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추종 안돼' 발언으로 마크롱 뭇매…정부는 사태 수습에 '급급'
네덜란드 국빈방문 중인 마크롱, '反연금개혁' 시위대 전면 대치도
(서울=뉴스1) 정윤미 기자 =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연금개혁 강행에 이어 중국에서 '대만 거리두기' 발언으로 국내외에서 십자포화를 받고 있다. 프랑스 정부 당국자들은 서둘러 진화에 나섰지만 마크롱에 대한 안팎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통신은 11일(현지시간) "프랑스 관리들이 유럽의 미국 의존도, 중국과 대만 관계 등에 대한 마크롱 발언으로 촉발된 분노, 분열, 혼란을 억제하기 위해 수습에 나섰다"며 "여전히 고군분투 중"이라고 보도했다.
앞서 마크롱은 지난 5~7일 중국 방문을 마치고 9일 귀국행 비행기에서 "우리(유럽)가 대만 문제에 속도를 내는데 이익이 있느냐. 아니다"라며 "우리 유럽인이 이 사안에 졸개가 돼 미국의 장단과 중국의 과잉행동에 반드시 적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여러 상황 중에 최악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럽이 (미국과 중국의) '신하'가 돼서는 안 되며 대만을 둘러싼 미·중 갈등에 휩쓸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해당 발언은 그가 줄곧 강조해온 유럽의 장기적 과제인 '전략적 자율성' 연장선에 있다. 그는 국제사회에서 유럽이 미·중 패권에서 벗어난 자주성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여기서 '대만 문제'를 거론한 것이 화근이 됐다. 최근 미·중이 대만을 사이에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유럽의 자주성을 위해 미중 갈등에서 발을 빼야 한다는 취지 발언은 자칫 대만 문제를 등한시하는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모습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해당 발언은 중국이 차이잉원 대만 총통의 방미 보복으로 대만해협에서 대만섬을 포위한 무력시위를 하는 가운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난 다음에 나왔다. 대만에 대한 서방의 관여를 원치 않는 시 주석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 중국 관영 환구시보 영문판인 글로벌타임스는 사설을 통해 "복잡한 정세 속에서 통찰력 있는 유럽의 대표 견해"라며 유럽 자체 이익에 부합하는 비교적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길과 방향을 제시했다"고 환영했다.
진화에 나선 프랑스 의회는 대만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빠른 시일 내 대만 방문을 예고했다. 국민의회(하원) 대표단은 오는 16일 대만을 찾는다. 이후 알랭 리처드 프랑스 상원의원은 동료 의원 4명과 오는 24일 대만에서 반도체 관련 논의할 것이라고 했다.
프랑스 외무부는 미국과 갈등을 차단하고 정부 단일화된 메시지를 모색하는 데 급급한 나머지 11일로 예정된 중국 방문 보고 일정을 전면 취소했다.
앞서 파스칼 콘파브뢰 주미 프랑스 대사관 대변인은 대통령 발언이 과도하게 해석됐다며 "미국은 우리가 가치를 공유하는 우리의 동맹"이라고 진화에 나섰지만 미국을 비롯한 서방 동맹국 인사들은 여전히 날을 세웠다.
특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안보 위협에 직면한 동유럽에서 성토가 쏟아졌다. 로이터는 "이 지역 많은 정부는 특히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미국의 핵심 역할을 전제로 미국과의 관계를 신성불가침으로 여기고 있다"고 밝혔다.
얀 리파브스키 체코 외무부 장관은 대변인을 통해 "유럽과 미국 간 대서양횡단 관계는 우리 안보의 기초"라며 "유럽은 자국 안보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하지만 미국과의 협력이 이에 장애물이나 한계로 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마르친 프지다츠 폴란드 대통령 외교정책고문은 폴란드는 미국에서 벗어난 어떠한 변화에도 찬성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유럽은 더 많은 미국의 도움이 필요하다"며 "오늘날 미국은 프랑스보다 더욱 유럽 안전을 보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동·중유럽의 한 고위 외교관은 "마크롱은 유럽이나 유럽연합(EU)을 대변하지 않는다"며 "그는 부주의하리만큼 중국이 유럽에서 전쟁이 발생했을 때 가장 필요한 대서양횡단 동맹을 해체하도록 돕고 있다"고 일갈했다.
한편 프랑스의 연금개혁 반대 시위는 이날 마크롱이 국빈방문 중인 네덜란드로까지 확산했다. 마크롱은 오전 헤이그 왕궁 밖에서 헌화식을 하기 전에 '연금개혁 반대' 현수막을 든 시위대와 대치했다.
이후 아마레극장에서 싱크탱크 넥서스 인스티튜트를 대상으로 '유럽의 미래'에 관해 연설했는데 장내 시위대 고성으로 몇 분간 중단되기도 했다. 한 남성 시위대는 "프랑스 민주주의는 어디있냐"고 소리쳤고 다른 시위자는 "폭력과 위선 대통령"이라고 적힌 현수막을 내걸었다.
younm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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