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국물 라면' 열풍도 역사 속으로…60년 'K라면' 흥망성쇠 [양지윤의 왓츠in장바구니]

양지윤 2023. 4. 12.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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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삼양라면이 1963년 국내 라면 시장의 문을 연 이후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게 되기까지 라면업계는 여러 굴곡을 거쳤다. 1989년의 ‘우지파동’ 같이 큰 시련도 있었지만, 대개는 열정적인 연구개발로 극복했다.

수프 제조공법의 혁신이 대표적이다. 재료를 끓여 만든 엑기스를 분말화하는 과거의 열풍건조공법은 제조 과정에서 향이 날아가고 생산 효율도 좋지 않았다.


1982년 농심이 이를 보완한 진공건조공법을 개발하면서 수프의 혁신이 시작됐다. 이 공법이 적용된 경기 안성 수프전용 공장을 지은 농심은 이듬해인 1983년 ‘안성탕면’을 출시했다.

농심은 현재 수프의 원재료를 200도 이상에서 직화해 나온 진액을 진공 상태에서 농축·건조하는 ‘지오드레이션(Z-CVD) 공법’을 개발해 적용 중이다. 라면을 끓이면 수프 원재료 맛이 되살아난다는 평가를 받는다.

팔도는 액상수프의 선두주자다. 1983년 국내 최초로 액상수프를 사용한 ‘팔도라면 참깨’를 출시한 데 이어 1984년에는 ‘팔도 비빔면’을 선보이며 비빔라면 시장을 개척했다.


최근에는 사골·소고기·버섯 등을 우린 육수에 각종 채소와 고춧가루 등을 넣어 만든 액상수프도 나왔다. 하림의 ‘더미식 장인라면’ 등이 이런 수프를 사용한다.

컵라면의 등장도 라면사(史)에서 중요한 사건 중 하나다. 1972년 국내에 컵라면을 최초로 도입한 건 삼양식품이다. 시장이 본격적으로 성장궤도에 진입한 건 1982년에 농심 ‘육개장사발면’이 나오면서부터다. 이후 한국야쿠르트가 사각 도시락 모양의 ‘도시락’(1986년), 뚜껑 있는 라면인 ‘왕뚜껑’(1990년) 등을 내놓으며 제품군이 다양화했다.

요즘엔 편의점 자체브랜드(PB) 라면도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주요 편의점들은 라면 마니아들의 다양한 요구를 초스피드로 반영해 제조사(NB)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업계 최초의 PB라면은 2006년 출시된 GS25의 ‘틈새라면’이다. GS25는 2014년 팔도· ㈜오모리와 손잡고 ‘오모리김치찌개라면’을 선보여 히트시켰다.

이 라면은 GS25 컵라면 부문에서 1위를 놓치지 않고 있다. CU도 2015년부터 청양고추, 홍게, 마늘 등 전국의 유명 특산물을 활용한 PB라면을 잇달아 출시해 누적 판매량이 4000만개에 달한다.

코로나19 창궐 후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최근에는 건면 시장이 커지는 추세다. 2019년 ‘신라면 건면’이 출시된 걸 계기로 시장이 활성화하는 분위기다. 1969년 최초의 건면을 선보였던 삼양은 건면전용 브랜드 ‘쿠티크’를 지난해 론칭하기도 했다.

 뜨고 사라지고 버티고...60년 라면史


신라면·짜파게티·안성탕면·진라면·삼양라면...

라면만큼 ‘베스트셀러’ 순위에 큰 변동이 없는 가공식품도 별로 없다. 나온 지 30년을 훌쩍 넘은 장수 제품들로 빼곡하다. ‘부동의 1위’ 농심 신라면은 1986년 출시됐다. 짜파게티는 1984년, 안성탕면은 1983년 나왔다. 오뚜기의 메가히트 제품인 ‘진라면’은 1988년 첫선을 보였고, 한국 라면의 효시 ‘삼양라면’은 올해 환갑이 됐다.

해마다 라면 신제품은 30~40개가 나온다. 하지만 호기심에 한두 번 사 먹다가 결국에는 원래 먹던 친숙한 제품으로 돌아가는 소비자의 ‘회귀본능’이 강해 신제품이 판매 상위권에 진입하기는 쉽지 않다. 유행하는 맛이나 소재, 콘셉트를 좇기보다 제품 본연의 맛과 품질에 집중해 롱런할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하는 게 모든 라면기업의 숙제로 꼽힌다.

수십 년을 버틴 장수라면도 있지만, 역사 속으로 사라진 추억의 라면들도 많다. 2011년 하얀 국물 열풍의 주역 중 하나인 오뚜기 '기스면'이 대표적이다. 기스면은 팔도 ‘꼬꼬면’, 삼양 ‘나가사끼 짬뽕’와 함께 라면 시장을 뒤흔든 '하얀 국물 삼총사' 중 하나다. 

팬층이 두꺼웠던 라면은 소비자들의 재출시 요구가 빗발치기도 한다. 현재 네티즌들 사이에 부활할 것이란 소문이 무성한 빙그레의 ‘매운콩라면’이 그런 사례다. 1998년 탄생한 매운콩라면은 팜유가 아닌 콩기름을 사용했다는 점을 내세웠던 라면이다.

하지만 빙그레가 2003년 라면사업을 접으면서 자취를 감췄다. 한때 빙그레가 팔도와 손잡고 이를 재출시한다는 이야기가 돌았지만, 아직 출시 여부가 정해지지 않아 팬들의 애를 태우고 있다.

농심의 ‘해피라면’은 복고 열풍을 타고 부활한 사례다. 이 라면은 ‘1봉지에 90원’이라는 가격으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내세우며 1982년 출시됐다. 신라면이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농심의 주력 상품 중 하나였다. 1990년대 초 단종됐다가 30여 년만인 2019년 재출시됐다.

지는 해가 있다면 떠오르는 해도 있는 법. 최근 몇 년 새 ‘건강한 라면’을 찾는 소비자들이 많아지면서 신선한 재료를 사용한 라면들이 프리미엄 시장을 새롭게 창출하고 있다.

하림이 2021년 만든 ‘장인라면’은 화학조미료 대신 자연 재료를 우려 만든 육수를 사용해 만들었다. 오뚜기도 같은 해 레토르트 파우치에 원물 건더기를 담은 고급 라면브랜드 ‘라면비책’을 선보였다.

양지윤 기자 y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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