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이어온 발로뛰는 클래식의 맛을 더한 연극
14일 독창적 음악극 ‘나를 찾아서’
유년·청년·중년 세 명의 ‘제이’ 출연
전국 누비며 클래식 본질 지키기 행보
“그냥 사는 것 말고 매 순간 살아 숨 쉰다는 건 뭘까요?” (김화림 총예술감독)
누구에게나 ‘파랑새’가 있다. 가지고 싶어 그토록 찾아 헤맨 유년시절, 갖게 되자 놓치지 않으려 버둥거렸고, 날아가 버린 파랑새로 인해 상실감에 빠진 청년 시절, 상실을 견디고 진짜 파랑새를 만난 중년.... 한 사람의 삶은 끊임없이 ‘나’와 ‘나의 파랑새’를 찾는 과정이다. 무대는 ‘모두의 이야기’로 관객을 데려간다. ‘파랑새’로 상징하는 행복의 의미를 묻기 위해서다. 한 사람의 길고도 짧은 생이 80분에 담기고, 그 위로 클래식 선율이 흐른다.
올해로 20주년을 맞은 매일클래식의 첫 번째 기획 공연인 ‘나를 찾아서’(14일·롯데콘서트홀)는 낯선 형태의 음악극이다. 출연 배우는 모두 세 명. ‘제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사람의 일생을 돌아보기에, 유년(윤희동), 청년(신재열), 중년(남명렬)의 세 배우가 연기한다. 모든 시절을 겪어내고, 진짜 파랑새를 찾은 ‘중년의 제이’ 남명렬은 “이 작품을 통해 현재의 소중함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요즘엔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 혹은 과거에 대한 집착으로 현재의 나를 소중히 여기지 않으며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과거가 이어져 현재가 되고, 현재가 이어져 미래가 되기에, 현재에 충실하지 않으면 미래도 행복할 수 없어요. 지금 우리가, 여기에서 느끼는 행복이 가장 중요해요.” (남명렬)
작품의 메시지가 이토록 분명한데, 음악과 극의 비중은 공평하지 않다. 보통 ‘극’이 중심이 되는 ‘음악극’과 달리 ‘나를 찾아서’는 음악이 중심이다. ‘매일클래식’을 맡은 김화림 총예술감독은 “이 작품은 음악이 55분, 드라마가 25분 정도로 구성된 음악극”으로 “연극과 음악, 배우와 연주자가 앙상블을 이루는 공연”이라고 말했다.
▶ ‘서로의 영역’ 침범하지 않은 연극과 음악의 만남=2003년 태어난 매일클래식의 성년식에 ‘나를 찾아서’가 첫 작품이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올해의 주제가 ‘시간과 공간’이기 때문이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생명력을 가진 클래식 음악을 다양한 콘셉트로 아우른다는 의미다. 음악이 절대적인 지분을 차지한 음악극을 통해 다양한 클래식을 담고, 연극과의 협업으로 독창적인 공연 형태를 보여준다.
작품에선 배우와 연주자들이 번갈아 등장,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며 어우러짐을 만든다. 김 감독은 “연극과 음악이 함께 하며, 완전히 다른 장르가 태어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고 자신감있게 말했다.
남명렬의 출연 분량은 고작 17분이다. 그럼에도 그는 ‘기꺼이’ 이 무대에 함께 했다. 연극 ‘라스트 세션’, ‘두 교황’ 등 묵직한 무대는 물론 TV를 아우르는 활동을 해온 그는 “클래식과의 협업은 생소하지 않다”며 “어떤 방식이든, 어떤 형태든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는 건 늘 즐거운 일”이라고 했다.
다만 독특한 공연 형태는 배우에겐 낯선 시도다. 남명렬은 “연극은 객석에 배우가 등장하는 순간부터 시작인데 연주회는 음악이 시작하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그것을 어떻게 조율할 것인지가 고민이었다”며 “이 모든 것을 잘 조율해서 공연이 끝나면 ‘정말 멋진 경험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편의 성장 드라마 사이 사이로 클래시칸 앙상블이 등장, 프란체스코 제미니아니의 ‘라폴리아’, 모차르트의 ‘디베르멘토’, 이안 클라크 ‘오렌지빛 새벽’을 연주한다. ‘오렌지빛 새벽’은 플루티스트 이예린과 클래시칸 앙상블의 호흡으로 한국 초연된다.
▶ 20년 이어온 축제의 힘...“다양성 시도하되 본질 지키기”=하나의 클래식 축제가 20년을 이어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매일클래식은 20년 간 전국 80여 곳에서 약 7만여 명의 관객과 만났다. ‘클래식 음악의 정수’인 실내악을 중심에 두고, 전국 방방곡곡 문화 소외 지역으로 향했다. 지난 20년은 상전벽해와도 같았다.
올해의 주제에 시간은 물론 ‘공간’의 개념이 더해진 데에는, 최근 클래식 음악계에 일고 있는 인상적인 변화들이 영향을 미쳤다. 바이올리니스트이기도 한 김 감독은 “요즘 미국에 있다 보면, ‘한국에 대체 무슨 일이 있기에 이렇게 뛰어난 연주자들이 많아졌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고 말했다.
“1970년대엔 ‘러시안 이즈 커밍(Russian is coming)’이라고 했어요. 러시아의 음악가들이 미국으로 넘어오며 두각을 보였기 때문이죠. 두 세대쯤 지난 지금은 어디에서나 한국의 좋은 연주자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났어요. 수백년 전 유럽에서 시작한 음악이 신대륙인 미국을 거쳐 21세기 한국으로 이동했다는 ‘공간의 팽창’이라는 의미도 담았어요.”
매일클래식은 직접 발로 뛰는 음악 축제다. 관객을 기다리는 공연이 아니라, “직접 찾아가고, 관객을 개발하는” 공연이다. 김 감독은 “20년 전만 해도 서울 이외의 지역엔 공연장의 숫자도 적었고, 관객을 만나는 것도 쉽지 않았다”고 돌아봤다.
“클래식 공연장에 한 번도 오지 않은 관객들에게 클래식 음악이라는 문화를 소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어린 시절 접한 문화 경험이 미치는 영향이 크기에, 아이들에게 클래식 공연을 보러가는 경험을 주면서 그것의 재미와 의미를 알려주고자 했어요.”
매일클래식이 전국 11개 학교에 직접 가 수업을 하는 ‘찾아가는 클래식’을 한 것도 그 일환이었다. 그는 “교육과 문화에 대한 장기적인 투자”라고 말했다.
매일클래식이 오랜 시간 꾸준히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콘텐츠 때문이다. 영화, 게임 등 이전엔 없던 장르가 생기는 등 대중문화의 영역이 넓어지면서 클래식이 차지하는 비중이 줄었다. 이같은 ‘환경의 변화’는 끊임없는 진화를 요구하지만, 김 감독만의 철칙은 있다. 그는 “클래식은 본질을 버리면, 생명력을 잃고 사라지게 된다”며 “중요한 것은 포장지를 바꾸며 다양하게 시도하되, 본질을 잃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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