실제 공무원과 일부 대기업의 극소수 근로자로 한정된 상황이고 대다수 근로자들이 근무하는 중소기업의 경우는 상황이 그렇지만은 않다. 많은 연구에서도 밝혀진 바와 같이 정년연장은 고령층 일자리와 청년층 일자리 모두에게 도움 되는 ‘보완관계'라고 보면 된다.
우리나라 국민들 10명 중 8명 이상은 현재 만 60세인 정년을 연장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2022년 7월 17일, ‘미래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보건복지 대응’)의 조사결과를 보면, 30, 40대가 50, 60대 보다 정년 연장을 더 많이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시 말해 40대(86.3%)가 가장 높았고, 다음으로 30대(84.1%), 50대(82.4%)와 60대(82.8%) 순이었고, 20대(81.2%) 역시도 높았다. 하지만 이를 제도화 하는 현실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소위 ‘연공급(seniority-based pay), ‘연공서열 호봉제’를 방식의 임금체계로 정년을 연장할 경우 기업 입장에서는 인건비 부담이라는 문제로 부정적일 것이고, 젊은 청년세대 또한 자신들의 일자리를 고령층에게 뺏긴다는 인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정년연장이 취업절벽에 허덕이는 청년층의 일자리를 뺏는 것이 아닌 청년 일자리 확대 두 가지 모두 가능할 수 있는 방식으로 ‘연공서열 호봉제’가 아닌 ‘직무 성과급(job-based pay)’ 중심의 다양한 임금체계에 대한 논의가 충분히 수렴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가 다양한 고용지원책을 통해 기업과 근로자의 협력을 이끌어내야 할 것이다.
정년연장은 단순히 한 직장, 같은 자리에서 더 오래 일할 수 있는 기계적 정년 연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근로자는 자신의 근로현장에서 안정된 경제활동을 할 수 있고 기업은 숙련된 노동력을 지속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모두에게 필요한 사회적 조치이다. 따라서 막연히 정년연장을 기대하기보다는 사회공동체 의식으로 기존의 근로형태를 시대변화에 맞게 재구성해야 우리사회가 지속가능해질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성별, 그리고 연령의 격차는 물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고용형태별 차별 또한 철폐되어야 하겠다.
/김종천 박사(Ph.D)·부산가톨릭대학교 특임교수·영파의료재단 이사장
/부산=박성현 기자(psh0926@inews24.com)▶네이버 채널에서 '아이뉴스24'를 구독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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