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산불 소식에 달려갔지만…'화마'에 아버지 잃은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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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좋은 아버지였는데 허망하게 돌아가실 줄은 몰랐습니다."
12일 오전 8시께 강원 강릉시 안현동 한 마을에서 만난 A씨(50대)는 불에 타 시꺼멓게 그을린 주택을 바라봤다.
결국 A씨는 점점 거세지는 불길을 피해 안전한 곳으로 대피할 수밖에 없었다.
이웃 주민 C씨(60대)는 "명절 때도 홀로 있을 이웃을 위해 집으로 불러 음식도 차려주시는 인자한 분이었다. 아버지처럼 모셨는데 이렇게 보내야 한다니 가슴이 미어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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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뉴스1) 양희문 기자 = “정말 좋은 아버지였는데 허망하게 돌아가실 줄은 몰랐습니다.”
12일 오전 8시께 강원 강릉시 안현동 한 마을에서 만난 A씨(50대)는 불에 타 시꺼멓게 그을린 주택을 바라봤다.
한참을 응시하던 A씨는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은지 고개를 돌려 애써 슬픈 감정을 감췄지만, 눈가에 가득 고인 눈물은 숨길 수 없었다.
A씨는 전날 강릉 산불 소식을 듣고 평창에서 곧장 부모님 댁으로 달려갔다. 낮 12시께 도착했지만 마을 진입로가 통제돼 있어 그는 화마(火魔)가 삼킨 산길을 헤치며 부모님 집 앞에 다다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집은 불길에 휩싸인 데다 유독가스로 가득해 집안으로 진입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결국 A씨는 점점 거세지는 불길을 피해 안전한 곳으로 대피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잘 대피했다는 소식을 들은 A씨는 아버지 B씨(88)도 어딘가 안전한 곳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대피소 이곳저곳을 돌며 아버지를 수소문했다.
오후 5시께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아버지가 끝내 불길을 피하지 못하고 집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는 것이다.
A씨는 “평생 교편을 잡으신 아버지는 남한테 싫은 소리 들은 적 없을 정도로 정말 좋은 아버지였다”며 “어려운 이웃들에겐 항상 음식과 반찬을 챙겨주며 안부를 묻곤 했다”고 말했다.
이어 “금실도 좋아 어머니와 싸움 한 번 없이 잘 살아왔는데, 이렇게 허망하게 돌아가셔서 마음이 너무 아프다”며 눈물을 훔쳤다.
마을에서 명망 높은 사람으로 통하던 B씨의 죽음에 이웃들도 애통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이웃 주민 C씨(60대)는 “명절 때도 홀로 있을 이웃을 위해 집으로 불러 음식도 차려주시는 인자한 분이었다. 아버지처럼 모셨는데 이렇게 보내야 한다니 가슴이 미어진다”고 말했다.
전날 산불 진화 직후 현장을 찾은 C씨는 B씨의 차가 마당에 주차돼 있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겨 집안을 확인하다가 B씨의 사체를 처음 발견한 목격자다.
당연히 대피했을 줄 알았던 B씨가 잔해더미 속에서 숨진 채 발견되자 그는 비통함에 털썩 주저앉았다. 잠시 마음을 추스른 C씨는 마을 이장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B씨는 이번 산불의 첫 사망자로 기록됐다.
강릉 아이스아레나 이재민 임시 대피소에 있는 김홍기씨(59)도 “없는 사람을 챙겨주는 분”이라며 B씨를 회상했다.
15년 전 버거시병으로 두 다리를 잃은 김씨는 “마땅한 직업을 구할 수 없어 기초생활수급으로 생활하고 있다”며 “경제적 어려움이 큰데 B씨가 요깃거리를 자주 챙겨줘서 항상 감사했다”고 전했다.
강릉 산불은 지난 11일 오전 8시20분께 강릉시 난곡동 한 야산에서 났다. 이번 산불로 축구장 면적 530개에 이르는 산림 379㏊가 잿더미로 변했다.
또 1명이 숨지고 16명이 연기를 마시거나 다쳐 모두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주택과 펜션 등 시설물 101곳이 전소되거나 일부가 타는 피해를 입었다.
yhm95@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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