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광장] 서왈보의 담대심세(膽大心細)

2023. 4. 12.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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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바라볼 때면 누구나 한 번쯤 저 비행기의 조종사가 됐으면 하는 꿈을 꾸곤 한다.

박물관에서는 항공에 대한 꿈과 희망을 품고 있는 청소년들을 위해 '항공 진로체험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민간 항공사의 현직 기장이나 승무원들이 교육강사로 나서기도 하는데 기업의 사회공헌활동과 연계한 프로그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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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바라볼 때면 누구나 한 번쯤 저 비행기의 조종사가 됐으면 하는 꿈을 꾸곤 한다. 박물관에서는 항공에 대한 꿈과 희망을 품고 있는 청소년들을 위해 ‘항공 진로체험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민간 항공사의 현직 기장이나 승무원들이 교육강사로 나서기도 하는데 기업의 사회공헌활동과 연계한 프로그램이다. 특히 올해부터는 공군의 전투기 조종사와 정비사 등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데 청소년들에게는 교육의 체감도가 더욱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서왈보(徐曰甫·1889~1926)라는 인물이 있었다. 국가보훈처의 공훈전자사료관에는 함경남도 원산 사람으로, 1910년 국권이 침탈되자 중국으로 망명해 중국군으로 복무하다가 3·1운동이 일어나자 대한독립청년단에서 활약했으며, 1922년 중국 육군항공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중국 공군에 편입돼 각종 전투에 참가하면서 항일운동에 나섰고 항공학교 교수로 재직하기도 했다. 그러나 1926년 장가구 근처에서 비행기 사고로 영면했고, 정부에서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1920년대 신문과 잡지에는 그의 활약상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국권이 침탈된 시기에 비록 외국에서의 활동이지만 비행기라는 당시 과학문물의 총아를 정면으로 받아들여 활약하는 한국인 비행가들은 큰 관심의 대상이 됐다. 1923년 3월에 발간된 잡지 ‘개벽’에는 ‘북경에도 비행가’라는 짧은 기사가 수록돼 있다. 서왈보가 지난겨울 항공학교를 졸업했고 이를 축하하기 위해 동포가 축하회를 열었다는 소식이다. 한편 1926년 5월 30일자 동아일보에는 ‘적진 정찰 중 서왈보 씨 참사’라는 안타까운 기사와 함께 중국군 장교복장의 흐릿한 그의 사진이 게재돼 있다. 지금까지 사진으로 남아 있는 그의 존재는 지면의 그 사진이 유일했다.

100년이 흐른 작년 가을 박물관에 한 장의 사진이 입수됐다. 세월의 더께에 바랜 흑백사진은 하단부가 접히고 갈라져 있어서 사진 전문 보존처리기관에 맡겨야 했다. 그러나 뚜렷한 얼굴 윤곽 때문에 기개마저 느껴지는 주인공이 가운데 앉아 있고 60여명의 사람이 함께 찍은 이 사진은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중국식 건물의 대청에는 ‘축서선생항공필업(祝徐先生航空畢業)’이라는 현수막이 붙어 있고 ‘천도교 북경전교실’이라는 간판이 기둥에 걸려 있었다. ‘개벽’지와 신문 기사에 보이는 서왈보의 항공학교 졸업 축하회가 열린 1923년 2월 10일의 사진이었다. 기사로만 전하던 현장의 모습이 사진을 통해 성큼 다가왔다.

1925년 1월 1일자 동아일보 신년호는 그의 인터뷰를 실었다. 비행가가 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마음가짐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그는 ‘비행가가 되는 요소에는 담이 크고 마음이 잘아야 하는데 다시 말하면 담대심세(膽大心細)가 제일 요건입니다’라고 말했다. 겁이 없고 배짱이 두둑해야 하며 작은 일에도 꼼꼼하게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비행가의 자세라는 것이다.

어디 100년 전의 비행가뿐이겠는가. 큰 나랏일이든, 작은 개인의 일이든, 꿈꾸는 미래든 그 무엇이든 간에 담대하고 심세한 여정을 밟지 않는다면 그 무엇을 이룰 수 있겠는가.

안태현 국립항공박물관장

yj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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